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근당(회장 이장한)은 한국 소비자들에게 존재감이 크게 느껴지는 제약그룹이다. 국내 제약사들을 대상으로 브랜드 조사를 해보면 종근당은 예외없이 최상위권에 자리하고 있다.
종근당이 이같은 존재감을 갖게 된 배경으로는 차별화된 마케팅이 있다.
종근당이 제작한 다수의 CF에는 우람하고 묵직한 종(鐘)에서 '두웅~'하는 낮고 둔탁한 종소
리가 나오는데 이는 성공한 CF로 인정받고 있다. 또, 지금의 시니어 세대들은 1990년대 중반 하이틴 스타 정혜영이 종근당의 두통약 '펜잘' CF에서 펜잘을 먹기 전과 이후의 표정이 찡그려졌다가 환하게 바뀌는 세밀한 변화를 담아낸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이 CF는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슬로모션 기법으로 화제가 됐다. 비슷한 시기에 개그맨 김국진은 종근당 소화제 '속청' CF출연해 "나 소화 다 됐어요~"라는 멘트로 대박을 치기도 했다.
종근당은 실제로도 국내 제약업계의 키플레이어다.
매출액 기준으로 종근당은 '제약 빅3'에 속한다. 지난해 매출액 기준으로 국내 제약사 순위를 매겨보면 유한양행(1조7758억원), 녹십자(1조7113억원)에 이어 종근당(1조4883억원)이 3위를 기록했다(이하 K-IFRS 연결). 이어 한미약품(1조3315억원), 대웅제약(1조2801억원) 순이다.
◆매출액 연평균 10.97%↑... '제약 빅3' 가운데 가장 가팔라
눈여겨볼 부문은 종근당의 성장세이다.
최근 4년(2018~2022) 종근당의 매출액 연평균 증가율은 10.97%로 매출액 1, 2위인 유한양행(7.40%), GS녹십자(6.41%) 보다 가파르다. 조(兆) 단위 기업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성장률이 양호한 편이다(기업은 '사이즈'가 커질 수록 성장률이 둔화된다). 이 기간 평균 영업이익률은 7.89%로 국내 제조상장사 평균 영업이익률 6~7%를 상회하고 있다.
조사 기간을 넓혀 기업분할(지주사전환) 첫해인 2014년 이후 지난해까지 8년을 살펴보면 종근당의 매출액은 단 한차례도 감소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이 기간 매출액 연평균증가율(CAGR)은 13.40%이다.
종근당의 이같은 양호한 성장은 무엇보다도 신약(original)이 잘 팔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제약사들이 판매하는 약은 크게 신약과 복제약(generic)으로 나뉘는데 종근당이 판매하는 약은 100% 신약(완제의약품)이다. 신약이란 특허가 부여된 의약품을 말하며 제약사가 오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연구개발비를 투입해야 가능하다. 복제약이란 특허 오리지널의 특허 만료 이후에 만들어진 약으로 '카피약'으로도 불린다.
지난해 종근당의 주요 신약의 매출액 비중을 살펴보면 당뇨치료제 자누비아(9.3%),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케이캡(8.2%), 골다공증 치료제 프롤리아(6.4%), 뇌혈관질환 치료제 글리아티린(5.5%), 고지혈증 치료제 아토젯(5.4%), 고혈압 치료제 달리트렌(3.6%), 골관절염 체료제 이모튼(3.2%), 면역 억제제 타크로벨(2.9%), 고혈압치료제 텔미누보(2.7%), 면역억제제 사이폴엔(2.0%) 순이다. 매출액이 특정 제품에 편중돼 있지 않고 골고루 분포돼 있다. 상당수 제약사들이 몇가지 효자 품목에 편중돼 있는 것과 대조적인데, 이에 따라 종근당은 특정 약품의 판매 부진 리스크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뇌기능 개선제 글리아티린과 고지혈증 치료제 아토젯이 전년동기대비 각각 11.2%, 13.6% 증가해 성장을 견인했고, 루센티스 바이오시밀러 루센비에스주와 고혈압 고지혈증 4제 복합제 누보로젯, 건강기능식품 등의 신제품 시장 침투도 순조롭게 진행됐다.
