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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집단 탐구] ㊷KT, 민영화 20여년에도 외풍에 흔들리는 '통신 키플레이어'

- 체신부 전화국 → 공기업 → 2002년 5월 민영화... IPTV·초고속인터넷 등 4개 부문 1위

- 민영화 20여년에도 외풍에 흔들려... 구현모 CEO, 연임하려다 중도 퇴임

  • 기사등록 2024-01-27 21: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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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의 '2023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이름을 올린 국내 대기업집단의 지배구조와 경영 현황, 비즈니스 전략 등을 분석하는 '대기업집단 탐구'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재계순위'로도 불리는 공정위의 올해 공시대상기업집단을 심층 분석해 한국 경제와 재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겠습니다.[편집자주]
[더밸류뉴스=이민주 이혜지 기자]

김미례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산다 2013'에는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KT가 냉혹한 자유경쟁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임직원들을 구조조정하면서 빚어지는 갈등을 그리고 있다. 


여기에는 '날아다니는 직원들'이 등장한다. '날아다니는 직원들'이란 KT사측이 인사고과 저평가자(F등급자)로 분류한 직원을 말하며 이 직원은 자신과 연고가 없는 지역으로 '날아간다'(발령받는다). 이 영화에 나오는 KT직원 곽재복씨는 집이 충북 청주인데 전북 전주로 '날아갔다'. 영화는 그가 8년째 무연고 전북 전주에 홀로 근무하면서 중증 우울증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의사로부터 "집에 돌아가 가족과 지내야 한다"는 소견서를 받아 사측에 보여주지만 거부당한다. 


KT현황과 지배구조. 2023년 12월. 단위 %. [자료=금융감독원]

◆IPTV·초고속인터넷 등 4개 시장 1위... '공유지의 비극' 해소 성과


또 다른 KT 직원 김모씨는 2013년 6월 전남 순천의 어느 주차장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임금·단체협약 찬반투표에 앞서 회사가 "반대하면 날아갈 수 있으니 알아서 찍으라"며 찬성을 강요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영화에는 가족과 홀로 떨어져 외지에서 지내는 '날아다니는 직원들'이 나온다. 


한편으로 이 영화에는 KT가 민간기업이 수익성에 얽매여 주저하는 사업에 앞장서면서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을 해소하는 모습도 나온다. 전화 회선 수리를 위해 시골을 찾은 KT 직원이 “전화국에서 왔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네자 시골 노인은 시원한 물을 내준다(2000년대까지만 해도 전화국은 KT 주요 사업이었다). 고맙다는 표시다. KT는 가입자가 단 한 명인 산간 오지에도 직원을 보내 전화를 가설해준다. 


'산다 2013'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KT(대표이사 김영섭)는 한국 경제를 이끌어가는 대기업집단 가운데 차별화된 역사와 지위를 갖고 있다. KT는 역대 정부가 추진해온 'ICT(정보통신기술) 강국 실현'의 실무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으며, 덕분에 정부 산하 기관에서 출발한 대기업집단 가운데 가장 큰 사이즈를 갖게 됐다. 이같은 특징은 KT의 현재 모습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KT그룹 주요 계열사 매출액.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

KT는 지난해 초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한기정)가 발표한 공시대상기업집단(일명 대기업집단) 12위를 기록했다. 매출액 31조560억원, 순이익 1조5480억원으로 전년비 매출액은 4.00% 증가했고 순이익은 0.04% 감소했다. 계열사는 KT스카이라이프, 나스미디어, 지니뮤직(이상 상장사), KT텔레캅, KT링커스(이상 비상장사) 등 50개로 전년과 동일했다. 


KT는 정부조직(체신부)에서 출발해 공기업(한국통신)을 거쳐 '사이즈'가 가장 거대해진 대기업집단이다. KT와 '족보'가 유사한 대기업집단으로 KT&G(대표이사 백복인)가 있지만 대기업집단 34위로 한참 아래에 있다. KT는 한때 대기업집단 5위(2004년)를 기록하기도 했고, 최근 어느 연구소가 발표한 국가경제공헌도 순위에서 10위를 기록했다. '포스'가 다르다는 의미다. KT의 또 다른 피어그룹(비교그룹 peer group)으로 거론되는 포스코는 정부 산하 기관이 아니라 민간 법인으로 출발했다는 차이점이 있다.  



