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5위' 거함(巨艦) 포스코호(護) 함장에 지난 3월 취임한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에게 올 한해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본업 철강산업이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흔들리고 창사 이래 첫 노사위기, 포항체철소 화재가 터지면서 위기를 겪었다. 신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이차전지는 전기차 케즘(일시적 부진)으로 실적이 부진했다.
본업과 신사업이 동시에 도전에 직면한 것이다. 내년 임기 2년차에 접어드는 장인화 회장은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재계에서는 눈 앞에 다가온 장 회장의 첫 정기 임원 인사와 내년 신년사에 담겨질 위기 극복 방안이 포스코그룹의 미래를 좌우할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은...
△1955년생(69) △경기고(1974)·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1979)·동대학원(1981) 졸업 △MIT 해양공학(박사)·포항산업과학연구원(1988) △포항산업과학연구원 강구조연구소장(2009) △포스코 신사업실장 상무(2011)·전무(2014)·철강솔루션마케팅실장(2015)·기술투자본부장·기술연구원장·부사장(2016)·철강생산본부장(2017)·철강부문장(2018) △포스코 대표이사(2018. 3.~2020. 3.) △포스코 대표이사 회장(2024. 3~현재)
◆포스코그룹 3Q 영업익 37.9%↓... 中 덤핑·엔저 직격탄
포스코그룹의 지난 3분기 실적은 부진했다. 매출액은 18조3210억원, 영업익 7430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각각 3.4%, 37.9% 감소했다(이하 K-IFRS 연결). 장 회장은 이러한 실적 부진의 원인으로 중국의 부동산 경기 침체 장기화로 인한 철강 재고의 해외 덤핑과 엔저 현상에 따른 일본 제품과의 가격 경쟁을 지목했다.
이차전지 소재 부문의 상황도 녹록지 않았다.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포스코퓨처엠의 3분기 영업이익은 14억원에 그쳤다. 특히 중국의 공급망 장악으로 인한 가격 경쟁력 약화로 흑연 관련 음극재 매출이 246억원으로, 전년동기(517억원) 대비 52.4% 급감하는 등 어려움이 가중됐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 대응해 장 회장은 대규모 구조조정을 결정했다. 오는 2026년까지 저수익 사업과 비핵심 자산 120개를 정리해 2조6000억원의 현금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첫 단계로 OCI와의 합작사인 피앤오케미칼 지분을 537억원에 매각했으며, 이를 통해 포스코퓨처엠은 약 1500억원의 재무구조 개선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인프라 부문은 호실적을 기록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매출액 8조3560억원, 영업이익 3570억원으로 각각 전년동기대비 3.9%, 14.6% 증가했다. 포스코이앤씨도 비핵심 자산 매각 등을 통해 전분기대비 200억원 증가한 4490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장 회장은 그룹의 재무구조 안정성도 확보했다. 지난해 말 기준 포스코홀딩스의 현금성 자산은 6조6708억원이며, 순부채비율 13.1%, 유동비율 200% 이상을 기록했다. 장 회장은 이를 기반으로 오는 2030년까지 그룹 매출액 2배, 영업이익 4배 성장이라는 야심찬 목표를 제시했다.
◆인도·남미·호주서 원료확보...글로벌 밸류체인 완성
장인화 회장이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은 글로벌 미래 성장동력 확보다. 특히 인도 JSW그룹과 추진 중인 500만톤 규모의 일관제철소 합작 사업은 장 회장의 글로벌 도약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프로젝트다. 장 회장은 2030년까지 연평균 경제성장률 6.7%가 전망되는 인도 시장에서 철강뿐 아니라 이차전지소재, 재생에너지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장 회장은 이차전지 소재 사업에서 전기차 캐즘을 오히려 기회로 삼았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총 연산 5만톤 규모의 이차전지용 염수 리튬 생산공장을 건설 중이며 3단계 추가 투자도 검토하고 있다. 칠레에서는 정부와 협력해 마리쿤가 염호와 알토안디노스 염호 개발 사업 참여를 논의 중이다. 장 회장이 특히 주목한 것은 칠레가 미국과 FTA를 체결해 IRA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실리콘음극재 사업도 장 회장의 주도로 본격화됐다. 포항 영일만 산업단지에 연산 550톤 규모의 실리콘음극재 공장을 준공했으며 오는 2030년까지 연산 2만5000톤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장 회장이 주목한 실리콘음극재는 현재 리튬이온전지에 주로 쓰이는 흑연음극재보다 에너지밀도가 4배 높은 차세대 소재다.
