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공시된 고려아연 3분기 재무제표를 보면 재무 건전성과 수익성 악화로 비명을 지르고 있는 '한국 주식시장의 숨은 진주'가 보인다. 고려아연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최윤범 회장은 그럼에도 "내가 잘하는 것은 경영", "내 관심사는 오로지 고려아연"이라고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버젓이 내뱉고 있다.
◆최윤범 회장 취임 이전까지 '한국주식시장의 숨은 진주'
고려아연은 2019년 최윤범 회장 취임 전까지만 해도 ROE(자기자본이익률) 두 자리수를 기록하는 우량 기업이었다. ROE는 기업의 당기순이익을 자본총계로 나눈 값으로 기업 수익성을 파악하는 최종 지표이다. ROE는 흔히 은행 이자율과 비교되는데 투자자가 은행에 돈을 넣으면 떼일 염려가 없지만 기업에 투자하면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경영자는 자신이 경영을 맡은 기업 ROE를 은행 이자율 보다 적어도 두 배 이상 유지해야 할 책임이 있다. '투자 대가' 워렌 버핏은 ROE가 지속적으로 두 자리수를 유지하면 '탁월한 기업'으로 관심을 갖는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최윤범 회장 취임 이전 고려아연 ROE는 11.37%(2014)→10.49%(2015)→11.18%(2016)→10.96%(2017)→8.64%(2018)를 기록했다(이하 K-IFRS 연결). 2018년에 한자리수를 기록했는데, 이는 비철금속 가격의 일시적 하락 때문이었다. 이 기간 연평균 ROE는 10.51%로 한국 주식시장 참여자들사이에 '숨은 진주'로 불리는 배경이 됐다.
이같은 성과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최윤범 회장 이전 고려아연 경영을 맡았던 최창영 명예회장은 경기고, 서울대 공대(금속공학), 미국 콜롬비아대 공대를 나온 수재였다. 그는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의 생산시설과 공정을 어떻게 배치하면 최적의 생산성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인가를 연구했다. 이 결과 해외에서 매입한 연 정광(zink concentrate.불순물을 제거한 연광석)을 배소, 조액, 정액, 전해, 주조 과정을 거쳐 아연으로 생산하고, 잔재처리시설(Fumer)에서 부산물로 은(silver)과 금(gold)을 쏟아져 나오게 하는데 성공했다. 국내에 동종업종의 LS엠엔엠, 영풍(석포제련소)이 있지만 고려아연이 유일하게 아연, 납, 은, 금, 구리를 동시 생산하고 있는 배경이다. 이는 고려아연을 ROE 두 자리수의 우량기업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렇지만 2019년 최윤범 CEO 체제 등장 이후 고려아연의 ROE를 포함한 수익성과 재무 건전성은 엉망이 되기 시작했다.
고려아연의 내년 ROE는 한자리수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5.5%). 이는 지난 10월 2일 고려아연이 2조7000억원의 단기차입금을 조달키로 한 것을 반영한 수치이다. 고려아연은 이 가운데 사모사채 1조7000억원을 연이자율 6.5%로 조달키로 했다. 금액으로 단순 환산하면 연이자비용 1105억원이며 지난해 고려아연 당기순이익 5334억원의 20.7%에 해당한다. 이는 당연히 고려아연의 ROE를 떨어뜨린다. '한국 주식시장의 숨은 진주'가 '그저 그런 기업'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2019년 트로이카 드라이브로 수익성 악화 시작... 6년만에 부채 5배↑
최윤범 회장이 고려아연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의사결정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최윤범 회장은 2021년 말 이른바 '트로이카 드라이브'를 발표했다. 신재생 에너지, 이차전지(배터리), 자원순환의 3대 신사업을 추진해 고려아연을 초우량 기업으로 점프시킨다는 것이 요지다.
햇수로 3년이 지난 현재 성과는 어땠을까.
최윤범 회장의 트로이카 드라이브 선언을 기점으로 고려아연 수익성은 나락행(奈落行) 급행 열차를 탔다. 고려아연 ROE는 11.1%(2021)→9.3%(2022)→5.7%(2023)로 급전직하했다.
