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원'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브랜드이다. 한때 국민 조미료로 통했던 '미원'을 만든 기업이 바로 현재의 대상그룹이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약 20년간 삼성 제일제당과 치열한 조미료 시장 쟁탈전을 벌인 곳이기도 하다. 삼성 고 이병철 회장은 "세상에 마음대로 안 되는 게 골프, 자식, 그리고 미원"이라고 회고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다.
이제 대상그룹은 김치로 더 유명하다. K-푸드의 글로벌 인기에 힘입어 '종가'는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는 김치 브랜드로 성장했다. 수출용 포장김치 시장 1위 브랜드답게 지난해 11월 기준 대미 김치 수출액의 75.2%를 점유하며 글로벌 시장을 선점했다. 올해는 현지 김치 공장 증설과 유통망 확대가 예정되어 있어, 3세 자매경영이 이끄는 대상그룹의 글로벌 도약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상그룹, '종가' 수출 호조에 영업익 54% 급증...글로벌 성장세 '가속'
대상그룹의 지난해 4분기 매출액은 1조550억원, 영업이익은 208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각각 6.52%, 54.07% 증가할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종가' 브랜드 선전이 주효했다. 지난해 3분기까지 국내 김치 수출량의 75%를 차지하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식품업계는 지난해 지속됐던 내수 부진이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기업들은 해외 사업을 확장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임정배 대상그룹 대표이사는 신년사에서 트럼프 2.0 시대에 따른 무역 질서의 변화와 국내 내수 소비의 부진을 언급하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해외 수요를 겨냥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상은 김치 브랜드 '종가'를 통해 해외 수요를 공략할 계획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세계 김치 시장은 오는 2030년까지 연평균 5.17% 성장해 53억 달러(약 7조1550억원)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대상은 이러한 성장세에 발맞춰 지난 2020년부터 중국 롄윈강, 2022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김치 공장을 설립했다. 올해는 폴란드 크라쿠프에 150억원을 투자해 유럽 시장 공략을 위한 생산기지를 구축할 예정이다.
대상의 글로벌 전략은 현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양배추, 케일, 당근 등 현지 식재료를 활용한 김치와 마일드한 맛의 제품을 개발했다. 더불어 할랄 인증과 코셔 인증을 획득해 이슬람권과 유대인 시장까지 공략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종가'는 현재 60여 개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대상의 식품 부문 매출은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연간 매출액은 지난 2022년 2339억원, 2023년 2579억원으로 증가했으며, 올해는 전년 대비 30%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DAYS'로 디지털 전환 가속...R&D·영업 데이터 통합 시너지 극대화가 목표
대상그룹의 디지털 전환은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DAYS'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 플랫폼은 하루 약 600만 건의 내외부 데이터를 분석해 소비 트렌드와 시장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글로벌 김치 마케팅과 B2B 부문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계열사 간 시너지 창출을 위해 R&D 데이터를 통합하는 데이터 허브도 구축했다. 또한 영업 현장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고객경험관리 솔루션 '세일즈포스'를 도입했다. 이는 실시간 고객 니즈 파악과 대응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시스템이다.
인재 육성에도 적극적이다. 지난해에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교육'을 통해 실무 경력 5년 이상 직원 9명을 대상으로 통계, 수학, AI, 컴퓨터 공학 기반의 직무 교육을 실시했다. 이 중 5명은 사내 데이터사이언스팀에서 1년간 실전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대상은 내년년까지 30명 이상의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를 양성할 계획이다. 이는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과 혁신을 위한 장기적인 투자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전략들은 대상이 지속 가능한 성장과 혁신을 이루는 기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임세령·임상민 자매 경영...'전인미답' 새로운 경영 과제는 '글로벌 도약'
대상그룹의 3세 경영을 이끄는 임세령 부회장과 임성민 부사장은 뚜렷한 역할 분담으로 시너지를 창출하고 있다. 임세령 부회장은 국내 식품사업과 마케팅을, 임성민 부사장은 해외사업과 그룹 전략을 담당한다. 이러한 분업은 각자의 전문성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임성민 부사장은 지난 2009년 대상 입사 후 계열사 흡수합병과 사업구조 개편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무엇보다 해외 매출 비중을 11%에서 30%로 끌어올리는 성과를 거뒀다. 임세령 부회장은 비교적 늦은 2012년 합류 후 2014년 청정원 브랜드 리뉴얼, 2016년 '안주야' 브랜드 출시 등을 통해 혁신적인 마케팅 전략을 선보였다.
두 자매의 경영은 지분 구조에서 겉보기에 균형을 이루고 있다. 임성민 부사장이 대상홀딩스의 36.71%를, 임세령 부회장이 20.41%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경영 구도는 성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이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공이 향후 경영권 승계의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결국 대상그룹의 미래 리더십은 혁신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달려 있다. K-푸드를 넘어 글로벌 종합식품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ESG 경영 강화, 신성장 동력 발굴, 디지털 혁신 등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과제들에서 누가 더 탁월한 성과를 보이느냐가 향후 경영권의 향방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