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계열사 내 노사 갈등이 심화되자 전문가들은 '반도체·바이오 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한 새로운 노사 해법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주주행동연구원은 1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7층 대회의실에서 '주주 관점에서 본 최근의 파업 이슈: 삼성 그룹 사례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좌담회를 개최해 삼성계열사 노사 갈등에 관한 전문가들의 진단을 구했다.
좌담회는 좌장인 강원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겸 주주행동연구원장의 모두 발언으로 시작됐다. 이 행사에는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강승훈 인하대 바이오제약공학과 교수,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이승길 한국ILO협회 회장, 정무권 국민대 경영대학 교수 등이 참석했다.
강원(오른쪽 세번째)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겸 주주행동연구원장이 15일 좌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더밸류뉴스]강원 교수는 “최근 국내 주요 기업에서 성과급을 둘러싼 노사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며 “과거 노동 쟁의가 노사 간 문제였다면 이제는 소액주주와 협력업체, 국민연금 가입자, 청년 투자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동시에 영향을 받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강 교수는 “이번 기회를 통해 답이 보이지 않는 문제에 대한 해결이 단초만이라도 제안할 수 있다면 충분한 성과”라며 좌담회의 의의를 밝혔다.
◆ 법적 한계 부딪힌 영업이익 배분 요구..."지속 가능성 의문"
노조의 성과급 및 자사주 요구가 단순한 노사 갈등을 넘어 현행 회사법 체계와 주주의 재산권을 위협하는 수준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더밸류뉴스]권재열 교수는 회사법적 관점에서 노조의 요구가 가진 모순을 짚었다. 권 교수는 "영업이익을 근간으로 한 성과급 배분은 너무나 생경한 것"이라 말했다. "법인세와 주주 배당금 산정 이전 단계에서 영업이익의 특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받는 것은 주주의 권리를 선취하겠다는 의미"라며 법이론적으로 수용하기 어렵다고 관측했다. 주주는 회사의 이익의 직접적인 이해관계자인 반면, 근로자는 확정 수익자임에도 주주의 권리를 가지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승길 한국ILO협회 회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더밸류뉴스]
이승길 협회장은 노조의 거액 성과급 요구가 거시 경제와 노동 시장 전반에 미칠 연쇄적인 파급 효과를 우려했다. 이 협회장은 "평균 1억5000만원 수준의 기본 수입에 수억원대의 성과급을 요구하는 현 상황은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어렵다"며 "기업의 장기적인 고용 유지 측면에서도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협회장은 일본 도요타의 사례를 언급하며 선도 기업이 가지는 임금 가이드라인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도요타는 높은 성과를 내더라도 임금을 동결하거나 인상률을 1~3% 수준으로 조절해 타 기업들의 동요를 막는 기준점 역할을 해왔다"며 "국내 선도 기업이 SK하이닉스의 인상 선례만을 따라가는 것이 지속가능한 선택일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 멈추면 폐기되는 반도체·바이오 공정..."국가 경제 심각한 타격"
삼성전자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영위하는 반도체·바이오 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파업으로 인한 공정 중단은 단순한 단기적 생산 차질을 넘어 기업의 중장기적 경쟁력과 국가 경제에 치명적인 리스크를 초래한다는 분석도 이어졌다.
강승훈 인하대 바이오제약공학과 교수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더밸류뉴스]강승훈 교수는 엄격한 규제 산업인 바이오 분야의 특수성을 들어 피해 규모를 경고했다. 강 교수는 "바이오 의약품은 살아있는 세포를 다루기 때문에 배양부터 정제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연속공정이 핵심"이라며 "파업으로 공정이 중단되면 세포 사멸과 단백질 변성 등 대규모 품질 저하가 불가피하며, 이는 필수 의약품 공급 중단이라는 재난적 상황으로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위탁생산(CMO: Contract Manufacturing Organization) 전문 기업에게 가장 중요한 고객사(글로벌 빅파마)와의 신뢰가 무너질 경우, 기업의 브랜드 가치 하락과 글로벌 시장 점유율 감소라는 연쇄적 타격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강 교수의 이어진 지적이다.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더밸류뉴스]
송헌재 교수는 반도체 산업의 셧다운 리스크를 언급했다. 송 교수는 "반도체 라인이 멈추게 되면 공정 중인 웨이퍼를 전량 폐기해야 하고, 재가동에도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투입된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치열한 글로벌 경쟁 상황에서 파업으로 인해 '신뢰'라는 큰 자산이 무너지면 삼성전자의 경쟁력이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으며, 이는 우리나라 전체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도 송 교수는 "파업이 항상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며 “경영진의 무능이나 부패를 견제하는 순기능도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다만 “현재 삼성 상황이 그런 단계 인지에 대해서는 사회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여지를 남겼다.
◆ 성과급, FCF·RSU로 지급해야...“영업이익 아닌 현금흐름 기준도”
정무권 국민대 경영대학 교수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더밸류뉴스]정무권 국민대 교수는 성과급 논란을 “기업가치와 주주권 보호의 문제”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하며 기업의 장기 투자를 고려한 해법을 제안했다.
정무권 교수는 “영업이익은 단순한 노사 간 분배 대상이 아니라 미래 투자와 장기 기업가치 창출의 핵심 재원”이라며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에 연동하는 방식은 주주와 근로자 간 비대칭적 위험·보상 구조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이어 성과급 기준을 ‘영업이익 증가분’ 또는 ‘잉여현금흐름(FCF) 증가분’에 연계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는 “FCF는 영업현금흐름에서 설비투자(CAPEX) 재원을 제외하고 남는 현금”이라며 “대규모 선행투자가 필요한 산업에서는 투자 이후 남는 현금흐름을 기준으로 성과급을 설계하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특히 근로자 역시 하방위험(downside risk)을 일정 부분 공유한다는 점에서 보다 균형적인 보상 체계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성과급 일부를 제한주식(RSU: Restricted Stock Units) 형태로 지급하는 혼합형 보상 체계도 제시했다.
정 교수는 “주식 기반 보상은 근로자와 주주가 동일한 목표를 공유하게 만든다”며 “단기 현금 보상보다 장기 기업가치 제고와 이해상충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성과급 문제는 단순한 임금 배분 차원을 넘어 기업의 미래 투자 재원을 누구와 어떤 기준으로 나눌 것인가의 문제”라며 “장기 기업가치와 주주권 보호를 함께 고려하는 방향으로 성과보상 체계를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반도체·바이오 파업, 국가 산업 위협...“정부 역할 필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7층 대회의실에서 15일 '주주 관점에서 본 최근의 파업 이슈: 삼성 그룹 사례를 중심으로' 좌담회가 개최됐다. [영상=더밸류뉴스]이어진 질의응답에서는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과 국가 전략산업 특수성을 반영한 제도 개선 필요성을 둘러싼 논의가 이어졌다. 특히 긴급조정권 실효성을 두고는 “실제 발동까지는 현실적 부담이 크다”는 의견과 함께 “파업 이후 대응이 아니라 사전에 조정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승길 협회장은 “정부가 노사 어느 한쪽 편을 들 수는 없지만 반도체 산업 특수성을 반영한 입법적·행정적 장치 마련은 필요하다”며 “사후 약방문 식 대응이 아니라 일정 시점을 데드라인으로 두고 그 이전에 합의를 유도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협회장은 또 “현재 상황은 기존 노동법 체계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거시경제와 국가 전략산업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좌담회 참석자들은 삼성 계열사 파업이 더 이상 개별 기업의 임금 갈등에 머무르지 않고 주주·근로자·협력업체·국민연금 가입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얽힌 새로운 충돌로 확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