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국립중앙박물관에게 아주 중요한 해입니다. 용산 개관 20주년을 맞아 지난 20년을 되돌아보며 앞으로 찾아올 20년을 구상하는 전환기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재홍)이 지난 20일 신년 주요 업무계획을 발표하며, 용산 개관 20주년을 맞아 '미래형 박물관'으로의 도약을 목표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서울 용산구 이촌역 2번 출구, 안개 자욱한 겨울 아침. 빛바랜 회벽 위로 철조망이 길게 이어진 미군 기지를 따라 걷다 보면, 갖가지 꽃이 뒤엉킨 화환벽이 눈에 들어온다. 어지러이 놓인 꽃들이 마치 현재의 혼란스러운 시국을 대변하는 듯하다.
그 너머로 우뚝 솟은 건물이 보인다. 올해로 용산 개관 20주년을 맞은 국립중앙박물관이다. 잎을 잃은 가지들이 하늘을 향해 기지개를 켜고, 은반같이 빛나는 거울못 위로 갓을 쓴 듯한 거대한 두 기둥이 위용을 자랑한다.
교육관과 전시동으로 나뉜 9만2936평(30만7277m2) 규모의 이 공간에는 극장, 어린이박물관, 사무동, 전통염료식물원 등 다양한 시설이 자리잡고 있다. 매일 아침, 수천 년의 역사와 만나기 위해 찾아오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오전 10시 개관을 앞둔 이른 시간, 'SNS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고려청자'와 '비엔나 1900' 특별전을 보기 위해 이미 긴 줄이 형성되어 있다. 지난해에만 191만 명이 다녀간 이곳에서, 올해는 더 특별한 이야기가 펼쳐질 예정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을사년 맞이 세 겹경사...‘광복 80주년’, ‘개관 20주년’, ‘한·일수교60주년’
국립중앙박물관에게 올해, 을사년(乙巳年)은 더없이 중요한 해이다.
광복 80주년, 국립박물관 80주년, 용산 개관 20주년 세 가지 겹경사가 있다. 김재홍 관장은 특별한 해를 맞아 4대 방향을 설정하고 '세대를 이어주는' 소통의 장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설정한 올해 4대 방향은 △공감의 박물관 △열린 박물관 △융합의 박물관 △공존의 박물관이다.
‘이순신 장군(2025.11~2026.3)’과 ‘손기정 마라토너(2025.7~12)’ 특별전을 시작으로 ‘조선 전기 미술 특별전(2025.6~8)’까지 다양한 주제와 ‘사람’에 초점을 둔 전시가 준비돼 있다. 또 용산 개관 20주년 기념 특별전 ‘Connect20: 사람을 잇다, 기억을 엮다’(7~12월)에서는 ESG 전시 방식을 도입한 기획을 선보일 예정이다.
한·일 수교 60주년을 맞아 20년 만에 처음으로 '일본 미술의 재발견' 특별전(2025.6~8)도 개최된다.
◆시대와 세대를 ‘공감’ 통해 이어주는 ‘열린’ 박물관
전통과 첨단 과학기술의 만남도 눈에 띈다. 10월 28일 개관 예정인 박물관 보존과학센터는 일반 시민들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진다. 첨단 장비로 문화재를 연구하고 보존하는 현장을 직접 볼 수 있게 된다.
세대별 맞춤 전시 환경도 개선할 예정이다.
김재홍 관장은 “미래 사회 주인공인 어린이와 그 가족 관람객 수요 증대로 어린이박물관 확장 이전 건립 추진할 계획이다. 어린이의 발달단계별 맞춤형 체험전시 및 교육존과 가족친화형 휴게공간의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예비 학예 인력에 대한 특성화 전략도 준비돼 있다. 박물관은 ‘뮤지엄 아카데미’확대를 통해 박물관 전문 인력 역량 강화를 위한 ‘현장 과제 중심 훈련’으로 대국민 문화서비스 향상을 도모할 계획이다.
김 관장은 “대학 교수 재임 경험을 살려 대학에서 채우지 못한 현장 중심 교육을 기획했다”며 “대학 이론 중심 교육을 극복하고 차세대를 위한 교육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해당 교육은 '뮤지엄 아카데미'를 통한 현장 실무 중심으로 교육이 실시되며, 올해부터는 자격은 획득했지만 미취업 예비 학예 인력, 특히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실무 대비 경험 교육에 집중할 예정이다.
뮤지엄 아카데미 일반 과정은 박물관·미술관의 역할과 다양한 업무에 대한 기본 소양을 제공하며, 실무에서 직접 활용 가능한 강의로 구성된다. 1월 20일부터 24일까지 선착순 100명을 모집한다.
중앙박물관은 과학·인문학 융합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K-콘텐츠 발굴과 글로벌 시장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끼니에서 수라까지' 프로젝트는 한국 식문화 역사를 탐구하고, 첨단 CT 장비로 목조 문화유산의 나이테를 분석하는 등 과학기술과 인문학 융합 연구다.
'한국 금석문 연구'와 '서예문화 콘텐츠 강화' 사업도 본격화된다. 8월에는 KAIST와 함께 '디지털 헤리티지 국제컨퍼런스'를 개최하고, '오세아니아: 대양의 예술'(2025.49)전과 이슬람 문화 상설전(2025.112026.11)으로 세계 문화와의 만남도 이어진다.
김 관장은 “중장기적 융합연구를 통해 역사성과 예술성을 접목하고, 한국 기록 문화의 발달을 설명하고자 한다”며 “한국 지식사회의 발전까지 조망하는 스토리텔링으로 진전시키는 것이 장기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김재홍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은 “‘공유’라는 의미를 강조하며 모두에게 ‘열리고’, 다양한 세대와 문화를 ‘융합’해 함께 ‘공존’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신년간담회를 정리했다. 국립중앙박물관 기조인 ‘모두를 위함’을 ‘모두가 함께’로 이어나가겠다는 것이다.
혼란한 정국과 가슴 아픈 사고 소식이 가득한 연초,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처럼 국립중앙박물관은 과거의 지혜를 통해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