KT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면 곳곳에 '정부 정책'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KT는 국내 초고속인터넷, IPTV(유료방송), 유선전화(시내전화), 위성통신의 4개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동통신 시장에서는 SK텔레콤에 이어 2위 사업자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IPTV(유료방송) 시장에서 KT는 24.23%(878만명)로 2위 SK브로드밴드(641만명·17.71%)를 훌쩍 앞서고 있다. 이어 3위 LG유플러스 536만명(14.79%), 4위 LG헬로비전 369만명(9.15%), 5위 SK브로드밴드 283만명(7.81%) 순이다. 


초고속인터넷 시장에서도 KT는 945만명(41.2%)으로 2위 SK브로드밴드 658만명(38.7%. SK텔레콤 합산)을 앞서고 있다. 3위는 LG유플러스 475만명(20.7%)이다. 유선전화(시내전화) 시장에서는 압도적 1위(81.8%)이고 2위 SK브로드밴드 15.15%,  3위 LG유플러스 3.0% 순이다. 


이동통신 시장에서 KT는 1691만명(22.19%)로 SK텔레콤(39.95%, 3045만명)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다. 3위는 LG유플러스 1578만명(20.71%)이다(이상 2022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발표 기준). 


KT의 이같은 성과는 역대 정부가 추진해온 'ICT(정보통신기술) 강국 실현'의 실무 조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대가의 성격이 있다. KT는 앞서 언급한대로 민간 기업들이 수익성에 얽매여 주저하는 사업을 충실히 수행했고 그러다 보니 민간 기업이 넘보기 어려운 경쟁력을 갖게 됐다. 전국의 산간오지 곳곳에 초고속인터넷망, IPTV 회선을 보유하고 있는 곳은 KT가 유일하다.  


◆'대기업집단 12위' 걸맞지 않는 사건, 사고 터져


여기까지는 정부 정책의 수혜자로서 긍정적 측면이다. 그런데 한 꺼풀 뒤집어보면 KT의 다른 모습들이 발견된다. 다시 말해 KT는 재계 10위권 대기업집단이라고 보기에게는 어처구니없는 실수와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있다. 정부 정책의 수혜자로 성장하다 보니 '어른 몸집을 가진 아이' 같은 모습이 발견되는 것이다. 

 

잊혀질만 하면 터지는 본업에 관련된 사건, 사고가 대표적이다. 


가장 최근에는 2021년 10월 인터넷 장애 사태가 있었다. KT의 유·무선 인터넷 서비스가 전국적인 접속 마비 장애를 일으켰다가 약 1시간 30분 만에 복구됐다. 전국에서 인터넷 검색은 물론 증권거래 시스템, 카드 결제 시스템, 인터넷 전화 등 KT인터넷망을 사용하는 서비스가 일제히 먹통이 됐다. 앞서 2018년 2월에는 IDC장애사태(2018. 2)가 있었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객 개인정보 유출사건(2016. 9), 세계 7대경관 사기극(2011) 등이 나온다. 경쟁사 SK텔레콤,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등에서는 좀체 벌어지지 않는 사건, 사고이다. 


최근 10년 KT 실적과 연혁.  

본업에 관련되지 않는 부분에서도 '미숙함'이 드러나고 있다. 국회의원 쪼개기 후원, 계열사(KT파워텔) 기습 매각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국회의원 쪼개기 후원이란 황창규 전 회장 시절 KT가 상품권을 구매해 조성한 비자금을 임직원·지인 명의로 100만~300만원씩 금액을 분할해 국회의원 후원금으로 사용했다는 혐의로 대관(對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수준 낮은' 대관 기법으로 회자되고 있다. 재계의 한 인사는 "KT 피어그룹에 해당하는 포스코가 설립 당시부터 자유 경쟁 시장에서 생존법을 터득해왔다면 KT는 정부 산하 기관에서 출발했다는 차이점이 있다"면서도 "올해로 민영화 22년째임에도 수준 낮은 사건, 사고가 벌어지는 것은 생각해볼 일"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현재 KT는 사실상 성장을 멈춘 상태다. KT의 최근 5년(2017~2022) 매출액 CAGR(연평균증가율)은 1.86%에 불과하다. 이는 그나마 구현모 CEO 재임기간(2020. 3~2023. 3)의 성과 덕분이고 기간을 최근 10년(2012~2022)으로 늘려보면 0.73%에 불과하다. 한국 경제 성장률(약 1.5%)에도 뒤지는 수치이다.


