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 노사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시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글로벌 위탁생산(CMO) 사업 특성상 단순 생산 차질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 신뢰와 향후 수주 경쟁력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단순 임금 협상을 넘어 한국 바이오 산업 전반의 신뢰 체계를 흔들 수 있다며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특히 바이오의약품 생산은 ‘연속 공정’과 ‘규제 신뢰’를 핵심으로 하는 산업인 만큼 일반 제조업과는 다른 수준의 리스크가 경고된다.
◆ "생산 중단 현실화"…23개 제품 생산중단·약 1500억 손실
인천 송도에 위치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제1바이오캠퍼스 전경. [사진=삼성바이오로직스]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 노동조합은 임금 인상과 성과급 산정 기준 공개를 요구하며 “영업이익 2조원 달성 과정에서 직원 기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지난달 28일부터 30일까지의 부분 파업에 이어 지난 1일부터 5일까지 총 2800여명이 참여한 전면 파업을 단행했다.
갈등은 법적 공방으로도 번졌다. 사측은 쟁의금지 가처분 신청에 나섰고, 노조는 “연속공정을 이유로 파업을 제한하는 것은 헌법상 단체행동권을 무력화하는 시도”라고 맞서고 있다. 생산 차질도 현실화됐다. 파업이 이어지면서 현재까지 23개 제품 생산이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지난 4일과 8일에는 사측이 노조 집행부 총 7명 등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하며 갈등은 장기화로 접어드는 모습이다. 노사 간 대화는 결국 무산됐고, 지난 8일 고용노동부가 참여하는 노사정 3자 면담에서도 접점을 찾지 못했다.
정부가 중재에 나섰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이다. 다만 양측은 앞으로 협의 내용을 비공개로 하고, 대화는 이어가기로 했다. 노조 관계자는 "8일 노사정 미팅 이후 사측과 간단한 연락은 하고 있다"면서도 "특별히 진전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노사 갈등 장기화에 따른 피해 규모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회사 측은 현재까지 약 1500억원 규모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연장·휴일근무 거부까지 이어질 경우 추가 피해 가능성도 제기된다. 노조는 성과급 외에도 인사 계획 통지, 성과 배분과 인력 배치 관련 노조 의결권, 회사 분할·외주화 시 노조 심의·의결 등을 요구하고 있다.
◆ 법원도 핵심 공정은 파업 제한…규제기관 리스크는 '여전'
주목되는 부분은 지난 4월 인천지방법원의 판단이다. 법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제기한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하며 전체 9개 생산 공정 중 핵심 공정에 대해서만 파업을 제한했다.
법원이 제한한 공정은 정제공정 후반부의 농축·버퍼교환(UFDF), 원액 충전, 버퍼 제조·공급 등으로 바이오의약품 품질 유지와 직결되는 공정들이다. 당시 재판부는 노동조합법 제38조 2항에 따라 제품 폐기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유지 작업은 중단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강승훈 인하대 교수가 지난 15일 개최된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더밸류뉴스]강승훈 인하대 바이오제약공학과 교수는 지난 15일 열린 ‘주주 관점에서 본 최근의 파업 이슈: 삼성그룹 사례를 중심으로’ 좌담회에서 “법원이 제한 대상으로 본 공정은 바이오의약품 제조에서 가장 핵심적인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강승훈 교수는 “공정 조건과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판매 자체가 불가능한 저품질 의약품이 생산될 수 있다”며 “숙련된 전문인력이 실시간으로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즉각적으로 제어해야 하는 공정”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파업이 허용된 공정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장비 의존도가 높아 대체인력 투입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면서도 “비숙련 인력이 투입될 경우 당장은 드러나지 않더라도 품질 저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FDA나 EMA 같은 글로벌 규제기관이 향후 해당 시기의 생산 데이터와 대체인력 투입 기록을 다시 점검할 가능성도 있다”며 “추후 과학적 입증을 요구받을 수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공정을 구분하지 말고 전체 공정에 대해 파업 제한이 이뤄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바이오 산업은 단 한 번의 품질 신뢰 저하만으로도 글로벌 시장에서 치명적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바이오 산업의 핵심 키워드로 ‘연속성’과 ‘신속성’을 꼽았다. 그는 “규제기관과 사전 협의 없이 생산 연속성이 깨질 경우 해당 생산물 전체가 규제 측면에서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자체 제품이 아닌 위탁생산 중심 구조인 만큼 글로벌 고객사 신뢰 유지가 핵심”이라며 “의료진 입장에서도 공급이 언제 중단될지 모르는 의약품을 지속적으로 처방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 임금 갈등 넘어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로
삼성바이오로직스 파업사태가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를 유발할 수 있다. [이미지=더밸류뉴스 | AI 생성]시장에서는 이번 사태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중장기 수주 경쟁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바이오의약품은 살아있는 세포를 활용해 생산하는 특성상 공정 중단 자체가 품질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글로벌 CMO 산업은 결국 ‘안정적 공급 능력’이 핵심 경쟁력이다.
공급 차질 우려가 반복될 경우 글로벌 제약사들이 생산 물량 일부를 경쟁사로 이전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증권가에서는 노사 갈등이 향후 수주와 증설 계획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정유경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노조 이슈는 수주 둔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으며 6공장 착공 의사결정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로슈, BMS, 노보노디스크, 일라이릴리 등 글로벌 빅파마의 바이오의약품 생산을 맡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생산을 맡기는 이유는 어떤 상황에서도 품질과 납기를 보장할 것이라는 신뢰 때문이다.
이승길 한국ILO협회 회장은 “바이오 생산시설은 한번 멈추면 즉시 정상화되지 않고 재정비 과정이 필요한 산업”이라며 “현행 필수유지업무 대상에 바이오 산업이 포함돼 있지 않아 제도적 공백도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번 사태는 단순 노사 갈등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 안정성과 국가 바이오 산업 경쟁력까지 연결된 문제라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노사 모두 단기 대립을 넘어 장기 산업 경쟁력과 환자 공급 안정성까지 고려한 대화와 타협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