◆연구개발비 두 자리수... 유전자 치료제·항암제 성과
종근당의 이같은 신약 성과의 배경에는 두 자리수에 이르는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가 있다. 기업분석전문 버핏연구소가 지난해 국내 주요 제약바이오 기업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를 조사한 결과 종근당은 10위(12.10%)를 기록했다. 전통 제약사로 모집단을 좁혀보면 일동제약(19.67%), 대웅제약(17.27%), 동아에스티(17.25%), 한미약품(13.12%), GC녹십자(12.14%)에 이어 6위를 기록했다.
유전자치료제, 세포치료제와 같은 첨단바이오의약품과 ADC 항암제 등으로 신약 개발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바이오신약 개발에도 도전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유럽종양학회에서 항암 이중항체 바이오 신약인 ‘CKD-702’의 임상 2상 권장 용량을 결정하고 약동학적 특징, 안전성 및 항종양 효과를 평가한 임상 1상 파트(Part) 1 결과를 발표했다.
◆'건기식 전문' 종근당건강 '락토핏', 사업 다변화 기여
종근당이 사업다변화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것도 고성장 비결로 꼽힌다. 종근당그룹의 주요 계열사 매출액에서 종근당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는 건기식(건강기능식품) 전문 종근당건강이 여기에 해당한다.
종근당건강의 '킬러 상품'으로 꼽히는 유산균 ‘락토핏’은 2020년 ‘1초에 1통씩 판매’를 신기록을 달성했다. 앞서 2018년 ‘3초 유산균’이라고 불린지 2년도 채 안돼 기록을 경신했다. 락토핏은 유산균을 의미하는 ‘락토(Lacto)’와 꼭 맞다는 의미의 ‘핏(Fit)’을 합한 이름이다. 오프라인 중심의 판매형태에서 온라인으로 확대해 매출 성장을 앞당겼다(락토핏이 종근당 계열사 제품이라는 사실을 아는 소비자가 의외로 많지 않다). 종근당건강은 지난해 매출액 5450억원, 영업손실 295억원, 당기순손실 325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비 매출액이 11.45% 감소했고 영업손익과 당기순손익이 각각 적자전환했다.
정리해보면 종근당은 신약 개발, 사업 다변화, 차별화된 마케팅의 3박자가 맞아 떨어져 고성장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고촌 이종근 창업 회장, 신약 개발 기반 닦아
이같은 경쟁력의 기반을 닦은 인물은 고(故) 고촌(高村) 이종근(1919~1993) 창업 회장이다.
그는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1931년 12세에 서울로 올라와 철공소 견습공, 정미소 쌀 배달원을 하다 우연히 약품 외판원을 시작하며 제약과 인연을 맺었다. 1941년 5월 7일 22세에 서대문구 아현동 아현초등학교 옆에 네 평 가게를 얻어 궁본약방(宮本藥房)을 창업했는데, 이 날이 현재 종근당 창업일이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4월에 아현동 서서울삼성아파트 옆에 종근당약방을 창업했다. 회사명에 자신의 이름(종근)을 넣었는데, 여기에는 "내 이름을 걸고 회사와 운명을 같이 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고촌은 종근당약방 2층에 대광화학연구소라는 종근당의 첫 연구소를 설립하고 1949년 10월 첫 제품인 다이아졸연고를 출시했는데, 이것이 국내 최초 튜브형 항생제이다. 1950년 2월에는 2호 제품 '강신(强新) 빈대약'(살충제)을 내놓았다. 이같은 기술력에 힘입어 1969년에는 국내 총 의약품 수출의 56.5%를 종근당이 담당했다. 1968년 국내 제약사 최초로 클로람페니콜의 미국 FDA 공인을 획득했다.
현 오너는 고촌의 장남 이장한 회장으로 이종근 회장 타계 이듬해인 1994년 종근당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현재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다. 이장한 회장 장남 이주원씨는 부동산 개발 사업을 하는 종근당산업 이사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