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학 김호겸 기자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에게는 '첫눈에 반한 딸기 조합장'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17년동안 경북 율곡농협조합장으로 근무하는 동안 이 지역의 딸기 특산물인 설향(雪香)을 '첫눈에 반한 딸기' 브랜드로 해외 수출하고 농가 소득을 개선하는데 기여했기 때문이다.
설향은 한반도 남부의 토종 딸기인데 맛이 달다는 특징을 갖고 있어 설향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2010년대 중반 강호동 조합장은 설향이 12월 이후 본격 출하되는 점에 착안해 '첫눈'이 들어가는 브랜드를 등록하고 일본, 홍콩을 비롯한 동남아 수출을 성사시켰다. 강호동 조합장의 아이스딸기 수출은 국내 최초 기록을 갖고 있다.
현재 설향 딸기는 합천군 농가 소득에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지난달 기준 합천군에는 193개 딸기 농가가 설향 딸기를 재배해 1동(660㎡)당 약 3000만 원의 연간 소득을 올리고 있다. 합천군에는 총 92.5㏊의 농지에 1275동의 딸기 재배 시설이 있으니 이 지역에서 딸기 재배로 연 380억원의 농가 소득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강호동 조합장은 "농업은 새롭게 뜨는 블루오션이며 혁신 경영으로 성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강호동 회장은 이같은 성과를 인정받아 올해 1월 제25대 농협중앙회장에 당선됐다. 내년 임기 2년차가 눈앞에 다가오면서 그가 농가 소득 개선을 위해 어떤 혁신 경영을 선보일 것인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농협중앙회장은 임기 4년의 단임제이다).
◇강호동 회장은...
△1963년생(60) △대구 미래대 세무회계과 졸업 △농협대 경영대학원 수료 △경남 합천군 율곡농협 와리지소 부장(1998. 5)∙와리지소 지소장(1998. 9) △율곡농협 조합장(2006) △전국친환경농업협의회 이사(2010) △합천군통합체육회 이사(2011) △법무부 법사랑위원 거창지역 연합회 합천지구 회장(2014) △제25대 농협중앙회장(2024.3~현재)
◆'메머드 조직' 농협 CEO 1년 보내... '금융지주 개선' 과제
강호동 회장이 경영을 맡고 있는 농협중앙회의 사이즈는 '메머드급'이다.
농협중앙회는 올해 초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한기정. 이하 공정위)가 발표한 공시대상기업집단(일명 대기업집단) 10위를 기록했다. 농협중앙회 아래에 신세계그룹(11위), CJ그룹(12위), KT그룹(13위)이 있다. 또, 농협중앙회는 국제협동조합연맹(ICA·International Cooperative Alliance)에 가입된 회원조직 가운데 글로벌 10위를 기록하고 있다. 농업 분야만 놓고 보면 프랑스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다.
'조직의 힘'으로 움직이는 농협중앙회이다보니 강호동 회장은 올 한해 임기 첫해에 의도치 않게 '신고식'을 치렀다.
올해 초 불거진 농협은행 직원의 100억원대 업무상 배임이 여기에 해당한다. 여신 업무 담당 직원이 부동산 담보 대출을 내주는 과정에서 배임행위를 해 109억원 규모의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이를 포함해 올해 농협의 횡령 배임 등 금융사고가 총 7건에 달한다. 이들 사건 모두 강호동 회장 취임 이전에 벌어졌던 업무 행위였지만 올해 초 사건이 드러나면서 농협은행과 농협중앙회의 신인도를 떨어뜨렸다.
올해 실적도 부진했다. 농협중앙회는 지난 1분기 매출총이익 3조9123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동기대비 약 2000억원 감소했다. 경제 부문(농협경제지주)은 571억원 증가했으나, 신용 부문(농협금융지주) 매출총이익이 2645억원 줄어들며 부진했다. 판관비는 3조323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4.09% 늘었다.