친환경 전환도 장 회장의 핵심 과제다. 광양제철소에 6000억원을 투자해 연 250만톤 규모의 전기로를 건설 중이며, 오는 2030년 수소환원제철 기술 상용화, 2050년까지 모든 설비의 하이렉스 교체를 목표로 제시했다. 특히 AI 결합 '인텔리전트 팩토리'를 통한 저탄소 제품 조기 출시는 장 회장의 친환경 전환 의지를 보여준다.
장 회장은 원료 공급망 확보에도 적극 나섰다. 포스코퓨처엠과 포스코필바라리튬솔루션은 양극재 제조용 수산화리튬 2만톤 구매·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주목할 점은 이 물량이 미국 수출용 양극재 생산에 전량 사용된다는 것이다. 포스코홀딩스가 지분을 보유한 호주 필강구라 광산의 리튬 정광을 원료로 국내에서 생산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눈앞에 다가온 정기 임원인사도 관심거리다. 포스코는 통상 12월 중순 정기 임원인사를 실시해왔다. 장 회장 취임 후 첫 임원인사인 데다 본업(철강), 신사업(이차전지) 동시부진을 감안하면 대폭 교체가 점쳐지고 있다. 올해 2월 포스코는 계열사 CEO 3명을 교체했다. 포스코인터내셔널 사장에는 이계인 부사장을 승진 발령했고, 포스코이앤씨 사장에는 전중선 전 포스코 사장을, 포스코퓨처엠 사장에는 유병옥 포스코홀딩스 부사장을 각각 임명했다.
◆'포스코맨' 장인화의 위기관리 리더십...임원 급여 20% 반납하며 경영 쇄신 '솔선수범'
장인화 회장은 1988년 포항산업과학연구원을 시작으로 30여년간 포스코그룹의 핵심 보직을 두루 거친 정통 '포스코맨'이다. 특히 MIT 해양공학 박사 출신인 장 회장이 2018년 포스코 철강부문장으로서 제철소 스마트팩토리 체계 구축을 주도한 점은 업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연구소부터 시작해 신사업, 재무 등을 거친 폭넓은 경험은 현재 포스코그룹이 직면한 복합적인 위기를 극복하는데 큰 자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장 회장은 취임과 동시에 '7대 미래혁신 과제'를 발표하며 자신만의 경영철학을 제시했다. 매년 1조원 이상의 철강 원가 절감, 임원 급여 20% 반납 등 고통분담을 통한 체질 개선에 초점을 맞췄다. 장 회장은 이를 직접 실천하며 올해 상반기 5억원 미만의 보수를 받아 공시 대상에서 제외될 정도로 솔선수범의 모습을 보였다.
또 포항제철소의 연이은 화재 사고와 창사 이래 첫 파업 위기라는 초유의 사태도 정면으로 돌파했다. 직접 현장을 찾아 '설비강건화 TFT'를 발족하고, 노조와의 대화를 통해 극적인 타결을 이끌어냈다. 장 회장이 마련한 임단협 잠정합의안에는 기본급 10만원 인상, 경영목표 달성 동참 격려금 300만원, 노사화합 격려금 300만원 지급 등이 포함됐다.
글로벌 리더십 강화에도 장 회장의 행보가 두드러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과 체코 순방에 동행하며 소위 '포스코 패싱' 논란을 종식시켰다. 최근에는 한-호주 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양국 간 경제협력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호주 정부와 HBI 프로젝트, 이차전지소재용 리튬, 흑연 등 핵심 사업의 협력을 강화하며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대했다.
하지만 장 회장 앞에 놓인 과제는 여전히 만만치 않다. 중국의 저가 공세와 전기차 캐즘 등 외부 위기를 극복하고 첫 정기 임원 인사를 통해 조직 쇄신을 이뤄내야 한다. 탄핵 정부 아래서 120개의 저수익 사업과 비핵심 자산 정리라는 구조조정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 한다. 업계는 장 회장의 위기관리 능력과 기술 전문성, 포스코그룹의 견고한 재무구조가 현재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