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그레(대표이사 전창원)가 해외 시장에서 연이은 성공을 거두며 글로벌 식품 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 메로나와 바나나맛우유를 앞세운 현지화와 고마진 아이스크림 부문 강화 전략이 빛을 발하면서 지난해 해외 매출이 사상 최대인 1540억원을 달성했다. 빙그레 해외 매출은 최근 5년간 연평균 19.5%로 급성장, 올해는 해외 비중 13%를 넘어설 전망이다. 한편 빙그레는 지주사 전환 계획을 철회하고 주주가치 제고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선회하며, 제로 빙과 '딥앤로우' 등 건강 중심의 제로 식음료 글로벌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빙그레 지배구조와 현황. 단위 %. [자료=공정거래위원회]
◆아이스크림 매출 비중 57.9% 차지...'고마진 제품 전환' 효과
빙그레가 2024년 매출액 1조4630억원, 영업이익 1313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대비 매출 4.9%, 영업이익 17% 증가한 수치다. 특히 당기순이익은 19.7% 증가한 1032억원을 달성해 기업의 수익성이 크게 개선됐음을 보여줬다.빙그레 최근 10년 연간 실적 및 주요 연혁 [자료=더밸류뉴스]
실적 호조는 제품 포트폴리오 재편에 따른 결과로 분석된다. 지난해 빙그레의 제품별 매출 비중은 냉장품목군(우유·유음료) 42.1%(6155억원), 냉동 및 기타품목군(아이스크림) 57.9%(8476억원)로, 수익성 높은 아이스크림 부문이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는 빙그레가 저마진 유제품에서 고마진 빙과류로 매출 구조를 전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원재료 측면에서 원유 가격이 지난 2022년 kg당 1100원에서 지난해 1208원으로 상승했으며, 같은 기간 매입액도 1596억원에서 1676억원으로 증가했다. 이러한 원가 부담에 대응해 빙그레는 3월부터 '더위사냥'(800원→1,000원), '슈퍼콘'과 '붕어싸만코'(1,200원→1,400원) 등 주요 제품의 가격을 인상했다.빙그레 품목별 및 국내외 매출액 비중. [자료=전자공시시스템]
빙그레는 해태아이스크림 인수 이후 통합된 생산체제 안정화를 통해 규모의 경제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또한 국내 빙과 시장이 롯데웰푸드와의 양강 체제로 정착하면서 과거 과도한 경쟁이 완화되어 수익 구조가 한층 견고해졌다. 유안타증권은 빙그레의 올해 예상 매출액을 전년대비 6.4% 늘어난 1조5563억원, 영업이익은 15.7% 증가한 1519억원으로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빙그레, 현지 맞춤형 전략으로 글로벌 진출 가속화...미국 법인 매출 35% 성장
빙그레의 해외 시장 진출이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해외 매출 비중이 전체 매출의 12%에 이르며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빙그레 해외 매출은 지난 2019년 632억원에서 지난해 1540억원으로 5년간 연평균 19.5%의 가파른 성장률을 보였으며, 올해는 수출 비중이 13%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핵심 수출 제품인 '메로나'는 미국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 애널리스트는 이를 두고 '메로나로 미국을 녹였다'고 표현했다. 코스트코 전체 매장에 성공적으로 입점한 메로나는 미국 내 한국 아이스크림 시장의 약 70%를 점유, 연간 1800만개 이상이 판매되고 있다. 빙그레 미국 법인 매출은 지난 2023년 598억원에서 지난해 804억원으로 35% 성장했고, 해당 기간 미국 아이스크림 수출액은 전년대비 약 40% 증가한 2468만 달러를 기록했다.
