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대표이사 곽노정) 주가가 역사적 신고가에 진입하면서 이 추세가 어디까지 이어질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른바 '엔비디아(NVIDIA)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22만대 역사적 신고가 진입... '엔비디아(NVIDIA) 효과' 톡톡
지난 13일 SK하이닉스 주가는 22만6500원으로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다. 지난해 이맘때 대비 두배 상승했다. 14일 오후는 소폭 하락한 22만1500원에 거래되고 있다.
SK하이닉스 주가가 급등하면서 단기 조정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SK하이닉스 현재 주가는 아직은 증권가 목표주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주요 증권사 목표주가를 살펴보면 27만원(현대차증권. 노근창 연구원), 28만원(KB증권. 김동환 연구원). 24만원(한국투자증권. 채민숙) 등이다.
증권가에서는 SK하이닉스 주가를 가치 평가(valuation)해보면 아직은 고평가 단계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 올해 SK하이닉스의 예상 순이익(13조5398억원)을 기준으로 SK하이닉스PER(주가수익배수·Price Earnings Ratio)을 계산해보면 11.90배이다. PER은 기업의 시가총액을 순이익으로 나눈 값으로 낮을 수록 저평가됐다고 본다. 피어그룹(peer group)에 해당하는 삼성전자의 경우 13.22배이다.
SK하이닉스 주가의 이같은 역사적 신고가 진입은 무엇보다도 '엔비디아(NVIDIA) 수혜로 요약된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NVIDIA) 후광 효과로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수혜를 누리고 있다. 엔비디아는 인공지능(AI) 칩 선두 주자로 글로벌 그래픽 처리장치(GPU) 시장에서 9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사실상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또 현재 엔비디아의 GPU는 성능이나 효율성 측면에서 견줄만한 제품이 없어 빅테크들이 구매를 위해 줄을 서는 상황이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칩에 들어가는 HBM을 공급하며 덩달아 수혜를 입고 있다. 주가 역시 엔비디아와 비슷한 흐름이다.
엔비디아의 주가는 최근 1년새 약 200%, 2022년 10월 저점 대비 900% 넘게 상승했다. 현재 시가총액은 3조1884억달러(한화 약 4402조원) 수준으로 시총 1위 애플(3조2852억달러)과 2위 MS(3조2820억달러)와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증권가는 엔비디아의 상승이 여기서 그치지 않고 머지않아 시총 1위에 오르며 격차를 벌릴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엔비디아의 기업가치가 여전히 저평가됐다는 분석이다.
이는 향후 수년간 엔비디아의 독과점 체제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시장 2위 업체 AMD를 비롯해 인텔 등이 엔비디아 GPU를 추격하고 있음에도 성능 간극이 단시간에 좁혀지기는 어렵다는 판단이다. 하장권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엔비디아에 대해 "현재 12개월 선행(forward) 주가수익비율(PER) 35배에 거래 중"이라며 "과거 5년 평균 PER 범위가 20~70배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전히 평균을 밑도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SK하이닉스의 엔비디아향 HBM 공급 전망은 매우 밝다. 업계에서는 엔비디아의 선택을 받는 기업이 전체 HBM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다. 지난해 HBM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가 전년대비 3% 늘어난 53%로 1위를 기록했다. 삼성전자(38%)와 마이크론(9%)이 그 뒤를 이었다. 여기에 올해 시작된 HBM3E 공급으로 SK하이닉스의 점유율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5세대 HBM3E, 경쟁사 줄줄이 부진...판가 협상 '청신호'
최근 HBM 시장은 사실상 SK하이닉스의 독무대였다. 올해 HBM 3사(SK하이닉스·삼성전자·마이크론)가 나란히 공급을 예고했던 5세대 HBM(HBM3E) 시장에서 현재 SK하이닉스만이 원활하게 공급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SK하이닉스의 뛰어난 제품력 덕분이기도 하지만, 경쟁사의 부진으로 인한 반사수혜도 있다.
