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사외이사 자리에 '경제 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 전관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경제 3법 통과 이후 발생할 수 있는 각종 고발에 대비하고 유사시 공정위 조사에 미리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27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반기보고서를 제출한 상장사 가운데 37곳이 공정위원장, 부위원장, 사무처장 출신 등 전직 관료를 사외이사나 감사로 선임하고 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새로 포함되는 현대글로비스는 이동훈 전 공정위 사무처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이 전 처장은 DB사외이사도 겸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사진=더밸류뉴스]현대차도 공정위 전관인 이동규 전 사무처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백용호 전 공정위원장(LG전자), 안영호 전 공정위 상임위원(LG화학·신세계), 정중원 전 상임위원(롯데케미칼·진에어)도 이름을 올렸다.
이밖에도 공정위 출신들은 대기업 곳곳에서 사외이사로 활약하고 있다.
김동수 전 공정위원장(두산중공업), 노대래 전 위원장(헬릭스미스), 정호열 전 위원장(제이에스코퍼레이션)도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김원준 전 공정위 사무처장 직무대행(한일현대시멘트)도 사외이사로 직을 맡았다. 삼천리도 올해 김병일 전 부위원장을 뽑았다.
공정거래법, 상법, 금융감독법 제·개정안이 지난 20대 국회에서부터 논의된 만큼 대기업들이 전관예우를 염두에 두고 일찌감치 공정위 출신 고위 관료를 영입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1%의 모회사 지분만 갖고도 자회사 이사에 대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하는 다중대표소송제가 통과되면 상당수 대기업은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전속고발권이 폐지될 경우 앞으로 가격·입찰 등 중대한 담합(경성담합) 관련해 누구나 기업을 검찰에 고발할 수 있게 된다.
유사시 공정위 조사 등에 대비하기 위한 포석도 깔려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진은 공정위가 지난 7월 87억원의 과징금을 물리기로 결정하기 수개월 전인 3월에 손인옥 전 공정위 부위원장을 신규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손 전 부위원장은 현대차증권 사외이사도 겸하고 있다.
임영철 전 하도급국장은 올해 초 공정위가 과징금 약 17억원을 물린 BGF리테일에서 활동 중이다.
재계 관계자는 "공정위와의 연락책이 필요하거나 현재 혹은 미래의 소송 과정에서 도움을 받기 위해 공정위 전관을 사외이사로 들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퇴임한 고위 공직자들이 몇 해 지나 기업의 사외이사로 가는 것은 위법이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 비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