K-빙과 시장 매출 성장 추이. [자료=스태티스타]현지화 전략도 성공의 주요 요인이다. 빙그레는 북미 소비자의 취향을 고려한 '메로나 피스타치오 맛', 유럽 시장을 겨냥한 '식물성 메로나' 등 지역별 맞춤형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특히 빙그레는 미국·중국·베트남에 이어 유럽, 호주, 중동, 인도 등으로 시장을 확대하며 글로벌 성장을 가속화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업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K-빙과 시장 매출은 올해 2조8600억원에서 오는 2030년까지 연평균 3.09% 성장율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또 다른 시장 조사 기업 리서치앤마켓은 제로 식음료 시장이 2024년부터 2029년까지 8조원 규모로 성장, 연평균 성장률 11.3%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러한 트렌드에 발맞춰 빙그레는 최근 저당 아이스크림 브랜드 '딥앤로우(deep & low)'와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우유'를 출시하며 건강 지향적인 소비자들을 공략하고 있다.제로(Zero) 식음료 글로벌 시장 성장 추이. [자료=리서치앤마켓]
빙그레는 이번 신제품 출시를 시작으로 딥앤로우의 제품 라인업 확장을 통해 저당 아이스크림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이달 말에는 딥앤로우 치어팩 2종(소프트바닐라·소프트멜론), 소프트바 2종(쫀득초코바·쫀득카라멜바)이 출시될 예정이다.‘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우유’는 당 섭취를 지양하는 소비자들에게 좋은 대안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빙그레, 인적분할 철회 후 3세 경영 체제 속도 조절...단기 구조개편→장기성장 집중
빙그레는 창업주 김창섭 회장, 2세 김호연 회장을 거쳐 지금 3세 경영으로 나아가고 있다. 지난해 11월 3세 경영을 염두에 두고 이사회를 통해 빙그레홀딩스(존속회사)와 빙그레(신설회사)로 인적분할을 추진했으나, 2개월만인 올해 1월 계획을 전격 취소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승계 과정에서 변수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빙그레 측은 “더 명확한 주주가치 제고 방안 마련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이라는 구체적 조치로 주주와의 소통을 강화하고 단기적 구조 개편보다 장기적 안정성과 성장,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우선시하겠다는 전략이다. 빙그레는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을 발표했다. 지난해 결산배당으로 주당 3300원(시가배당률 3.4%)을 책정해 전년(2600원) 대비 700원 증액했다. 배당기준일은 지난 20일이다. 이는 빙그레가 공언한 별도 재무제표 기준 당기순이익의 25~35%를 주주환원 재원으로 활용한다는 중장기 배당 정책에 따른 것이다. 또한 자사주 29만5538주(발행주식 총수의 3.0%)를 소각하기로 결정해 주주가치 제고에 나섰다.
빙그레 최근 5년 해외 매출 성장 추이. [자료=더밸류뉴스]3세 경영 체제 전환도 이뤄지고 있다. 장남 김동환 사장은 글로벌 사업과 신사업 발굴을 통해 미국, 중국, 베트남 등 주요 해외 시장에서 성과를 거뒀고, 차남 김동만 본부장은 ‘빙그레우스’와 이색 마케팅 전략으로 브랜드 혁신의 새 지평을 열고 있다. 두 사람은 각각 냉장·냉동 물류 계열사 '제때' 지분 33.3%를 보유하고 있다(김호연 회장 자녀→제때→빙그레). 그간 논란에도 빙그레는 기존의 안정성을 바탕으로 글로벌 확장과 제품 혁신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유업계가 건강 중심의 소비 트렌드와 글로벌 시장 경쟁 심화에 직면한 상황에서 건강 기능식품 부문 강화, 해외 시장 확대, 고마진 제품 중심 포트폴리오 재편 등은 빙그레 3세 경영의 중요한 과제가 될 전망이다.
시장에서는 빙그레가 추진할 지주사 전환의 재시도 시기와 방식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호연 회장이 강조하는 '명확한 사업 방향성 수립'이 어떤 형태로 구체화될지, 그리고 이 과정에서 3세 경영자들의 역할이 어떻게 정립될지가 빙그레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다만 지주사 전환과 3세 경영 승계는 빙그레의 장기적 성장 전략과 조화를 이루며 신중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