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이 2025년 1월 임시주주총회에서 최대주주인 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한 행위를 법원이 위법한 불법행위로 판단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7민사부(부장판사 장지혜)는 지난 7월 10일 영풍이 고려아연 박기덕 대표이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 영풍의 청구를 인용하고, 박 대표에게 손해배상금 1억원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고려아연이 2025년 1월 임시주주총회에서 해외 계열사인 SMC를 활용해 상호주 관계를 형성한 뒤 이를 근거로 최대주주인 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한 행위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법원이 판단한 것이다.
법원은 또한 당시 주주총회 의장이었던 박기덕 대표의 불법행위책임과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이는 앞선 가처분 결정들이 의결권 제한의 위법성을 판단한 데서 더 나아가, 불법행위와 손해배상책임까지 인정한 첫 본안 민사판결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법원은 호주 회사인 SMC가 주식 양도 제한, 주주 수 제한, 상장 제한 등 폐쇄적 구조를 가진 회사로 우리 상법상 주식회사와 동종 또는 가장 유사한 회사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SMC는 상법 제369조 제3항의 '자회사'에 해당하지 않으며, 이를 전제로 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한 박 대표의 행위는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법원이 기존 경영진의 경영권 방어 목적과 박 대표의 고의에 의한 불법행위를 인정했다는 점이다.
법원은 고려아연이 임시주주총회를 앞두고 "기존 경영진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방편으로 SMC를 통한 상호주 취득을 검토하였다"고 인정했고, 박 대표 역시 의결권 제한이 "경영권 방어를 위한 일환이었다"고 진술한 사실을 판결문에 적시했다.
이는 최윤범 이사 측의 “적대적 M&A에 대한 방어행위”라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기존 경영진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불법적으로 제한한 것을 문제 삼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법원은 박 대표가 고려아연 대표이사이자 SMC 이사로서 상호주 형성과 의결권 제한 전 과정에 직접 관여했고, 법률적 쟁점과 결과를 충분히 숙고할 시간과 기회가 있었음에도 기존 경영진의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의결권 제한을 강행했다고 판단했다.
특히 박 대표가 주주권 침해 가능성을 충분히 인식하거나 적어도 인식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용인한 채 의결권 제한을 강행했기에 고의에 의한 불법행위가 인정된다는 것이 법원의 입장이다.
MBK파트너스, 영풍 CI. [이미지=MBK파트너스, 영풍]
법원은 이번 의결권 제한이 단순한 절차상 하자가 아니라 주주총회 결과 자체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은 영풍의 의결권이 인정되었다면 이사 수 상한 설정 안건과 고려아연 측 추천 사외이사 선임 안건이 가결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적시했다. 결국 최대주주인 영풍은 의결권 행사 자체를 박탈당했을 뿐 아니라, 임시주주총회를 통해 관철하려 했던 경영권 행사라는 실질적 목적도 달성하지 못했다고 보았다.
또한 영풍이 총회 연기와 법률 검토를 요청했음에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영풍에게 의결권 제한의 적법성을 검토하고 방어할 실질적인 기회도 부여하지 않은 채 총회를 진행한 점도 위법성 판단의 중요한 근거가 됐다.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이번 판결은 단순히 손해배상금 1억 원의 문제가 아니라, 기존 경영진의 경영권 방어를 이유로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행위는 허용될 수 없으며, 그러한 불법행위를 주도한 경영진에게는 법적 책임이 따른다는 점을 법원이 분명히 확인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영풍과 MBK파트커스는 이어 "이번 판결은 주주평등 원칙과 주주의 의결권이 회사법상 가장 핵심적인 권리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은 물론, 경영권 방어라는 명분 아래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침해하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는 중요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향후 기업지배구조와 주주권 보호에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 고려아연 측이 언급하는 2025년 3월 정기주총 관련 법원입장과는 어떻게 다른가
이번 판결은 2025년 1월 임시주주총회에서 해외 계열사(SMC)를 활용해 상호주 관계를 형성한 뒤 이를 근거로 최대주주인 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한 행위 자체의 위법성과, 이를 주도한 주주총회 의장의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판단한 첫 본안 판결이다.
이런 면에서 고려아연 측이 언급하는 2025년 3월 정기주주총회 관련 대법원 결정은 이미 형성되어 있던 상호주 관계를 전제로 상법상 의결권 제한 규정이 적용되는지 그 여부만을 판단한 결정이라 할 수 있다. 즉 상호주 관계가 형성된 이후 상법상 의결권 제한 규정을 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결정이다.
반면 이번 판결은 주주총회 직전 해외 계열사를 활용해 상호주 관계를 형성하고 이를 이용해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한 행위 자체가 위법한지, 그리고 그 행위를 주도한 대표이사에게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이 발생하는지 여부를 다룬 것으로 2025년 3월 정기주총 관련 사안과는 전혀 별개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판결은 법원이 처음으로 본안에서 판단한 것이다.
또한 판결문은 박기덕 대표가 기존 경영진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상호주 형성과 의결권 제한 과정에 관여했고, 주주권 침해 가능성을 인식하거나 적어도 인식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용인한 채 의결권 제한을 강행했다고 판단했다고 적시한 것을 주목해야 한다. 아울러 이러한 의결권 제한은 정당한 경영권 방어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법원은 판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