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이 제도권 금융으로 진입하는 변곡점에서, 시장의 건전성을 담보할 '지배구조 규제'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본 기자는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디지털자산 거래소 지분 규제에 대한 정책 심포지엄' 현장을 직접 취재하며, 규제의 필요성 만큼이나 그 방식이 얼마나 정교해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디지털금융법포럼이 주최하고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주관한 이번 심포지엄은 정부와 국회가 추진 중인 지분 제한 규제의 현실적 한계를 짚고, 산업의 혁신성을 해치지 않는 합리적인 제도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전문가들은 가상자산 시장의 글로벌 주도권 다툼이 치열한 현 상황에서, 국내에만 적용되는 과도한 규제가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경계했다. 통제 위주의 획일적 잣대를 들이대기보다는 시장의 자정 능력을 키우고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 '질서 있는 제도화'에 머리를 맞대야 할 시점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디지털자산 거래소 지분 규제에 대한 정책 심포지엄' 현장. [사진=더밸류뉴스]◆ 민간 혁신 기반의 ‘생태계 역동성’ 유지해야...획일적 규제는 경계 대상
윤성승 디지털금융법포럼 회장은 환영사에서 국가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로 가상자산 관련 특허, 거래 수, 관련 직업의 수와 더불어 '법제적 명확성'을 꼽았다. 윤 회장은 "최근 정부와 국회의 입법 추진은 법적 명확성을 높여, 대한민국의 가상자산 사업 환경 순위를 제고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방향"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구체적인 정책 설계에 있어서는 신중함을 당부했다. 가상자산 사업이 민간의 투자와 혁신을 기반으로 성장해 온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면, 글로벌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특히 윤 회장은 "대주주 지분 규제나 스테이블코인 사업자의 자격 요건 등 진입 규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며 "디지털자산 생태계를 위축시키지 않으면서도 혁신 기업이 지속 성장할 수 있는 합리적인 제도가 되도록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윤성승 디지털금융법포럼 회장이 지난 24일 '디지털자산 거래소 지분 규제에 대한 정책 심포지엄'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더밸류뉴스]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회장 역시 현행 규제 논의가 자칫 '기업가 정신'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박 회장은 "가상자산 산업은 수많은 스타트업과 벤처 기업이 불확실성에 도전하며 성장시켜 온 영역"이라며 "이미 시장이 형성된 이후 지분 구조를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규제가 도입된다면,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과감하게 도전하는 창업가가 얼마나 나올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고 우려를 표했다.
또 ‘규제의 역설'에 대해 경고했다. 국내의 유망한 자본과 기술이 더 우호적인 제도 환경을 찾아 해외로 눈을 돌리는 '탈한국' 현상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글로벌 시장이 빠르게 재편되는 상황에서 우리만 규제와 통제의 관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안정과 혁신을 모두 고려한 정책적 지원을 바탕으로 산업을 발전시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 KRX·NXT와 태생부터 달라…일본의 '규제 역설' 경계해야
발제에 나선 김윤경 인천대학교 동북아국제통상물류학부 교수는 가상자산 거래소를 공적 독점 체제인 한국거래소(KRX)나 대체거래소(ATS)인 넥스트트레이드(NXT)와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짚었다.
김 교수는 "가상자산 거래소는 유통이 주된 목적이며 운영과 매매 중개가 결합된 플랫폼이자,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글로벌 경쟁 시장"이라고 말했다.
김윤경 인천대학교 동북아국제통상물류학부 교수가 지난 24일 '디지털자산 거래소 지분 규제에 대한 정책 심포지엄'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더밸류뉴스]
특히 가상자산 거래소의 지분 구조를 획일적으로 규율하려는 접근 방식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디지털자산 거래소 규율의 본질적인 목적은 책임성과 감독 강화이지, 소유 구조의 획일화가 정답이 될 수는 없다"며 "수단이 과도할 경우 오히려 혁신의 동력을 꺾는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혁신 산업에서 지분 분산은 규제의 전제가 아닌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결과여야 한다는 지론이다.
그는 "지분 분산을 강제하는 일률적 규제는 투자 유치와 기업의 장기 전략을 왜곡하고, 나아가 해외 사업자와의 수평적 인수합병(M&A) 과정에서 경영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합리적 대안으로 기업 성장 단계에 맞춰 자금 조달과 지분 분산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기업공개(IPO) 추진을 제시했다.
