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불법 리베이트 근절을 위해 의약품 판매대행업체(CSO)에 대한 관리 강도를 높이며 일각에서는 CSO 수수료율 상한선 설정 등 규제 방안까지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비용 집행을 법으로 묶는 식의 직접 규제는 또 다른 우회로나 편법을 낳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렇다면 해외 주요 제약 선진국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미국과 프랑스, 일본 등의 국가들은 자금의 흐름과 거래 구조를 시장에 공개하는 방식으로 유통 질서의 투명성을 확보해왔다. 수수료율을 직접 설정해 통제하기보다 정보 공개를 확대해 투자자와 시장이 스스로 위험을 평가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판매·마케팅 비용을 투명하게 세분화하거나, 영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금전 흐름 자체를 대중에게 명확히 공개하는 방식으로 '시장의 감시 기능'을 극대화하는 방향을 택했다.
◆ 미국 SEC, SG&A 총액 아닌 ‘판매·마케팅비’ 분리 공시 유도
미국 나스닥 상장사인 어서티오 홀딩스(Assertio Holdings)가 SEC에 공시한 연차보고서 주요 내용. [자료=더밸류뉴스]미국 역시 손익계산서상 판매비와관리비는 하나의 항목으로 인식된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공시 체계에서는 'SG&A(Selling, General and Administrative Expenses)' 자체는 통합 총액으로 손익계산서에 인식된다. 그러나 미국 회계기준(US GAAP)과 SEC 가이드라인은 기업의 영업 리스크와 직결되는 마케팅 비용에 대해 사업보고서(10-K)의 주석 또는 '경영진의 분석 의견서(MD&A)'를 통해 구체적인 세부 내역을 제공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실제 미국 나스닥 상장사인 어서티오 홀딩스(Assertio Holdings)는 연차보고서에서 판매·마케팅(Selling and Marketing) 비용을 일반관리비와 구분해 별도 항목으로 설명한다. 여기에는 광고·프로모션 비용뿐 아니라 외부 계약 영업조직(CSF·Contract Sales Force)에 지급되는 전문 서비스 수수료와 마케팅 프로그램 운용 비용 등이 구분되어 기록된다.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 애브비, 일라이릴리 등 대형 제약사들 역시 사업보고서 내 MD&A에서 판매·마케팅 비용 증가 원인을 별도로 설명하고 있으며, 투자자들은 이를 통해 제품 출시와 영업 확대가 실제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판단한다.
비용 비율 자체를 규제하지 않음에도 설명 중심의 공세 체계를 통해 시장이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미국의 공시법 핵심은 비용 총액 자체보다 비용의 성격과 증가 배경을 투자자에게 투명하게 설명하는 데 있다.
◆ 프랑스 '베르트랑법'…액수 규제 대신 '정부 포털 전건 공개'
프랑스 보건부가 운영하는 공식 공시 포털인 '트랑스파랑스 상테(Transparence Santé)'에 사노피그룹이 금액과 수혜자를 신고한 모습. [이미지=트랑스파랑스 상테 캡쳐]
프랑스는 유럽 내에서 가장 엄격한 공시 체제를 갖고 있다. 지난 2011년 제약회사 리베이트 사건을 계기로 이른바 '베르트랑법(Loi Bertrand)'을 제정해 제약 유통 질서의 투명성을 확보했다. 프랑스 공중보건법에 기반해 시장에서 의약품 및 의료기기를 제조·마케팅하거나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헬스케어 기업(외국계 기업 포함)에 적용된다.
해당 법에 따라 기업들은 의사, 약사, 간호사 등 의료 보건계 종사자 및 의료기관과의 모든 재정적 관계를 프랑스 보건부가 운영하는 공식 공시 포털인 '트랑스파랑스 상테(Transparence Santé)'에 의무 신고해야 한다. 연구비, 강연료, 자문료, 학술대회 지원비, 숙박·식사비 등도 일정 금액 이상이면 모두 공개 대상이다.
법에 따른 3가지 공시 카테고리는 △제약사와 의료인 간에 체결된 상호 의무가 있는 모든 계약(강연, 자문, 공동 연구 등) △대가성 없이 제공된 모든 편의(식음료, 교통, 숙박, 기자재 기부 등 부가세를 포함해 10유로 이상의 지출) △ 컨설팅이나 연구 용역에 대해 실제 서비스의 대가로 지급된 모든 비용(프랑스 최고행정법원의 판결 및 후속 시행령에 따라 이 역시 10유로 이상이면 의사 실명과 함께 지급액이 투명하게 노출) 등과 같다.
노바티스, 사노피, 로슈, 화이자 등 글로벌 제약사들이 프랑스에서 집행한 각종 비용 역시 이 시스템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프랑스 정부 역시 마케팅 수수료의 총량이나 액수 자체를 제한하지 않는다. 다만 자금의 성격과 최종 수혜자를 정부 주도 포털에 공개하도록 규제함으로써, 기업 스스로 관리하고 시장이 자금 세탁 위험을 상시 감시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다.
◆ 일본, 업계 자율규제로 ‘의료계 거래 내역’ 투명성 확보
일본 역시 업계 자율 규제를 통해 투명성을 확보해 왔다. 일본제약공업협회(JPMA)는 지난 2011년 회원 제약사들을 대상으로 '제약기업과 의료기관 등의 관계 투명성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운영하고 있다. 해당 가이드라인에 따라 다케다약품, 에자이, 츄가이제약, 아스텔라스제약 등 일본의 주요 상장사들은 연구개발비, 학술지원비, 강연료, 자문료, 설명회 비용 등을 A~E 항목으로 나눠 공시한다.
항목은 다음과 같다. △ A (연구개발비 등) 공동연구비, 위탁연구비, 임상시험비 등 △ B (학술연구조성비) 학술연구 장려 기부금, 공익재단 기부금 등 △ C (의학·약학 관련 강연료 등) 강연료, 자문료, 원고 집필료 등 (수령한 의사의 실명과 연간 지급 총액 개별 명시) △ D (정보제공 관련 비용) 제품설명회 개최 비용(식음료비 포함), 인쇄물 및 문헌 제공비 등 △ E (기타 비용) 사회공헌 목적의 기부금 등
특히 카테고리 C의 경우, 특정 의사가 일 년 동안 해당 제약사로부터 강연이나 자문 명목으로 받아 간 액수가 엔화 단위까지 실명으로 공개된다. 법률에 따른 강제 공시는 아니지만, 일본 주식시장의 기관 투자자들과 보건 의료계는 이 JPMA 공시 자료를 바탕으로 해당 제약사의 리스크 관리 수준과 비용 집행의 적정성을 매년 평가한다.
이처럼 해외 사례를 통해 규제의 핵심은 비용의 액수가 아닌 자금의 흐름과 거래 구조의 투명성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금융당국의 공시 체계 개편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보건당국이 현장 감독을 강화하고 있는 만큼, 자본시장 역시 투자자들이 비용의 성격과 효율성을 판단할 수 있도록 공시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