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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집단 탐구] 60.영풍, '주식시장 숨은 진주' 고려아연 거느린 글로벌 1위 제련그룹

- 고려아연, 영풍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연매출 10조 '글로벌 1위 제련사' 성장

- "어느 쪽도 지분 과반수 미달, 두 가문 갈등 한동안 이어질 것" 우세

  • 기사등록 2024-07-26 22: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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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의 '2024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이름을 올린 국내 대기업집단의 지배구조와 경영 현황, 비즈니스 전략 등을 분석하는 '대기업집단 탐구'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재계순위'로도 불리는 공정위의 공시대상기업집단을 심층 분석해 한국 경제와 재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겠습니다. [편집자주]
[더밸류뉴스=김호겸 김장준 기자]

장씨와 최씨 두 오너 가문 사이에 경영권 분쟁이 있기 전까지 영풍그룹(고문 장형진)은 '은둔 그룹'으로 불렸다. 


재계 30위권에 속하면서도 B2B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다 보니 일반 소비자와의 접점이 없다시피했기 때문이다. 영풍그룹이 굳이 홍보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던 것도 '은둔 그룹' 만들기에 일조했다. 올해로 업력 75년을 맞았지만 홍보조직을 갖춘 것은 불과 수년 전이다. 일반 대중에 낯설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근 두 동업자 집안 사이에 분쟁이 벌어지면서 주식시장에서는 영풍그룹과 고려아연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이 그룹 주력사 고려아연이 글로벌 1위 아연 제련 기업이고 아연(zink) 뿐만 아니라 고부가가치를 가진 은(silver)과 금(gold)을 대량 생산한다는 사실에 주식시장 참여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고려아연, 부산물로 은(silver), 금(gold) 생산... 글로벌 1위 제련사


영풍그룹은 올해 4월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한기정, 이하 공정위)가 발표한 공시대상기업집단(이하 대기업집단) 32위를 기록했다. 전년비 두 단계 하락했다. 전체 매출액 11조 8300억원, 당기순이익 5270억으로 전년비 매출액은 16.46% 감소했고 순손익은 흑자전환했다.


[대기업집단 탐구] 60.영풍, \ 주식시장 숨은 진주\  고려아연 거느린 글로벌 1위 제련그룹영풍그룹의 지배구조와 현황. 2024. 6. 단위 %. [자료=공정거래위원회]


계열사는 영풍, 고려아연, 시그네틱스, 인터플렉스, 코리아써키트, 영풍정밀(이상 상장사),  영풍전자, 켐코, 영풍문고, 서린상사(이상 비상장사) 등 28개로 전년과 동일했다.


이 가운데 주력 계열사는 고려아연(대표이사 회장 최윤범)이다. 지난해 영풍그룹 계열사 매출액을 살펴보면 고려아연(9조 7045억원)이 압도적이고 이어 영풍(3조 7617억원), 코리아써키트(1조 3322억원), 서린상사(5200억원), 인터플렉스(4382억원), 켐코(3114억원), 영풍문고(1390억원) 순이다.


[대기업집단 탐구] 60.영풍, \ 주식시장 숨은 진주\  고려아연 거느린 글로벌 1위 제련그룹영풍그룹 주요 계열사 매출액. K-IFRS 연결. 단위 억원.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 


◆고려아연 매출액의 4분의 1이 은(silver), 10분의 1은 금(gold)


고려아연의 아연 생산 과정을 들여다보면 '신비롭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고려아연은 회사 이름(Korea Zink)에서 알 수 있듯이 아연(zink)을 생산한다. 아연은 글자 그대로 '납(鉛)에 버금가는(亞) 금속'으로 철강 표면 도금(galvanizing)에 주로 사용된다. 


그렇지만 이것이 전부가 이니다. 고려아연은 아연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은과 금을 생산한다. 구체적으로 고려아연은 네덜란드 트라피규라(Trafigura), 스위스 글렌코어(Glencore), 프랑스 루이 드레푸스(Louos Dreyfus)로부터 연 정광(zink concentrate.불순물을 제거한 연광석)을 수입해 배소, 조액, 정액, 전해, 주조 과정을 거쳐 아연을 생산하는데 이 과정에서 퓨머(fumer)로 불리는 잔재처리시설에서 부산물로 은과 금이 쏟아져 나온다. 


[대기업집단 탐구] 60.영풍, \ 주식시장 숨은 진주\  고려아연 거느린 글로벌 1위 제련그룹고려아연의 아연 생산 프로세스. [자료=버핏연구소]

지난해 기준 고려아연의 매출액 비중을 살펴보면 아연이 가장 높고(33.74%) 이어 은 26.39%, 납(lead) 17.84%, 금 10.36%, 구리(copper) 4.72%, 기타 6.95% 순이다. 은이 매출액의 4분의 1이고 금이 10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고부가가치를 가진 은과 금을 생산하다보니 수익성은 당연히 높다. 최근 5년(2018~2023) 고려아연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두 자리수에 육박하고 있다(9.69%). 고려아연은 성장세도 양호하다. 이 기간 고려아연의 매출액 연평균증가율(CAGR)은 7.11%이다. 


