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 산업은 흔히 '전통 산업'으로 불리지만, 포스코에게 이 수식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지난 수십 년간 포스코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며 세계 최초의 기술을 잇달아 선보였다. 이제 글로벌 시장에서 포스코의 독자 기술은 단순한 '신기술'을 넘어 전 세계가 따르는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진공흡착식 크레인으로 이송되고 있는 고망간강. [사진=포스코]
◆ 극저온 견디는 기적의 소재, ‘고망간강’
포스코가 10여 년에 걸친 집념의 연구 끝에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고망간강(High Manganese Steel)’은 포스코의 기술력이 어떻게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았는지를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사례다. 이 혁신 소재는 영하 165도의 극저온 환경에서도 본연의 강인함을 잃지 않으면서, 기존 니켈 합금강 대비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과 우수한 성능을 동시에 갖췄다.
본래 영하 160도 이하의 극저온을 견뎌야 하는 LNG 탱크에는 니켈 함량이 높은 스테인리스강이나 '9% 니켈강'이 주로 쓰였다. 하지만 니켈은 가격 변동성이 극심하고 희소성이 높아, 매장량이 풍부한 망간이 대체 금속으로 주목받아 왔다. 문제는 망간의 까다로운 성질이었다. 망간 함유량이 높아질수록 가공 난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치솟는 탓에, 전 세계 철강사들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상용화는 불가능한 영역”이라며 일찌감치 고개를 저었다.
포스코의 개발 과정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초기에는 망간 함량을 조절하는 단계에서 쇳물이 그대로 굳어버리기 일쑤였고, 강판을 얇게 펴는 압연 공정에서는 유리처럼 맥없이 깨져나가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오죽하면 연구원들 사이에서 “망간은 신이 허락하지 않은 ‘저주받은 원소’가 아니냐”는 뼈아픈 농담이 돌 정도였다.
하지만 진짜 장벽은 기술 개발 그 너머에 있었다. 바로 ‘국제 표준’이라는 거대한 벽이었다. 당시 국제 해사 규정에는 고망간강에 대한 기준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 아무리 뛰어난 소재를 개발해도 국제해사기구(IMO)의 승인 없이는 선박에 적용할 길조차 막혀 있었다. 이에 포스코와 정부 관계자들은 수년간 전 세계를 누비며 위원들을 설득하는 전방위적 '외교전'을 펼쳤다. 그 결과, 전 세계가 인정하는 국제 표준에 '고망간강'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당당히 등재시키데 성공했다.
과거 국제 해사 규정에는 고망간강에 대한 기준조차 없었으나, 포스코는 끈질긴 설득과 치밀한 데이터 입증을 통해 국제표준화기구(ISO), 미국재료시험협회(ASTM), 국제해사기구(IMO) 등 세계 3대 규격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이로써 전 세계 조선사와 에너지 기업들이 LNG 탱크와 선박을 건조할 때, 포스코가 정립한 기준에 따라 고망간강을 자유롭게 채택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중국 장쑤성 쿤산시 소재 기가스틸 전문 복합가공 공장. 사진은 POSCO-CSPC 직원이 기가스틸 전문 슬리터를 가동하고 있는 모습. [사진=포스코]
◆ 가볍지만 강철보다 단단한 ‘기가스틸’
자동차 소재 시장에서도 포스코의 위상은 독보적이다. ‘기가스틸(Giga Steel)’은 포스코가 세계 철강사 중 가장 앞서 상용화한 초고장력 강판이다.
1㎜² 당 100kg 이상의 하중을 견딜 수 있는 이 강재로, 10원짜리 동전 크기로 25톤 트럭 수십 대의 무게를 거뜬히 버텨낸다. 알루미늄보다 3배 이상 강하면서도 가벼워, 경량화가 필수인 전기차 시대의 핵심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개발 성공의 기쁨도 잠시, 현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난관이 불거졌다. 강도가 너무 높은 나머지 기존 장비로 용접하면 접합 부위가 터져나가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고객사들이 난색을 표하자 포스코는 ‘소재를 넘어 사용법까지 판다’는 파격적인 전략을 꺼내 들었다. 연구진이 직접 자동차 공장에 상주하며 전용 용접 기술과 성형 시뮬레이션 기법을 개발해 준 것이다. 소재 공급자가 완제품 공정까지 책임지는 이른바 ‘솔루션 마케팅’은 이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설계 표준으로 자리 잡으며 차세대 자동차 강판의 정석이 됐다.
