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다주택자의 대출 만기 연장과 대환을 신규 대출에 준해 관리하겠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기존 다주택자들에 대한 대출 연장 및 대환 현황과 확실한 규제 방안을 검토할 것을 내각과 비서실에 지시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대통령은 “대출 연장 혜택을 추가로 주는 것이 공정하겠나”라는 취지로 문제를 제기했고, ‘대출 연장·대환은 본질적으로 신규 대출과 다르지 않다’는 메시지도 분명히 했다.
대통령 발언이 갖는 무게는 단순한 ‘추가 규제 예고’가 아니다. 이미 규제지역 확대 등으로 거래 문턱을 높여둔 상태에서, 이제는 기존 금융계약의 ‘시간표’까지 정책의 레버리지로 끌어들이겠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시장은 늘 정부가 보내는 신호에 먼저 반응한다. 특히 금융은 규칙이 변경될 가능성만으로도 흐름이 바뀐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다주택자들의 대출 연장을 규제하겠다"고 발언하면서 새로운 파장이 일고 있다. [이미지=더밸류뉴스|AI 생성]
◆ 부동산 규제 확장, 어디까지 갈 것인가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한마디로 ‘압박의 단계적 확장’이다. 세금으로 누르고, 대출 억제로 막고, 거래를 제한하더니 이제는 기존 금융계약의 연장 여부까지 정책의 칼날 위에 올려놓았다. 표면적으로는 가격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듯 보이지만, 지금까지는 그 전 정부들이 실시한 규제보다 강도를 더 높인 수준이다.
다만 가격 상승 억제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시장의 매매 열기가 진짜로 식었느냐,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재배치되고 있느냐이다. 한국부동산원의 2026년 1월 월간 동향을 보면, 서울 주택(아파트·연립·단독 포함) 매매가격은 전월 대비 0.91% 상승했고,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1.07% 상승했다. 지난해 10·15 대책 이후 11월(0.77%), 12월(0.80%), 1월(0.91%)로 상승률이 2개월 연속 확대된 흐름도 확인된다.
가격만이 아니다. 체감의 핵심인 ‘절대 가격’도 더 선명해졌다. 같은 동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13억원을 넘어섰고, 1년 새 1억7천만원가량 뛰었다는 수치도 제시됐다. 규제를 ‘세계 최고 강도’로 몰아붙였는데도 시장이 ‘완전히 꺾였다’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렇다고 정책이 실패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정책이 시장을 내리누르기보다 ‘다른 형태’로 만들고 있을 가능성을 봐야 한다. 대표적인 신호가 거래와 매물에서 동시에 나온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 기준으로 2025년 12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1월10일 집계 기준) 3584건으로 11월 한 달치(3335건)를 이미 넘어섰다. 거래는 살아나는 듯한데, 매물은 반대로 줄어든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 집계 기준 서울 아파트 매물은 5만7242건으로, 10·15 대책 발표 직전 7만4044건 대비 22.7% 감소했다. 이 조합(거래 회복 + 매물 급감)은 정책이 의도한 ‘다주택 매물 출회’와는 다른 방향으로 시장이 움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정부의 의도와 달리 오히려 줄고 있다. [자료=더밸류뉴스|AI생성]
현 정부의 고강도 규제 릴레이에 대해서는 헌법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헌법 제119조는 경제질서의 기본으로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둔다. 국가가 ‘틀’을 세우되, 틀 안에서의 선택과 계약은 개인의 자유에 맡기는 것이 시장경제의 뼈대다. 그런데 지금의 정책은 가격을 직접 통제하진 않더라도, 거래·대출·기존 계약의 연장까지 한꺼번에 조이면서 결과적으로 시장의 자율조정 기능을 압박하는 방향으로 읽힌다. 이는 ‘시장에 맡기되 과열만 다스린다’는 시장경제 원칙과 긴장 관계를 만들 수밖에 없다.
특히 기존 대출의 만기 연장과 대환까지 규제 대상으로 삼겠다는 발상은 자유주의 경제질서와 충돌할 소지가 크다. 신규대출 규제는 정책 선택의 영역일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체결된 금융계약의 연장에까지 ‘정책적 문턱’을 새로 설치하면, 시장은 이를 계약 안정성의 문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이 RTI(임대소득 대비 이자상환비율) 같은 수단을 검토해왔다는 맥락도 함께 거론된다. 금융은 ‘예측 가능성’ 위에서 작동돼야 한다. 오늘의 연장이 내일은 막힐 수 있다는 식의 신호가 누적된다면, 시장 참여자들은 계획을 줄이게 된다. 그와 함께 거래도, 공급도, 임대도 경직될 수밖에 없다.
