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직역연금(공무원, 교사 등 특정 직업인 가입 연금) 수급자와 배우자에게도 기초연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발표했으나, 일반 국민과 다른 별도의 소득 기준을 적용해 또 다른 사각지대를 만든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노동계와 국회는 단순한 기준 완화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일반 국민과 동일한 소득인정액 기준을 적용하는 완전한 제도 개편을 촉구했다.
한국노총과 공무원노동조합연맹은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직역연금 수급권자와 배우자에 대한 기초연금 차별 규정 철폐와 기초연금법의 온전한 개정을 요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법안을 대표 발의한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성남중원)을 비롯해 김현진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 신동근 공무원노동조합연맹 위원장, 송상재 전북특별자치도공무원노조 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8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직역연금 수급권자 및 배우자 기초연금법 개정안 발의 및 차별 철폐 촉구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범우 충청북도 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송상재 전북특별자치도 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신동근 공무원노동조합연맹 위원장,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운평 한국노총 공무원연맹 사무처장, 김현진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 윤덕윤 용인특례시 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노기영 가평군 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사진=더밸류뉴스]
현장에서는 지난 1일 정부가 발표한 ‘2027년 기초연금 개편 방안’이 12년간 이어진 직역연금 수급자의 원천 배제를 완화했다는 점은 긍정 평가하면서도, 일반 국민(소득 하위 70%)과 달리 직역연금 수급자에게만 ‘소득 하위 45% 이하’라는 차등 잣대를 들이댄 것은 불합리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 이수진 의원 “2029년부터 차등 규정 폐지…동일한 소득인정액 심사 받아야”
발언에 나선 이수진 의원은 정부의 개선 조치를 평가하면서도 직역연금 수급자라는 이유로 가해지는 차등 적용을 바로잡기 위해 기초연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전했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직역연금 수급권자 및 배우자에 대한 기초연금법 개정안 제안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더밸류뉴스]
이 의원은 “현행법은 직역연금액이 소득인정액 산정에 반영되고 있음에도 기준 심사를 하기도 전에 직역연금 수급권자와 배우자를 기초연금 대상에서 무조건 배제해 왔다”며 “정부가 소득 하위 45% 이하에 기초연금을 지급하는 개선안을 내놓은 것은 의미 있는 진전이지만, 일반 국민은 70% 이하인 반면 직역연금 수급권자는 45% 이하에만 지급하는 것은 차등 적용”이라고 짚었다.
이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은 과도기적 조치를 거쳐 완전한 평등 심사로 나아가는 단계적 로드맵을 담았다. 2027년부터 2028년까지 2년 동안은 정부안대로 차등 기준을 적용하되, 2029년부터는 원천 배제 및 차등 적용 규정을 전면 폐지해 일반 국민과 동일한 소득인정액 기준에 따라 기초연금 수급 여부를 심사하도록 규정했다.
이 의원은 “기초연금이 어떤 연금을 받느냐가 아니라 어느 정도의 노후 소득을 가지고 있는지 경제적 여건을 살펴 실질적으로 노후가 어려운 사람들을 두텁게 보장해야 한다”며 “공무원이나 직역연금 수급권자라 하더라도 노후 소득을 보장받지 못할 때는 일반 국민과 평등하게 보장받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 한국노총 “기초연금은 독립된 1층 연금…배우자 배제 모순 바로잡아야”
한국노총은 기초연금 본래의 도입 취지를 되짚으며 정부의 임의적 기준 설정을 비판했다.
김현진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이 정부 기초연금 개편안의 문제점과 노인 빈곤 완화 과제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더밸류뉴스]
김현진 상임부위원장은 “정부안에서 직역연금 수급자와 배우자를 포함한 것은 의미가 있으나, 소득 하위 45%라는 기준은 어떤 산출 근거로 나온 것인지 의문”이라며 “이 기준에 부합하지 못해 발생하는 사각지대를 정부가 어떻게 풀 것인지 답을 내놓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초연금이 국민연금이나 직역연금 등 소득비례 사회보험(2층 연금)과 구분되는 ‘독립된 1층 연금’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김 부위원장은 “배우자 본인이 직역연금을 받는 것이 아님에도 상대방의 연금 수급 이력 때문에 1층 연금 자격 자체를 박탈해 왔다”며 “기초연금이 제 역할을 하려면 다른 연금과의 연계를 이유로 수급 자격이나 금액을 깎는 구조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기초연금은 노인 빈곤 완화를 위해 만들어진 제도”라며 “정부의 과제는 예산 절감이 아니라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제도의 본래 취지를 다시 세우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 공무원연맹 “무조건 지급 요구 아냐…공정한 심사 기준 적용하라”
공무원노동조합연맹은 이번 정부 발표로 약 11만 명이 혜택을 보게 된 점은 진전이라면서도, 이것이 최종 종착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동근 공무원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이 직역연금 수급자에 대한 동일 기준 적용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사진=더밸류뉴스]
신동근 위원장은 “정부가 추산한 지급 대상이 약 11만 명에 이른다는 사실 자체가 그동안의 사각지대가 결코 소수에 국한되지 않았음을 입증한다”며 “소득 하위 45%라는 별도 기준에 갇히면 산정 기준 이하의 저소득층이라도 직역연금과의 관련성 때문에 배제되는 모순이 이어진다”라고 짚었다.
신 위원장은 “우리의 요구는 무조건적인 지급이 아니라, 실제 생활 형편을 심사해 동일한 조건에는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라는 것”이라며 “직역연금액은 공적 이전소득으로, 일시금은 재산으로 산정하고 배우자의 소득·재산도 함께 심사하면 충분하다”라고 설명했다.
송상재 전북공무원노조 위원장도 기자회견문을 통해 “공무원연금은 재직 중 본인이 낸 기여금에 기초한 사회보험이고 기초연금은 국가 노후 사회안전망”이라며 “두 제도의 성격이 다름에도 45%라는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중위 그룹의 사각지대를 방치하는 행정편의적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공무원이라는 신분이 차별적인 제도의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촉구했다.
결국 이날 기자회견은 정부가 물꼬를 튼 직역연금 수급자의 기초연금 편입 정책을 ‘절반의 개선’으로 규정하고, 완전한 형평성 확보를 위한 2단계 입법 과제를 제시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2027년 시행 전까지 45% 선별 기준을 둘러싼 형평성 논란과 국회 법안 심사 과정에서의 예산 확보가 핵심 쟁점으로 부각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