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항 중이던 한국 경제의 경상수지 흑자 기조에 비상이 걸렸다. 반도체와 자동차가 33개월째 실적을 견인하고 있지만, 갑작스러운 중동 전쟁이 글로벌 공급망과 유가를 흔들며 강력한 변수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고유가와 물류비 상승이 우리 기업을 위협하고 있다. 이에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사장 강경성, 이하 코트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예산을 투입해 '수출 5강' 진입을 위한 승부수를 던졌다.
◆ 겉은 화려한 흑자, 속 타는 수출기업…’저성장·보호무역’에 중동 전쟁까지
미국과 이스라엘, 이란 간의 전쟁으로 인해 발발한 중동 리스크로 글로벌 통상 환경이 유례없는 '불확실성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미지=더밸류뉴스 | AI 생성]한국 경제의 외형은 견고해 보이지만 수출 현장의 위기감은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다. 글로벌 통상 환경이 유례없는 '불확실성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과거의 성공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전환점에 직면했다.
현재 우리 수출을 가로막는 가장 큰 벽은 갈수록 공고해지는 보호무역주의다. 서구권 국가들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리쇼어링(제조업의 본국 귀환)'을 가속화하고 있으며, 미국은 일찌감치 우방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인 '프렌드쇼어링'을 공식화했다. 특히 지난해부터 시작된 트럼프식 상호 관세 등 예측 불가능한 변수들이 속출하며 우리 기업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여기에 유럽연합(EU)이 올해부터 본격 시행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단순한 환경 규제를 넘어 실질적인 '탄소 관세'로 작용하며, 철강과 알루미늄 등 탄소 집약적 산업의 수출 경쟁력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발발한 중동발 리스크는 한국 경제의 가장 취약점인 '에너지 안보'를 타격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0~105달러 선을 넘나드는 수준까지 치솟았다. 이는 에너지와 원자재 수입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국내 제조 환경에 치명타다. 실제로 플라스틱, 섬유 등 석유화학 기반 원자재를 사용하는 수출기업들은 제조 원가가 20~30% 급등하며 수익성 악화가 우려되고 있다.
여기에 고환율 기조 역시 리스크 요인이다. 환율 상승이 수출 가격 경쟁력에는 일시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수입 원자재 가격 폭등이 그 효과를 상쇄하고도 남는 '고비용 구조'를 고착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 코트라, 9000억 예산 긴급 투입…"경제안보가 곧 수출 경쟁력"
전례 없는 위기 속에서 코트라는 총력전에 돌입했다. 올해 본예산을 전년 대비 37% 증액한 9152억원으로 편성한 데 이어 80억원 규모의 긴급 예산도 추가로 마련했다. 이는 기관 설립 이래 사상 최대 규모로, 불확실한 글로벌 통상환경에 맞서 '공급망 안정'과 '수익성 방어'를 최우선으로 삼아 경제 안보의 보루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코트라의 '중동 수출 애로 기업 대상 긴급지원 바우처 2차 참여기업 모집' 홍보 포스터. [이미지=코트라]가장 시급한 과제는 중동 리스크로 인해 피해를 보고있는 기업들의 숨통 트여주기다. 코트라는 ‘중동 특화 긴급수출바우처’를 통해 긴급 편성된 80억원의 예산을 활용해, 중동 수출 비중이 높거나 피해를 입은 기업을 대상으로 신속한 지원에 나섰다. ‘패스트트랙’을 도입해 신청부터 선정까지의 기간을 최대 3일로 단축함으로써, 기업이 필요한 시점에 자금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더불어 전 세계 주요 거점에서 운영 중인 ‘해외공동물류센터’의 기능을 대폭 보강했다. 특히 중동 지역(두바이 등) 거점 무역관 물류센터의 수용력을 확대해, 해상 운송 지연 시 화물의 임시 보관이나 현지 풀필먼트(보관·배송 일괄 처리) 서비스를 우리 기업에게 제공하고 있다.
코트라 해외무역관 글로벌 분포도. [이미지=코트라 홈페이지 캡쳐]전쟁 장기화 가능성에 대비해 '공급망 조기경보시스템(EWS)'도 고도화했다. 중동 무역관을 통해 원유, LNG(천연가스), 핵심 광물 등 300여 개 경제안보 핵심 품목의 수급 현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차질 징후가 포착될 경우 관련 기업에 즉시 알림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와 함께 ‘중동 상황 긴급 대응 TF’를 구성하고, 현지 13개 무역관과 연계한 24시간 핫라인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바이어와의 거래 문제, 결제 지연, 통관 애로 등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실시간으로 접수·대응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아울러 한국무역협회・중소벤처기업부와 협력해 ‘원스톱 통합 지원 체계’도 운영 중이다. 해당 서비스를 통해 대금 결제 지연, 바이어 연락 두절, 선적 취소 등 개별 사례에 대해 법률·금융 전문가를 연계 지원하고 있다.
◆ 강경성 사장, "2~3년 내 日 꺾고, 수출 5강 진입할 것"
코트라의 행보는 중장기 수출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코트라는 ‘수출 5강’을 목표로 수출 구조 개선과 시장 다변화를 추진 중이다. 강경성 코트라 사장은 지난 2024년 취임식 이후 "2~3년 내에 일본을 제치고 세계 수출 5위에 진입하겠다"는 포부를 수차례 밝혀왔다. 실제로 지난 2024년 상반기 한국(3348억 달러)과 일본(3383억 달러)의 수출 격차는 35억 달러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최근 5년 한-일 수출 격차 추이. [자료=더밸류뉴스]지난해 한국 수출은 7097억 달러를 기록하며 세계 수출 6위에 등극했다. 가장 눈에 띄는 분야는 인프라와 전력 기기다. 북미 전력망 교체와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에 따라 한국산 초고압 변압기와 HBM(고대역폭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증가한데 따른 것이다. 과거 일본이 강점을 보였던 북미·중동 인프라 시장에서도 국내 기업들의 점유율 확대가 나타나고 있다.
무역 구조 변화도 감지된다. 무역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24년 기준 세계 수출 점유율 1위 품목 81개를 유지하며 5년 연속 10위권을 기록했다. 반면 일본은 2020년 159개에서 2024년 118개로 감소했다. 특히 반도체 수출이 1734억 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며 전체 수출 증가를 견인했다.
2024년 10대 수출품목 비중. [자료=지표누리]코트라는 이러한 흐름을 기반으로 지원 체계를 고도화하고 있다. 시장조사, 바이어 발굴, 애로 해소를 연계한 전주기 지원을 강화하고, 원전·바이오·방산·서비스 등 전략 산업 중심으로 수출 지원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한 ‘K-수출스타 500’ 사업과 ‘트라이빅(TriBIG)’ 기반 데이터 지원도 병행된다. 오는 4월부터는 ‘AI 수출 비서’ 도입을 통해 기업 맞춤형 수출 정보를 제공할 계획이다.
결국 코트라의 전략은 수출 구조 자체를 고도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상 최대 규모의 예산과 현장 중심 대응 체계를 바탕으로 산업 경쟁력과 시장 다변화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러한 흐름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진다면, 한국 수출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지를 한층 공고히 하며 '수출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재확인 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