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이라는 말을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줄임말로 현재의 행복을 지향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이는 절제 없는 당장의 쾌락 추구로 변질되어, 해외여행이나 고급 요식업 이용 등 화려함을 과시하는 문화로 이어졌다.
이에 피로감을 느낀 사람들 사이에서 '아보하'라는 새로운 트렌드가 등장했다. '아주 보통의 하루(Ordinary but Happy)'를 뜻하는 아보하는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행복을 찾는 것을 지향한다.
고금리, 정치적 갈등, 취업난 등 현실의 어려움이 지속되면서, 단순히 무탈하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보하에 담겨 있다. 과거 소확행이 외형적 화려함에 집착했다면, 아보하는 내면의 평화와 안정을 추구한다. 특별하지 않은 하루 속에서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현실에 안주하고 안전을 추구하려는 새로운 문화 트렌드로 볼 수 있다. 여전히 경쟁과 성과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아보하는 삶의 균형과 여유를 추구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연예인도 사람이다... 예능에서 보여주는 스타들의 평범한 일상
아보하 트렌드를 가장 먼저 반영한 곳은 연예계다. 2013년부터 방영된 MBC 인기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는 혼자 사는 연예인들의 일상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나 혼자 산다' 546회에 출연한 배우 구성환이 반려견과 함께 한강변에서 피크닉을 즐기고 있다. [사진=엠뚜루마뚜루]특히 546회에 처음 출연한 배우 구성환의 일상이 화제가 됐다. 그는 자신의 반려견과 함께 집에서 소박한 하루를 보내거나 한강에 피크닉을 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간미를 뽐냈다. 이 방송으로 인기를 얻은 그는 이후에도 방송에 여러번 출연하고 있다.
나영석 PD(오른쪽)가 김대주 작가와 함께 동료 PD의 아이를 대신 돌봐주고 있다. [자료=채널 십오야]
유튜브에서도 소탈한 일상을 컨셉으로 잡은 예능 채널이 늘어나고 있다. 나영석 PD가 운영하는 '채널 십오야'는 연예인이나 촬영팀 직원들과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반인들과 다를 것 없는 유명인들의 모습이 시청자들로부터 공감을 얻으며 채널 십오야는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필요한 것만 산다... 아보하와 함께하는 '요노(YONO)' 트렌드
아보하의 유행으로 함께 뜬 트렌드가 있다. 바로 '요노'다. '유 온니 니드 원(You Only Need One)'이라는 뜻으로 '욜로(You Only Live Once)'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소확행이 욜로와 세트였다면 아보하는 요노와 세트다. 실용적인 소비를 추구하는 트렌드에 맞춰 가성비를 강조한 상품들이 나오고 있다.
메가MGC커피에서 판매하는 '메가리카노'. [사진=메가MGC커피]
메가MGC커피, 빽다방 등 저가 카페 프렌차이드에서 대용량 아메리카노를 선보인 것이 그 예시다. 메가MGC커피는 2021년 '메가리카노'를 출시했다. 한국에서 수요가 높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960ml에 3000원으로 선보였다. 빽다방의 기본 메뉴인 '빽사이즈 아메리카노'는 980ml에 3000원이다. 타 업체 대비 2배 가까운 용량에 가격은 비슷해 가성비 커피로 불린다.
◆하루를 기록하는 '다이어리' 인기... 29CM 디자이너 문구 카테고리 12월 거래액 74% 증가
포인트오브뷰 애플 저널 스몰 플레인 노트. [사진=29CM]
평범한 일상에 대한 욕구와 함께 이를 일기에 기록하려는 소비자들도 늘었다. 단순히 기록하는 것을 넘어 나만의 다이어리를 꾸미는 '다꾸' 문화가 생기며 스티커, 마스킹테이프 등 문구류의 매출이 늘고 있다.
무신사가 운영하는 브랜드 29CM는 지난달 1~31일 다이어리, 노트 등 문구류 카테고리 거래액이 전년대비 74% 이상 증가했다. 특히 디자이너 문구 브랜드들이 주목받고 있다. '오롤리데이'의 ‘2025 신년 다이어리’는 문구 카테고리 월간 베스트 2위에 올랐고 '포인트오브뷰'는 지난 1년간 29CM에서 거래액이 전년대비 10배 이상 늘었다. '키티버니포니'의 마스킹테이프는 29CM 대표 인기 제품이 됐다.
연예인들의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과 가성비 높은 생활용품 제품의 인기 등을 통해, 화려함에 지친 사람들이 소박한 일상의 행복을 추구하는 '아보하' 트렌드가 확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삶의 균형과 여유를 찾고자 하는 새로운 문화적 지향점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