[대기업집단 탐구] 60.영풍, \ 주식시장 숨은 진주\  고려아연 거느린 글로벌 1위 제련그룹최근 10년 고려아연의 매출액, 영업이익률 추이. 단위 억원, %. [자료=고려아연 사업보고서]

고려아연은 연간 아연 생산량 43만톤으로 글로벌 시장 1위(6%)를 차지하고 있다. 고려아연 주가는 은(silver) 가격과 동일하게 움직이는 데 최근 은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고부가가치 만들어보라" 권유에 제련사업 시작


고려아연의 탄생을 이야기하자면 영풍그룹의 또 다른 주력사 영풍(대표이사 박영민 배상윤)과 박정희(1917~1979) 전 대통령을 빼놓을 수 없다.  


영풍그룹은 북한 황해도 봉산 출신의 장병희(1909~2002) 창업주가 서울로 내려와 남대문에서 사업을 하다 동향의 최기호(1908~1980) 창업주를 만나 1949년 영풍기업사를 공동설립하면서 시작됐다. 두 사람은 1950년대에 무역업으로 자본을 축적했다. 당시 무역업이란 한국 전쟁 과정에서 전국에 널린 탄피(彈皮)를 홍콩으로 수출하고 홍콩에서 전자제품을 수입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1960년 일본 적산 기업 연화광산을 인수해 광산업에 진출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때 이를 지켜본 박정희 대통령이 "기왕이면 고부가가치 사업을 해보라"고 권유하자 광물질을 제련하는 제련소를 설립했다. 1970년 경북 봉화의 석포에 설립한 영풍제련소가 그것이었다. 영풍제련소는 장병희 일가가 운영했다. 이것이 성공을 거두자 1974년 울산시 울주군 온산읍에 별도 제련소를 설립했다. 고려아연이 그것이었다. 고려아연은 최기호 일가가 맡기로 했고 영풍으로부터 자원과 인력을 지원받았다.


 [대기업집단 탐구] 60.영풍, \ 주식시장 숨은 진주\  고려아연 거느린 글로벌 1위 제련그룹영풍그룹 장씨 오너 가계도와 지분 현황. [자료=버핏연구소]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뒤늦게 설립된 고려아연 사세가 영풍을 월등히 앞서게 됐다. 고려아연이 입주한 온산이 산업단지여서 시설과 인원 확장이 용이했던 반면 영풍은 각종 환경 규제에 묶여 시설 증축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사세를 불린 고려아연은 독립 경영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영풍측과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 가문의 오너 1, 2세는 긴밀하게 교류했지만 '오너 3세' 최윤범 회장과 장세준 코리아써키트 회장은 젊은 시절을 미국의 다른 곳에서 보내며 교류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것도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최윤범 회장은 미국 동부 지역에 있는 앰허스트대(수학과), 콜롬비아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장세준 회장은 영동고를 졸업한 뒤 미국 서부 지역에 있는 서던캘리포니아대(USC), 패퍼다인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대기업집단 탐구] 60.영풍, \ 주식시장 숨은 진주\  고려아연 거느린 글로벌 1위 제련그룹고려아연 최씨 오너 가계도와 지분 현황. [자료=버핏연구소]

◆두 가문 갈등 끝 보이지 않아... "당분간 현 상태 지속될 것" 우세


현재 두 가문의 갈등은 '갈 데까지 갔다'는 지적이다. 

 

고려아연은 영풍과 맺어온 황산 위탁 처리 계약을 지난달 30일 종료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영풍 석포제련소는 아연 제련 과정에서 발생하는 황산을 처리하기 어렵게 된다. 영풍은 고려아연측에 7년의 유예기간 동안 황산 처리 시설 건설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24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김상훈 수석부장판사)는 조정 회부 결정을 했다. 이 결정에 따라 법원은 사건을 조정에 회부할 수도 있고,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직권에 갈음하는 조정';을 할 수도 있다. 앞서 지난 3월 양측은 고려아연 주주총회에서 배당증액(영풍), 제3자 유상증자 허용(고려아연)을 놓고 표대결을 벌였다. 배당증액은 통과됐고 유상증자는 부결됐다. 


두 가문의 갈등이 어느 쪽의 승리로 끝날 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장씨 가문이 향후 유리할 것으로 보는 주장에 따르면 고려아연 최대주주는 장씨 가문의 영풍(25.4%)이고 영풍은 법인(法人)이어서 영구적으로 지분을 유지하지만 최씨 가문은 개인이 지분을 갖고 있어 시간이 흐르면 상속세 부담으로 불리하다. 반대로 최씨 가문이 유리하다고 보는 전문가에 따르면 영풍은 석포제련소 수익성이 낮고 환경규제에 따른 충당 부채 부담으로 시간이 흐를 수록 불리하다. 


[대기업집단 탐구] 60.영풍, \ 주식시장 숨은 진주\  고려아연 거느린 글로벌 1위 제련그룹최창걸(왼쪽) 고려아연 명예회장이 지난 2013년 서울 논현동 영풍빌딩 회의실에서 장형진 영풍 회장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영풍그룹]

현재로서는 지금 상태가 상당 기간 유지될 것이라는 점에 이견이 없는 편이다. 장씨, 최씨 두 가문 모두 고려아연 경영권 장악에 필요한 50% 이상 지분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윤범 회장 부친 최창걸(84) 고려아연 명예회장은 고령에다 의식이 혼미한 상태로 알려졌다. 최창걸 명예회장이 정정하다면 이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전언이다. 


rlaghrua823@thevalu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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