특히 농협금융지주의 실적이 부진했다. 농협금융지주의 지난 1분기 연결 순이익은 6512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31.24% 감소했다. 특히 NH농협은행과 NH농협생명, NH농협손해 순이익이 각각 37.3%, 27.2%, 24.2% 감소했다. 1분기 금융업계 이슈였던 '홍콩 ELS 사태'를 대처하는 과정에서 배상금을 일시에 충당부채로 반영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연말 CEO 인사로 조직 리부팅... 내년 '경영 혁신' 본격화 전망
그렇지만 내년은 '첫눈에 반한 딸기 조합장 표(標)' 경영 혁신이 가시화할 것으로 업계에서는 전망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달 중순 예정된 농협경제지주 회장, 농협은행장을 비롯한 계열사 CEO 인사가 완성되면 조직이 리부팅되기 때문이다. 농협중앙회 서열 3, 4위에 해당하는 CEO 진용이 새로 갖춰지는 것이다. 농협 안팎에서는 탄핵 정국으로 이준석 농협금융지주 회장 교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준석 회장은 윤석열 대통령 대선캠프에서 활동했고 강호동 회장 취임에 앞서 지난해 1월 '낙하산 인사'라는 평가를 받으며 취임했다.
이준석 회장은 강호동 회장 취임 이후 농협 인사와 경영을 놓고 갈등을 빚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초 NH투자증권 대표이사 놓고 빚어진 갈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통과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연임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기 농협금융지주 회장 후보로는 이대훈 전 농협은행장이 거론되고 있다. 이석용 농협은행장도 앞서 언급한 배임 사고로 교체가 전망되고 있다.
차기 농협은행장 후보로는 강태영 NH농협캐피탈 부사장, 강신노 농협은행 리스크관리본부 부행장, 최영식 농협은행 기업금융부문 부행장이 거론되고 있다.
◆농가 소득 개선, 금융지주 혁신, 상호금융 독립 진행될 듯
강호동 회장이 내년에 우선적으로 추진할 경영 혁신으로는 농∙축협 경영 안정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는 농협중앙회의 존재 이유이자 강호동 회장의 선거 공약이기도 하다. 농협중앙회 산하에는 지역농협 916개, 지역축협 116개, 품목 농협 45개, 품목축협 23개, 인삼협 11개가 있다(2023. 12). 농협중앙회가 무이자 자금 20조원을 조성해 이들 농∙축협 조합 1곳당 200억~500억원을 지원해 농가소득개선의 발판을 마련한다는 것이 골자다.
농가 소득 개선은 농협중앙회 최우선 과제로 지적돼왔다. 지난해 국정감사 결과 농협 전체 조합원 200여만명 가운데 56만3000명이 채무를 지고 있고 이들의 총 부채액은 78조4000억원에 달했다. 여기에다 올해 고금리와 고유가에 냉해 등 기상이변까지 겹쳐 농업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회 협조를 이끌어내는 것이 필수적이다. 우호적 여론을 이끌어내는 것도 필요하다. 그런데 정치권이 탄핵 정국에 진입하면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강호동 회장이 어떤 경영 능력을 발휘해 이 문제를 풀어갈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농협금융지주에도 혁신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농협금융지주는 지난해 자산규모가 532조원에 달하는 메머드 조직이지만 경영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상호금융을 독립시켜 제1금융권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한다는 공약이 우선 추진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상호금융 독립은 금융 제도 개선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무이자 자금 20조원 확보에 비해 난이도가 낮다는 장점이 있다. 이를 위해 강호동 회장은 농협 상호금융 조직의 상품 개발과 인력 운용을 전문화하고 농∙축협 수익 창구를 다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말단 직원에서 회장까지…현장 중요시하는 '37년 농협맨'
강호동 회장은 지역농협 직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농협중앙회장에 올랐다. 1987년 경남 합천율곡농협에 입사해 37년을 근무한 '농협맨'이다. 농업인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업무에는 치밀하지만 격식에 구애받지 않고 임직원들의 대소사를 챙기는 '다정다감 스타일'로 알려졌다. 현장을 중요시해 논이나 밭에서 농민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강 회장이 올해 초 취임식 이후 가장 먼저 진행한 대외 활동도 '지역농협 및 경제사업장 현장 방문 경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