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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 탐구] ②우리금융그룹, '한지붕 두가족'에 흔들리는 '기업금융 명가'

- '기업금융 명가(名家)'는 옛말... 1위→4위 추락

- 임종룡 신임 회장 취임 이후에도 '한일·상업 나눠먹기' 여전... 혁신 기대감↓

  • 기사등록 2023-09-10 17:4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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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금융 시장을 움직이는 주요 금융그룹∙기관의 지배구조와 경영 현황, 비즈니스 전략 등을 분석하는 '금융사 탐구'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기업에게는 생산 자금을 지원하고 개인에게는 소매 금융으로 재산 증식의 기회를 제공하면서 한국 경제를 이끄는 키플레이어로 자리매김하기까지의 성장 과정과 미래 전략을 심층분석해 한국의 금융·자본 시장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겠습니다. [편집자주]
[더밸류뉴스=신현숙 구본영 기자]

"이대로 가면 우리 둘 다 문 닫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합병하는 것만이 살 길입니다."(이관우 한일은행장)


"맞는 말씀입니다. 모든 것을 비우고 생존의 길을 찾기로 하지요."(배찬병 상업은행장) 


대기업들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직장인들이 거리로 나앉던 1998년 7월의 어느 날, 이관우 한일은행장과 배찬병 상업은행장이 서울 청계천 인근의 어느 안가에 마주 앉았다. 두 행장은 피로감이 역력했고 눈은 충혈돼 있었다. 


그럴만도 했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로 모든 은행이 위태로웠지만 두 은행은 그 정도가 특히 심했다. 그간 대마불사(大馬不死)로 여겨지던 대기업들이 허무하게 부도가 나고 있었는데, 두 은행의 주력 비즈니스가 바로 '기업 금융'(corporate finance)이었기 때문이다. 위기가 하도 심각하다 보니 한일은행의 주거래 기업인 삼성, 포스코와 상업은행의 주거래 기업인 LG, 롯데같은 국내 굴지 대기업도 안전하지 않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7월 31일 오전, 두 행장은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합병을 발표했다. 자산규모가 105조원에 이르는 세계 80위권의 당시로서는 초대형 은행이었다. 지금의 우리금융지주의 출발점이었다.


◆증권·보험사 없는 금융지주 '빅4'... '기업금융 명가' 흔들


그로부터 25년이 지났다. 우리금융그룹(회장 임종룡)은 KB·신한·하나금융지주와 더불어 한국의 금융·자본시장을 움직이는 금융지주 '빅4'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3월 기준 우리은행(행장 조병규)만 해도 임직원 1만 3000여명에 국내 점포 769곳(해외 68곳 별도)을 둔 메머드 조직이다. 우리은행, 우리종합금융(이상 상장사), 우리카드, 우리자산신탁 등 32개 계열사를 갖고 있다.


우리금융그룹 현황. 2023. 6. 단위 %. [자료=우리금융지주]

지난해 자기자본(자본총계) 기준으로 우리금융지주는 신한지주(51조1304억원), KB금융지주(49조6429억원), 하나금융지주(37조4189억원)에 이어 4위(31조6273억원)를 기록했다. 5위는 농협금융지주(28조6777억원)이다(이하 K-IFRS 연결). 


매출액(영업수익) 기준으로 우리금융지주는 3위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금융지주사의 매출액을 살펴보면 1위 KB금융지주(88조8959억원), 2위 하나금융지주(70조8438억원), 3위 우리금융지주(42조3727억원), 4위 신한지주(35조4133억원)순이다.  


KB금융∙신한∙하나금융∙ 우리금융∙ 농협금융지주 등 5대 금융지주사 자본총계 추이. K-IFRS 연결, 단위 억원.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우리금융그룹의 강점은 기업금융이다. 그룹의 출발점이 되는 한일·상업은행이 기업금융을 기반으로 했던 전통을 잇고 있는 것이다. 


국내 1위 기업 삼성전자의 주거래은행이 바로 우리은행이다. 또, LG, 포스코, 롯데, 한화, GS 등 국내 대기업집단 80여곳 가운데 30여곳의 주거래은행이 우리은행으로 시중은행 가운데 1위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서울 시내를 걷다 보면 서초동 삼성사옥, 여의도 LG트윈타워, 역삼동 GS타워를 비롯해 대기업 사옥에 유독 우리은행 지점이 눈에 띄는 배경이기도 하다.


한국 경제를 움직이는 키플레이어들을 고객사로 두고 있는 금융지주 '빅4'. 


겉보기에 드러나는 우리금융그룹의 현주소는 이처럼 화려하다. 그렇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기업대출 1위→4위 추락... 서울시금고도 104년만에 신한은행에 내줘


우리금융그룹이 대면한 가장 큰 도전은 이 금융그룹의 정체성이자 자부심이라고 할만한 기업금융이 밑바닥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더밸류뉴스 분석 결과 지난 1분기 기준 우리은행의 기업대출 규모는 4대 시중은행 가운데 4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1위 KB국민은행(158조3565억원), 2위 신한은행(147조5226억원), 3위 하나은행(142조4469억원)에 이어 우리은행은 4위(130조3692억원)를 기록했다. 


우리은행은 2011년까지만 해도 기업대출 1위였지만 2012년에 KB국민은행에 1위 자리를 내줬고, 2016년에는 신한은행에도 밀려 3위로 떨어졌다. 그리고 2021년에는 하나은행에 밀려 4위로 밀려났다. 


