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연 김호겸 기자
삼표그룹(회장 정도원)의 선대회장인 정인욱 창업주가 일본 와세다 대학을 나온 엔지니어 출신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 창업주는 기술과 사업에 둘 다 능해 정부의 러브콜을 숱하게 받았다. 지금도 그가 개발한 모래를 사용하고 있을만큼 기술력이 뛰어나다. 덕분에 여전히 골재 업계 1위 기업을 유지하는 중이다. 그 기조를 이어 삼표그룹은 R&D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기술 혁신의 전통은 최근 친환경 분야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특수 시멘트 '블루멘트'로 한국 소비자대상에서 친환경 시멘트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시멘트 산업은 매년 약 26억톤의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으로 배출하고 있는데 기존 시멘트 생산 과정에서는 가마(킬른) 온도를 높일 때 석회석과 석고 등을 원료로 사용해 40%의 온실가스를 배출했지만, 블루멘트는 이를 제철 부산물인 슬래그와 슬래그 시멘트 등으로 대체해 탄소 배출을 크게 줄였다.
최근에는 건자재 시장의 구조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첨단 기술 쪽으로 힘을 주고 있다. 로봇주차와 부동산 개발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선택한 것이다. 계열사 에스피앤모빌리티가 개발한 로봇주차 시스템 'MP시스템'은 99mm 두께의 로봇으로 3톤 무게의 차량도 들어올릴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이다. 이미 UAE·태국 등에서 1만대 이상의 실적을 쌓았다. 이러한 첨단 기술이 현재 진행 중인 서울숲 글로벌 업무지구, 상암 복합단지 등 대규모 부동산 개발 사업과 어떤 시너지를 낼 지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삼표그룹, 매출 2.7조·순익 200%↑...매출 줄었지만 수익성은 '쑥쑥'
삼표그룹의 지난해 매출액은 2조7680억원, 당기순이익 210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동기대비 매출액은 10.36% 감소했으나 당기순이익은 200% 급증했다. 건설경기 침체 속에서도 수익성이 크게 개선된 점은 고무적이다.삼표그룹 주요 계열사 매출액. 2023년 연결기준. [이미지=더밸류뉴스]
주요 계열사별 매출을 보면 삼표산업이 1조6619억원으로 가장 크고, 삼표시멘트 8237억원, 에스피네이처 7949억원이 뒤를 이었다. 특히 삼표산업은 2023년 7월 지주사였던 삼표(주)와의 역합병을 통해 새로운 지주사로 전환되며 규모가 대폭 확대됐다.
삼표시멘트는 건설경기 침체 영향으로 전년 대비 4.5% 매출이 감소했다. 시멘트 부문 매출은 대부분 국내에서 이뤄졌으며, 6383억원을 기록했다. 레미콘 사업부문 매출은 424억원을 기록했다.
에스피네이처는 지난해 7949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올해 4월 레미콘 사업부를 분사하며 사업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기존 건자재 사업에 더해 운송업, 기계수리, 경영컨설팅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다.최근 10년 삼표시멘트 매출액 및 영업이익률 추이. [이미지=더밸류뉴스]삼표그룹은 ESG 경영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삼표시멘트는 지난해 한국ESG기준원으로부터 '지배구조 우수기업'으로 선정됐으며, 올해는 저탄소 친환경 특수 시멘트 '블루멘트'로 한국의 소비자대상에서 친환경 시멘트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이 제품은 기존 포틀랜드 시멘트 대비 최대 74%까지 CO2 배출량을 저감할 수 있으며 화력발전소 석탄재를 연간 20만톤까지 재활용해 순환경제 구현에도 기여하고 있다.
◆미래 먹거리로 신사업 낙점...로봇주차·부동산 개발 본격화
삼표그룹은 성수동 옛 레미콘 공장 부지(2만2770㎡)를 글로벌 업무지구로 개발한다. 지하철 2호선과 분당선이 교차하는 성수역 인근에 위치한 이 부지는 '서울 숲의 심장'(The Heart of Seoul Forest)으로 명명됐다. 업무, 관광, 문화가 어우러진 첨단 복합단지로 조성될 예정이다.
디지털미디어시티(DMC) 일대에도 2027년 완공을 목표로 주거·상업·문화 복합단지 개발에 나선다. 디지털미디어시티역 4번 출구 옆 GS칼텍스 수색충전소 부지를 재개발해 복합개발을 추진 중이다.엠피시스템의 자동 로봇주차 시스템. [사진=삼표그룹]
한편 계열사 에스피앤모빌리티는 로봇주차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높이 99mm의 초슬림 로봇으로 3톤 이상의 차량도 들어 올릴 수 있는 'MP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시스템은 UAE, 태국, 헝가리, 멕시코 등에서 이미 1만대 이상의 실적을 쌓았으며, 기술보증기금으로부터 기술력 AAA 등급을 인정받았다.
시장조사기관 마켓워치에 따르면 글로벌 발레파킹 로봇 시장은 2023년 2억9000만달러(약 3800억원)에서 2030년 7억7740만달러(약 1조200억원)로 연평균 14.5% 성장이 예상된다. 현대차, 현대위아, HL만도 등도 시장에 뛰어들었다. 에스피앤모빌리티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태국 등 해외시장에서 쌓은 1만대 이상의 실적을 바탕으로 국내 시장 공략에도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삼표시멘트 품목별 및 국내외 매출액. [이미지=더밸류뉴스]
다만 국내에서는 아직 기계식 주차장치 규제를 그대로 적용받고 있어 시스템의 특장점을 완벽하게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로봇 주차의 특장점을 살리려면 관련 업계와 정부 부처 간 소통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AI·로봇으로 미래 연다"...정대현 부회장의 세대교체 가속
정대현 부회장은 삼표그룹의 신사업 성장동력을 책임지고 있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경영학석사 출신인 정 부회장은 지난 2005년 입사 후 약 20년간 삼표기초소재 마케팅 지원담당, 삼표시멘트 최고마케팅책임자(CMO), 삼표레일웨이 대표, 삼표시멘트 대표를 거쳐 2019년 그룹 사장, 지난해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그룹의 미래 청사진을 그려왔다.삼표그룹의 오너 가계도.[이미지=더밸류뉴스]
정 부회장은 에스피네이처 66.08%(보통주+우선주), 에스피앤모빌리티 60%, 홍명산업 30.91%, 에스피에스테이트 25%, DHC인베스트먼트 100% 등 주요 계열사의 지분을 확보하며 지분 확보를 마친 걸로 보인다.
무엇보다 건설기초소재 중심의 전통 제조업에서 탈피해 로봇과 AI 기술을 접목한 혁신에 주력하고 있다. 삼표산업은 최근 한파에도 얼지 않는 콘크리트 '블루콘 윈터', 비가 와도 타설이 가능한 '블루콘 레인 오케이' 등을 개발했다. 초기 압축 강도를 높인 블루콘 스피드는 행정안전부의 재난 안전 신기술로 지정됐으며, 블루콘 윈터는 국토교통부 건설 신기술 인증을 획득했다.
삼표시멘트 연구개발비 및 비율 추이. [이미지=더밸류뉴스]친환경 기술 개발도 가속화하고 있다. 삼표시멘트는 오는 2030년까지 순환자원 사용량을 58%까지 확대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시멘트 생산 공정의 AI 자동화를 위해 2027년까지 49억2000만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대현 부회장 취임 이후 삼표그룹이 디지털 전환과 신사업 발굴에 속도를 내고 있다"며 "건설자재 시장의 구조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혁신이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