파이넥스 공장 전경. [사진=포스코]
◆ 600년 고로 역사 뒤집은 ‘파이넥스 공법’
철광석과 석탄을 가공 없이 그대로 사용해 쇳물을 뽑아내는 ‘파이넥스(FINEX) 공법’은 제철 역사의 패러다임을 통째로 바꿨다. 가루 형태의 원료를 직접 사용함으로써 오염 물질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인 이 혁신 공법은 탄생 자체가 도전이었다.
포스코의 파이넥스 개발사는 한마디로 ‘철강 산업의 금기에 도전한 15년의 사투’다. 14세기 이후 약 600년 동안 철강 생산의 교과서로 군림해 온 ‘용광로(고로) 공법’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본래 고로 공법은 가루 형태의 철광석과 석탄을 그대로 쓸 수 없다. 공기가 통할 틈을 만들기 위해 가루를 단단한 덩어리로 뭉치는 ‘소결’과 ‘코크스’ 공정이 필수적인데, 이 과정에서 막대한 대기오염 물질이 발생하고 설비 투자비 또한 천문학적으로 치솟는다.
포스코는 이 비효율을 깨기 위해 1990년대 초부터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했다. 하지만 과정은 가시밭길이었다. 특히 가루 형태의 철광석을 공중에 띄워 환원시키는 ‘유동환원로’ 기술은 제어가 극도로 까다로웠다. 원료가 관 내부에 엉겨 붙거나 통로를 막아버리는 일이 일쑤였다.
성과 없이 수천억 원의 연구비만 투입되자 안팎에서는 비난이 쏟아졌다. "포스코가 무모한 도박을 한다", "돈을 길바닥에 뿌리고 있다"는 회의론이 팽배했다. 그러나 당시 경영진은 "우리만의 독자 기술이 없으면 영원히 선진국을 뒤쫓는 2인자에 머물 수밖에 없다"며 연구진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었다.
집념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2003년 연산 60만 톤 규모의 데모 플랜트를 성공시키며 세계를 놀라게 한 포스코는, 마침내 2007년 세계 최초의 상용화 설비인 ‘파이넥스 2공장’ 가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영광의 순간도 잠시, 가동 당일 설비 내부에 원료 가루가 굳어버리며 쇳물이 나오지 않는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현장 엔지니어들은 며칠 밤을 새우며 뜨거운 열기가 남은 설비 내부로 직접 들어갔다. 굳어버린 쇳덩이를 정으로 일일이 깨부수는 사투 끝에 마침내 첫 쇳물이 터져 나왔을 때, 현장은 이내 눈물바다가 됐다. 철강 역사가 새로 써지는 순간이었다.
현재 파이넥스 공법은 600년 용광로 역사를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상용화 기술로 평가받는다. 전 세계 철강사들이 이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포스코를 찾고 있으며, 이는 곧 글로벌 친환경 제철 공정의 ‘뉴 스탠다드’가 되고 있다.
수소환원제철 개발센터, 포스코는 지난해 1월 26일 포항제철소에 수소환원제철 개발센터를 개소하고, 2030년 수소환원제철 상용 기술 개발 완료를 목표로 연구개발을 지속하고 있다. [사진=포스코]
◆ 탄소중립 시대 게임 체인저, 수소환원제철 ‘하이렉스’
국내 철강 산업은 그간 눈부신 성장을 이룩했으나, 석탄 기반의 고로 공정 특성상 '대규모 탄소 배출'이라는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포스코가 추진하는 수소환원제철, 이른바 하이렉스(HyREX) 기술은 석탄 대신 수소를 환원제로 사용하여 철을 생산하는 혁신적인 공법으로,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감축할 차세대 핵심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포스코는 이미 파이넥스(FINEX) 공정으로 검증된 '유동환원로' 기술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가장 앞선 하이렉스 상용화를 추진하며, 미래 철강 산업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정부가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소 건립을 위한 산업단지 계획 변경안을 최종 승인·고시함에 따라 저탄소 전환 사업은 더욱 속도를 내게 됐다. 이번 고시를 통해 포스코는 포항산단 북측 해역을 매립하여 축구장 약 190개 규모(134만㎡)에 달하는 수소환원제철소 전용 부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하이렉스 공법은 기술적 완성도뿐만 아니라 경제성 면에서도 압도적이다. 고품위 원료가 필수적인 유럽과 미국의 방식과 달리, 하이렉스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저품위 원료도 활용 가능하다는 강점이 있습니다. 상용화가 성공적으로 완료된다면 전 세계 탄소중립 제철소의 표준 모델은 하이렉스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과거 박태준 명예회장이 강조했던 '제철보국' 정신은 이제 기술로 나라를 지키는 '기술보국'을 넘어, 세계 철강 산업의 판도를 바꾸는 '글로벌 표준'으로 진화하고 있다. 포스코가 걷는 길이 곧 세계 철강 산업의 미래가 되는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