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의 기업대출금 추이. 단위 억원. [자료=금융감독원]

햔재 우리은행은 1위 KB국민은행과의 기업대출금 격차가 27조9800억이고 3위 하나은행과의 격차도 12조777억원이나 된다. 3위 하나은행을 따라잡기도 버거운 수준인 것이다. 금융업계의 한 임원은 "기업금융 시장은 이제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의 리딩뱅크 양강구도로 봐도 무리가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같은 추락은 기업 금융 현장에도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2018년 5월 서울시는 서울시금고(1금고) 운영권을 우리은행에서 신한은행으로 교체했다. 우리은행이 국내 최고(最古) 은행이라는 - 1899년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명으로 설립된 대한천일은행이 출발이다 - 강점 덕분에 100년 넘게 유지해오던 서울시금고 운영은행에서 탈락했다는 사실은 금융권에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지난해 5월 우리은행은 4년만에 재개된 서울시금고 운영자 심사에서 서울시 1금고는 물론이고 2금고 운영권도 신한은행에 내주었다. 서울시금고는 1, 2금고를 통틀어 규모가 47조7000억원으로 광역단체 가운데 가장 커서 상징성과 홍보효과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해 10월에는 서울시 산하 자치구금고 4곳(도봉·구로·은평·서울시 제2금고)의 선정 심사에서도 우리은행이 탈락했다. 서울시와 산하 자치구 금고는 4년마다 재선정되는 데 앞서 언급한대로 2018년에 104년만에 서울시금고에 탈락한 데 이어 지난해에 4곳에서 탈락하면서 위상이 추락한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은행이 유지하고 있는 서울시 산하 구청금고는 18개였다가 송파·양천·서대문·관악구를 포함해 14개로 줄었다. 다음 재선정 시기는 2026년 5월이다. 


서울시 자치구금고 운영 은행 현황. 2023년 6월. 


◆700억대 횡령사고 8년째 몰라... 전산장애, 인사 비리, 펀드부실 판매도

 

금융업계에서는 우리은행에 이같은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일차적 원인은 횡령, 펀드 부실 판매, 전산장애 등으로 대변되는 내부 통제 부실로 보고 있다. 


지난해 4월 우리은행 직원의 690억원대 횡령 사건이 여기에 해당한다. 당시 기업개선부 차장 전모씨가 2012년 6월부터 2020년 6월까지 8년동안 8회에 걸쳐 690억원대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긴급체포됐다. 전씨는 E가전사로부터 입금된 계약금이 분쟁으로 우리은행에 묶이자 서류를 위조해 자신의 계좌로 빼돌렸다. 전씨는 외부 기관에 파견 간다고 허위 보고 후 13개월간 무단 결근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무려 8년동안 직원 1명이 무려 690억원을 횡령하고 13개월간 무단 결근했는데도 관리조차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우리은행이 '구멍가게' 수준의 경영을 해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 직원은 10년 넘게 동일 부서에서 동일 업체를 담당하고 이 기간 명령 휴가 대상에 단 한번도 선정되지 않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앞서 2020년 우리은행은 라임자산운용 관련 펀드의 손실 가능성을 인지하고서도 펀드를 계속 판매했음이 드러나기도 했다. 2016년에는 우리은행 신입행원 공채 과정에 150명 가운데 10%에 해당하는 임원이 국정원 직원 자녀, 금융감독원 간부 요청 등의 사유로 추천 채용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이같은 사건과 사고가 우리금융그룹의 '기업금융 명가'로서의 위상에 타격을 주었다는 것이다. 


우리금융그룹 사건, 사고 일지. 

◆한일·상업은행, 25년째 '50대 50' 나눠먹기  


그렇지만 근본적으로는 한일∙상업은행 인력들이 화학적 결합을 하지 못하고 25년째 '한지붕 두가족'으로 파벌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 원인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우리금융지주 계열사 CEO를 살펴보면 한일∙상업은행 출신들이 기계적으로 50 대 50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조병규 우리은행장, 김경록 우리펀드서비스 대표, 김응철 우리종합금융 대표(이상 상업은행), 박인식 우리카드 대표, 이종근 우리자산신탁 대표, 정인기 우리금융캐피탈 대표(이상 한일은행)가 여기에 해당한다. 한일∙상업은행 합병 25년이 지났음에도 기계적 배분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월 외부인사에 해당하는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신임 회장이 취임 일성으로 "인사와 평가 등에서 잘못된 관행이 있다면 과감하게 혁신하겠다"고 밝히면서 개선 기대감이 고조됐지만 이후 인사에서도 똑같은 기계적 배분이 반복됐다. 임종룡 회장이 최근 우리종합금융을 시작으로 우리자산운용, 우리카드 등 5개 자회사를 방문해 혁신 의지를 다졌지만 이미 '허공의 메아리'로 여겨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배경이다.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지난 7월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에서 열린 '2023 디노랩 데모데이' 행사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우리금융지주]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금융시장은 얼핏 무질서해보이지만 알고 보면 놀랍도록 현명하고 냉정하다"며 "우리금융그룹이 기업금융 명가 위상을 되찾으려면 글자 그대로 뼈를 깎는 혁신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qhsdud1324@iclou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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