또 일본의 사례를 들어 "선제적으로 강력한 규제 프레임워크를 도입했던 일본은 오히려 글로벌 산업 경쟁력이 약화되는 '규제의 역설'을 경험했다"며 이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뱅가드나 블랙록 등 글로벌 금융 그룹들이 기관투자자 주주 특성에 주목해 자산거래소를 운영하는 유연함을 참고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끝으로 "인허가제를 통해 산업을 제도권으로 편입하는 것은 감독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이 될 수 있지만, 규제는 반드시 일관성·비례성·유연성을 갖춰야 한다"며 "디지털자산기본법이 감독과 진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스타트업과 벤처 생태계의 활성화를 저해하지 않는 적합한 규율 수단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은행법과 충돌하는 규제 모순…'소급 입법 논란' 소지도
이어 발제를 맡은 김효봉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현재 논의되는 거래소 지분 규제가 그 전제부터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며 법률적 결함과 논리적 모순을 짚어냈다.
김 변호사는 "디지털자산 거래소는 은행처럼 대출 업무를 수행하지 않기 때문에 전통적인 의미의 금융 인프라 기관으로 보기 어렵다"며 "부도 시에도 공적자금이 투입되지 않는 구조임에도 시스템 리스크를 이유로 지분 규제를 적용하는 것은 명분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김효봉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가 지난 24일 '디지털자산 거래소 지분 규제에 대한 정책 심포지엄'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더밸류뉴스]
지분 규제 도입 시 발생할 현행 금융법과의 정면 충돌 문제를 근본적 한계로 꼽았다. "당국의 구상대로 지분 제한이 실현되면 현재의 집중된 지분은 결국 은행권이 인수할 수 밖에 없는데, 정작 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은 타 회사 지분 보유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금융지주회사법상 금융지주회사는 자회사가 아닌 회사의 지분을 5% 초과하여 보유할 수 없으며, 은행법 역시 자회사 지분 보유 한도를 15%로 제한하고 있다.
그는 "거래소를 금융지주 체계 내에 편입하려면 손자회사 구조가 불가피한데, 이 역시 은행법상 제약에 저촉된다"며 "이 문제를 풀려면 은행법 개정이나 예외 규정이 필요하며, 결국 가상자산 산업을 공식적인 금융업으로 분류하겠다는 중대한 정책적 판단이 선행되어야 함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또 규제의 실효성과 산업 경쟁력 측면에서도 우려를 표했다. "국내 규제를 억지로 끼워 맞출 경우, 5년 뒤에는 오히려 자신들의 사업적 성격을 인정해 주는 해외 규제 국가를 찾아 사업자가 이탈하는 '디지털 엑소더스'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안으로는 인위적인 지분 규제보다는 진입 장벽을 낮추는 방식의 경쟁 촉진이 보다 현실적이라는 제언이다.
끝으로 헌법적 관점에서의 검토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미 형성된 시장에 소급하여 지분 매각을 강제하는 것은 헌법상 과잉금지원칙 위배 및 재산권 침해 소지가 다분하다"며 “정책 설계 단계에서부터 과잉 규제 여부를 보다 정교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 "책임 경영과 윤리 규범이 우선"…미래 금융 향한 정교한 설계 필요
심포지엄 참석자들은 가상자산 거래소에 대한 규제가 단순 외형적 지분 구조 제한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데 뜻을 모았다. 획일적인 지배구조 강요보다는 인허가제를 통한 감독 실효성 확보와 투자자 보호를 위한 윤리 규범 및 손해배상 책임 강화 등 실질적인 시장 안정화 방안이 우선돼야 한다는 분석이다.
가상자산 시장의 투명성 제고와 신뢰 회복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신산업 성장의 전제 조건이라는 점에 동의하면서도, 논의의 범위를 확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분 구조라는 단편적 쟁점을 넘어 기술적 안정성 확보와 글로벌 규제 정합성 유지, 산업 생태계의 역동성 보존 등 다각도의 과제를 동시에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향후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중심으로 재편될 미래 화폐 시스템과의 연계성 측면에서도 중요하다는 평가다. 실제 한국은행은 최근 차세대 보안관제 체계에 국제 결제망 기준인 '고객보안프로그램(CSP)'을 공식 반영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향후CBDC의 국제 결제망 연계 가능성을 염두에 둔 선제적 조치로 풀이되며, 가상자산 생태계 역시 글로벌 수준의 보안과 신뢰 규격을 갖춰야 할 필요성을 시사한다.
전문가들은 가상자산 생태계와 CBDC의 기술적 연계 가능성이 제기되는 만큼, 디지털자산기본법의 설계가 미래 금융 인프라의 기초를 다지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국경 간 결제 확대 등 디지털 화폐 활용 가능성에 대비해 민간 거래소의 보안 요건과 지배구조 역시 국제 수준의 금융 안정성을 충족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결국 가상자산 규제 논의는 단순한 통제를 넘어 신성장 동력을 제도권에 안착시키는 과정으로 평가된다. 일본의 사례처럼 정책 시차로 인한 산업 경쟁력 약화를 방지하기 위해, 한국은행의 보안 표준 수립 행보와 발맞춘 정교한 정책 논의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디지털자산 거래소 지분 규제에 대한 정책 심포지엄’ 포스터. [이미지=한국인터넷기업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