삼성전자는 HBM 3사 가운데 유일하게 아직까지 엔비디아 납품 소식을 알리지 못한 상황이다. 지난달 24일 삼성전자의 HBM이 엔비디아의 퀄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소식이 보도되면서 삼성전자의 주가는 약 3% 하락하기도 했다. 이에 삼성전자는 지난 3월 'HBM 태스크포스(TF)' 신설에 이어 최근 반도체를 담당하는 DS부문장에 전영현 부회장을 구원 투수로 등판시키는 등 HBM 위기 돌파에 나섰다.
3위 업체인 미국 마이크론도 상황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국내 양사가 월 12~13만장의 HBM 생산능력(CAPA)을 갖춘 데 비해 월 2만장 수준에 그치는 마이크론의 생산능력은 결정적인 한계로 지목되고 있다. 또 엔비디아에 공급 중인 HBM3E의 수율(양품 비율)은 30% 수준으로 추정되며 당초 기대에 못 미치는 상황이다. 반면 SK하이닉스는 최근 공식적으로 HBM 수율이 시장 전망치였던 60~70%를 넘어선 80%에 도달했다고 밝히면서 시장 리더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
이 같은 경쟁사들의 부진 속에서 높은 수율을 확보한 SK하이닉스는 현재 엔비디아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공급처로 부상했다. 최근 엔비디아는 SK하이닉스에 4세대 HBM3 물량도 추가 생산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와의 HBM 판가 협상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점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는 내년 물량에 대해 15~20% 수준의 판가 상승을 시현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엔비디아, 6세대 'HBM4' 탑재 GPU '루빈' 공개...메모리 3사 '개발 총력전'
SK하이닉스가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HBM3E' 시장에서 선전하는 가운데, 차세대 제품인 'HBM4'에 대한 관심도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 2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차세대 GPU '루빈' 플랫폼 출시를 발표했다. 신제품 ‘블랙웰’ 출시를 발표한 지 불과 3개월 만이다. 올 하반기부터 상용화에 돌입하는 블랙웰에는 5세대 제품인 HBM3E가 들어가지만, 2026년 출시되는 루빈에는 6세대 'HBM4'가 탑재될 예정이다.
이번 엔비디아의 루빈 출시 발표로 HBM4를 둘러싼 3사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HBM4는 아직 개발 단계로 메모리 반도체 3사 모두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엔비디아가 계획대로 2026년 루빈을 출시하기 위해서는 내년 하반기부터 HBM4 개발을 마치고 양산에 돌입해야 한다. 이에 SK하이닉스는 최근 HBM4의 양산 시점을 2026년에서 내년으로 앞당기고 개발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4월 SK하이닉스는 HBM4 개발을 위해 파운드리 1위 업체인 대만의 TSMC와 기술제휴 계약을 맺은 바 있다. 앞선 HBM3E와 달리 HBM4부터는 고객사 맞춤형 제작이 요구되면서 TSMC가 갖춘 초미세 공정이 필요하다. HBM4의 가장 큰 변화는 1층 받침대 역할을 하는 '베이스 다이'다. 기존의 베이스 다이는 그 위에 D램이 적층되며 GPU와 D램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면, 양사가 개발 중인 베이스 다이는 저전력 기능 등 시스템(비메모리) 반도체의 기능도 더해질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향후 HBM 패권 경쟁에서도 승리를 자신하며 설비투자를 적극 확대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달 일본 닛케이와의 인터뷰에서 "국내 증산 외 추가 투자가 필요한 경우 해외도 보고 있다"며 "일본이나 미국 등에서 생산할 수 있는지 계속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만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지난 4일 기자간담회에서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마이크론 3사 모두 우리에게 메모리를 공급할 것"이라고 직접적으로 밝힌 만큼, SK하이닉스의 독주 체제가 장기간 지속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