가장 큰 이유는 고려아연이 2022년 중순 최윤범 회장 주도로 미국 전자폐기물 재활용 스타트업 이그니오(Igneo)를 5800억원에 인수한 것과 관련있다.
이그니오는 적자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그니오 모기업 페달포인트(Pedal point)의 당기순손실 규모를 살펴보면 2022년 281억원, 지난해 201억원에 이어 올해 상반기(1~6월) 175억원으로 올해들어 손실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페달포인트는 고려아연이 지분 100%를 보유한 종속기업이므로 손실은 전액 고려아연 연결 실적에 인식된다. 고려아연의 ROE가 한자리수로 떨어진 배경이다.
고려아연은 이그니오를 인수하면서 2022년 재무제표에 영업권(Goodwill) 3233억원을 인식했다. 영업권이란 A기업이 B기업을 공정가치(시가)보다 비싸게 지불한 금액을 말하며 금액이 클 수록 비싸게 샀다는 의미이다. 고려아연은 해마다 영업권 손상검사를 통해 가치가 감소했는지를 평가하며 만약 회수가 불가능하면 해당 금액을 손상처리해야 한다.
그렇지만 고려아연은 이그니오 적자 규모가 커지고 있는데도 아직 손상인식을 하지 않고 있다. 2023년 이그니오 영업권은 3290억원으로 사실상 전년과 동일하다. 만약 손상인식을 한다면 해당 금액은 고스란히 손실(비용)로 인식되고 고려아연 ROE는 추가로 낮아질 것이다. 수백억원대 적자를 연속 기록하는 스타트업을 5800억원에 인수했으면서 "나는 경영을 잘 한다"고 떠벌리는 경영자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고려아연을 이제 '한국 주식시장의 숨은 진주'로 부르는 시장 참여자들은 사실상 없다. 3분기 기준 고려아연 부채총계는 4조2104억원으로 그의 취임 이전(2018년 8513억원) 대비 약 5배 급증했다.
그는 고려아연 연평균 당기순이익의 4.5배(2조7000억원)를 자사주로 매입해 '허공에 태우겠다'고 발표했고, 실제로 자사주 공개매수를 통해 1조8000억원을 들여 1주당 89만원에 9.85%(204만주)를 시장에서 사들였다. 자사주 매입금액의 대부분은 차입금이었다. 그리고 자사주 공개매수가 끝나자 마자 곧바로 2조5000억원 규모의 일반공모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했다가 시장의 반발과 금융감독원의 증권신고서 정정 요구 등으로 철회했다. 당시 유상증자를 통해 조달한 자금 중 2조3000억 원을 차입금 상환에 사용하겠다고 밝히면서 '빚 내서 경영권 방어하고, 그 빚을 주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갚는다'는 비판을 받았다. 주가는 당일 30% 폭락했다.
◆내년 1월 임시 주총...비지배주주 표심 따라 고려아연 미래 결정
다음달 23일 고려아연 임시주총에서 장씨와 최씨의 표대결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장형진 고문 일가(MBK파트너스 지분 포함) 지분은 40.97%이고 의결권 기준으로는 절반에 근접하는 46.7%이다.
최윤범 회장 일가와 그들의 우호세력을 포함한 지분율은 33~34%(의결권 기준 39~40%)로 파악된다. 그렇지만 우호세력으로 분류해 온 주요 주주들이 전부 최 회장의 손을 들어줄지도 확실치 않다. 그동안 최 회장 측 우군으로 알려진 한국투자증권과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등이 고려아연 주식을 처분하며 이탈했고, 현대차 측 고려아연 사외이사는 최근 이사회에 연거푸 불참하며 최 회장 측과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민연금도 올해 초 고려아연 지분 8.90%를 보유했지만 주가 급등기에 주식을 처분해 현재 3.5% 가량이 남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장형진 고문측은 국민연금이 최윤범 회장측에 찬성표를 던지더라도 대세에는 지장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남은 것은 21~22%로 추정되는 비지배지분의 향방이다. 이들은 소액주주가 다수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주주의 소중한 돈을 차곡차곡 불려 주는 경영자가 인정받는다는 것은 한국 주식시장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고려아연이 '한국 주식시장의 숨은 진주'로 다시 컴백할 것인가는 이날 결과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