◆ 매물 늘었다? 거래 멈춘 시장에 대한 착시
정부는 다주택자를 시장의 ‘공급원’으로 보고 압박을 통해 매물을 유도하려 했다. 하지만 앞서 본 것처럼, 확인되는 데이터는 “매물이 늘었다”가 아니라 “매물이 줄었다”는 쪽에 가깝다. 서울 아파트 매물 감소(-22.7%)는 ‘규제가 매물을 끌어냈다’는 직관과 반대다. 거래량이 일부 회복되는 와중에도 가격이 쉽게 내려가지 않는 이유다. 매물이 잠기면 가격은 ‘조정’보다 ‘버티기’로 간다. 정책이 거래를 막을수록, 시장은 가격을 ‘호가’에 맡기고 실제 체결을 미룬다.
이런 과정에서 가장 취약한 고리는 임대차 시장이다. 전세의 월세화는 지표로 확인된다. 지난 1월 보도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월세 평균은 147만원, 아파트 월세 비중은 47.9%로 집계됐고(전년 대비 3.7%p 증가), 비(非)아파트 월세 비중은 76.2%로 나타났다. 또 다른 자료를 인용한 리포트에서도 전월세시장에서 월세 비중이 62.7%라는 수치와 함께, 서울의 12월 아파트 전월세 매물 중 월세 비중이 약 47.8% 수준이라는 언급이 나온다. 정책이 다주택자를 겨냥해 규제를 쏟아내도, 전세·월세 변동 같은 현실적 압박은 세입자들이 먼저 받는다. 만기 연장 규제가 현실화되면, 국민들은 ‘임대인의 자금사정’이 ‘세입자 부담’으로 전이될 가능성부터 우려한다.
전세의 월세 전환이 계속 증가하면서 세입자들의 부담도 계속 커지고 있다. [자료=더밸류뉴스|AI생성]
거시경제 불안도 여전하다. 2025년 4분기 말 가계신용 잔액은 1978.8조원으로 전분기 말 대비 14조원 증가했다. 또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명목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2025년 2분기 말 89.7%로 제시되며 여전히 ‘임계치’로 거론되는 구간을 웃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가 대출 규제에 집착하는 배경은 분명히 수치로 존재한다. 다만 그 숫자를 다스리는 방식이 시장의 신뢰와 계약 안정성을 얼마나 훼손하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 가격 설계의 유혹...장기적 신뢰 상실 위험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정부가 가격을 ‘투기의 결과’로 보고 통제하려 한다는 점이다. 집값은 단순한 투기 심리의 산물이 아니라 금리·유동성·인구 구조·도시 집중·소득 기대 등 복합적 요인들의 결과다. 그 복합성을 인정할수록, 대출 규제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유혹은 위험해진다.
규제가 강해질수록 우회 경로가 생기고, 정책은 다시 확장한다. 그런데 확장의 종착역이 ‘기존 계약의 시간표’까지 통제하는 방식이라면, 부동산 정책은 시장정책이 아니라 계약정책이 된다. 그때부터는 집값이 아니라 신뢰가 중심 변수가 된다.
부동산 시장은 정부와 시장의 ‘힘겨루기’ 대상이 아니다. 정부가 강해질수록 시장은 움츠러들거나 우회한다. 작금의 정책 흐름은 “가격을 잡겠다”는 의지에서는 일관되지만, 시장경제의 작동 원리에 대한 신뢰는 한참 부족해 보인다. 국가가 시장의 방향을 설계하려 할수록 개인은 위험을 줄이기 위해 더 보수적으로 움직인다. 이는 거래 감소와 투자 위축으로 이어진다.
물론 집값 급등을 방치할 수는 없다. 과도한 레버리지와 투기적 수요는 억제해야 한다. 그러나 자유주의 경제질서 안에서의 정책은 원칙적으로 ‘과잉을 제어’하는 것이지, 시장의 호흡 자체를 멈추게 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지금처럼 신규 대출을 막고, 거래를 제한하고, 기존 계약의 연장까지 압박하는 방식은 단기적 안정 효과만 노리다가 장기적 신뢰를 상실할 위험이 크다.
집값 그래프는 짓눌러서 평평하게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시장의 신뢰는 그렇게 다룰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신뢰가 흔들리면 자산은 움직이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시장은 왜곡을 축적한다. 부동산 정책의 진짜 시험대는 가격이 아니라 시간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책이 시장의 자유와 조화를 이루는지, 아니면 점점 더 강한 규제의 악순환으로 나아갈지 그 방향이 선명해진다. 작금의 정책 흐름은 그 갈림길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