CEO 5명 중 4명이 연임 실패... 정권 바뀔 때마다 교체 수난


KT가 마주한 또 다른 도전은 'CEO 수난'이다. 더밸류뉴스 취재 결과 2002년 5월 민영화 이후 역대 KT CEO 5인(이용경·남중수·이석채·황창규·구현모) 가운데 4명이 연임에 실패한 것으로 조사됐다. 


역대 KT CEO.

민영화 이후 첫 CEO인 이용경 전 대표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연임 의사를 밝혔다가 2005년 6월 돌연 이를 철회하고 후보 공모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어 남중수 당시 KTF 대표가 2005년 8월 대표이사에 취임했고, 2008년 2월 주주총회에서 재선임을 받았다. KT 민영화 이후 첫 연임에 성공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해 2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고 11월 납품 비리 혐의로 구속 수감되며 물러났다. 


그러자 2009년 1월 이석채 회장이 취임했고 3년이 지난 2012년 3월 주주총회에서 재선임되며 2015년 3월까지 임기를 보장받았다. 그렇지만 2013년 2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교체설에 시달렸고 그해 11월 검찰 압수수색을 받자 사퇴 선언을 했다. 


2014년 1월 취임한 황창규 회장은 3년이 지난 2017년 3월 주주총회에서 재선임을 받고 유일하게 연임에 성공했다. 그는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회의원 쪼기기 후원 혐의로 사퇴 압박을 받았지만 자리를 지켰다. 구현모 전 대표는 2020년 3월 취임해 통신 3사 최초로 매출 25조원 시대를 여는 성과를 냈다. 이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연임 의사를 밝혔지만 올해 2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자 자진 사퇴했다. 


KT CEO 수난사를 "공기업에서 출발했으니 어쩔 수 없다"라고 하기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KT와 '족보'가 유사한 KT&G의 경우 백복인 대표가 3연임에 성공하며 8년째 장수 재임하고 있다. 백복인 대표는 2015년 12월 첫 CEO에 취임했고 3년 후인 2018년 2월 사장후보추천위원회가 백 후보를 단독 사장 후보로 추천하고 의사회에서 의결하면서 연임이 확정됐다. 그러자 3월 최대주주 국민연금이 '중립의결권행사'를 결정하면서 백복인 대표 연임이 확정됐다. 2021년 초에도 유사한 방식으로 3연임에 성공했다. 


또, KB금융지주는 최근 윤종규 회장 후임 선임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1년 후배인 허인 전 KB국민은행장 대신 양종희 부회장을 선임하면서도 무리없이 CEO 인사를 완성했다. KB금융지주는 놀랍도록 깔끔하고 세련된 회장 선임 장면을 보여주었다. KB금융지주도 외풍에 흔들리던 시기가 있어지만 지난 시행착오를 복기하며 치밀하게 액션 플랜을 가동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새 CEO 김영섭, "CEO 선정 플랜 완성해야" 과제 


이런 배경 때문에 김영섭 신임 대표가 어느 정도의 혁신을 이룰 지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김영섭 대표는 낙하산 인사가 아니라는 '자산'을 갖고 취임했다. LG CNS 대표로 재임 중 조직개편과 인사평가 방식을 개선한 점이 이번 CEO 선정 과정에서 평가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섭 KT 대표가 지난해 9월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 모바일 360 아시아태평양(APAC)’에서 기조연설하고 있다. [사진=KT]

김영섭 대표는 최근 "KT가 다시 위상을 회복하는 새 출발하는 '잘 된 인사'를 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재계의 한 인사는 "KT에는 이제 뛰어난 인력도 많고 자원도 풍부하다. 아직까지 이것들을 꿰어 맞추지 못했을 뿐이며 이것이 바로 김영섭 대표가 해내야 할 미션"이라고 말했다. 또, "김영섭 대표에 대한 평가는 그가 후임 CEO를 얼마나 깔끔하게 선정하고 물러 나느냐에 달려있다"며 "무한경쟁 시대에 KT가 영속기업(going concern)이 되기 위해서는 글자 그대로 뼈를 깎는 혁신을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영섭 대표가 역대 KT CEO들 가운데 각별하게 주목받고 있는 배경이다. 


※ 이 기사에는 KT를 다년간 출입한 기자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hyejipolic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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