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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성민 칼럼] 코스피 떠받치라는 압박…국민연금은 누구의 돈인가

- 증시 급등에 국민연금 자산은 사상 최대…웃을 수만은 없는 이유

- 정치가 시장을 흔들고, 시장이 연금을 흔드는 위험한 순환

- 국민연금은 증시 부양 수단이 아니라 국민의 노후 자산이다

  • 기사등록 2026-05-26 10:2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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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밸류뉴스=소성민 금융증권부장 부국장]

요즘 여의도 증권가에서 가장 많이 오가는 질문 가운데 하나다. “국민연금이 지금 과연 국내 주식을 팔 수 있을까?” 질문의 배경은 얼핏 ‘행복한 고민’처럼 보인다. 코스피 급등으로 국민연금이 기록적인 평가이익을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이 차익 실현에 나서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대규모 매도가 상승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고, 정권 역시 그런 상황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선이 적지 않다.


[소성민 칼럼] 코스피 떠받치라는 압박…국민연금은 누구의 돈인가코스피 급등으로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이 빠르게 커지면서, 국민의 노후 자산이 시장 기대와 운용 원칙 사이에서 부담을 안고 있다. [이미지=더밸류뉴스|AI생성]


문제는 이 대목에서 시작된다. 국민연금은 정부의 정책 자금이 아니다. 국민 모두가 보험료를 내며 함께 쌓아온 노후 자산이다. 수익을 낼 때는 수익을 내고, 위험이 커질 때는 줄이는 것이 연금 운용의 기본 원칙이다. 그런데 시장 분위기나 정치적 계산이 그 판단을 흔들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연금 운용에서 투자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책임이다. 연금 자산을 지켜야 할 책임의 시간은 증시가 춤추는 시간보다 훨씬 더 길다.

사상 최대 수익, 그러나 더 커진 딜레마


국민연금의 기금 규모는 5월 하순 현재 18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만 300조원 넘게 기금이 늘었는데, 수익 대부분이 국내 주식의 평가이익으로 달성됐다. 문제는 규모가 아니라 비중이다. 국민연금이 올해 초 제시한 국내 주식 목표 비중은 14.9%였다. 허용 범위를 넓게 잡아도 상단은 19.9% 수준이었다. 그런데 실제 비중은 이미 25%를 넘어선 걸로 추정된다.


쉽게 말해 주가가 너무 빠르게 오르면서 국민연금이 당초 계획보다 훨씬 많은 국내 주식을 들고 있게 된 셈이다. 원칙대로라면 일정 부분 비중 조정이 필요하다. 자산 배분은 연금 운용의 가장 기본적인 안전장치이기 때문이다. 특정 자산이 급등했다고 그대로 두면 위험은 한쪽으로 몰리게 된다.


더 난감한 건 팔아도 비중이 쉽게 줄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국민연금을 포함한 연기금은 올해 들어 상당한 규모의 국내 주식을 순매도했지만, 증시 상승 속도가 워낙 빨라 비중은 오히려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팔아도 줄지 않고, 안 팔면 더 커지는 셈이다.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판단이 가장 어려운 구간에 들어선 셈이다.


[소성민 칼럼] 코스피 떠받치라는 압박…국민연금은 누구의 돈인가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편입 비율은 최근 1년 사이 빠르게 높아지며 목표치를 크게 웃돌고 있다. [자료=국민연금] [도표=더밸류뉴스]


연금은 시장 안정판인가, 정치 도구인가


지금 시장이 가장 예민하게 바라보는 건 정부의 시선이다. 오는 28일 열릴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는 앞으로 5년간의 자산 배분 방안이 논의될 예정이다. 시장의 관심은 국내 주식의 목표 비중을 더 높일지에 집중돼 있다.


최근 일부 언론들을 통해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상한을 더 올리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다는 전망이 잇따랐다. 정부는 확정된 바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시장은 이미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연금의 목적은 증시를 떠받치는 데 있지 않다. 국민의 노후 자산을 안정적으로 불리는 데 있다. 그런데 주가가 올랐다고 계획을 뒤따라 바꾸는 일이 반복되면 시장은 국민연금을 장기 투자자가 아니라 정책 변수로 보기 시작한다. 그리되면 신뢰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


해외 연기금들은 이런 ‘외풍(外風)’에 엄격하다. 미국 최대 공적연금인 캘퍼스(CalPERS)는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독립적인 투자 원칙을 강조해 왔다. 캐나다 연금투자위원회(CPPIB) 역시 정부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글로벌 분산 투자 원칙을 고수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정권의 시간은 불과 몇 년이지만 연금의 시간은 수십, 수백 년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계속 더 상승장을 원하겠지만, 연금은 언제나 다음 하락장까지 준비해야 한다.


가장 불안한 쪽은 청년 세대다


이 문제를 가장 예민하게 바라보는 계층은 청년층이다. 국민연금은 이미 오래전부터 고갈 위기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지금의 20대와 30대는 보험료를 더 많이 내고도 나중에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불안해한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시장 분위기나 정책 판단에 따라 원칙 없이 움직인다는 인식이 퍼진다면 불안은 훨씬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청년 세대에게 국민연금은 먼 미래의 숫자가 아니다. 매달 월급에서 빠져나가는 가장 현실적인 장기 자산이다.


여기서 큰 손실이 발생하면 문제는 단순한 평가손익이 아니다. 연금 제도 자체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다. 연금은 숫자로 굴러가는 제도 같지만, 실제로는 신뢰가 떠받치는 제도다. 국민이 “저 돈은 정치 논리에 흔들릴 수 있다”고 느끼게 되면, 연금 제도에는 균열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수익보다 원칙이다


물론 국민연금이 지금 당장 국내 주식을 무조건 팔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한국 기업의 경쟁력은 여전히 강하고, 국내 자본시장을 키워야 한다는 방향도 그릇된 게 아니다.


문제는 순서다. 시장이 뜨겁다고 자산 배분 원칙을 뒤늦게 바꾸는 것은 위험하다. 상승장에 맞춰 목표치를 올리는 일은 장기 투자라기보다 뒤늦은 추격 매수에 가깝다. 추격 매수는 대개 투자 대상이 가장 비싼 시기에 이뤄진다. 그리고 그 대가는 시간이 지나 더 큰 손실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지금 국민연금에 필요한 것은 증시를 떠받치는 역할이 아니다. 시장이 뜨거울수록 오히려 더 냉정하게 원칙을 지키는 일이다. 줄일 때는 줄이고, 늘릴 때는 늘리고, 판단의 기준은 정치가 아니라 장기 수익률과 위험 관리가 돼야 한다.


국민연금은 주가 그래프를 관리하는 기관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노후를 지키는 마지막 안전판이다. 증시 상승은 얼마든지 반길 일이다. 그러나 연금이 정치와 시장 사이에서 원칙을 잃는다면, 그 대가는 지금의 수익보다 훨씬 더 길고 혹독한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다.


smso21@thevalu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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