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공정거래원회(위원장 한기정)가 발표한 공시대상기업집단 순위에서 롯데그룹이 6위로 전년비 한단계 하락하자 재계에서는 반응이 엇갈렸다.
하나는 이번 순위 하락은 롯데그룹이 처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했으며 '재계 5위'의 존재감이 흔들리고 있다는 의견이고, 또 다른 한 가지는 이번 순위는 지난해 롯데건설이 강원중도개발공사 회생 사태로 휘청거린 것을 반영한 일시적 부진이고 롯데그룹이 그간 진행해오고 있는 혁신과 구조조정의 성과가 조만간 반영될 것이라는 의견이다. 강원중도개발공사 회생 사태는 강원도 레고랜드를 개발하면서 발생했던 사태를 일컫는다.
롯데그룹은 어느 지점에 있는 걸까?
결론적으로 2023년 8월 현재의 롯데그룹에는 긍정과 도전이 혼재돼 있다.
◆롯데케미칼, 롯데그룹 최대 계열사로... 2차전지 사업 진출
최근 들어 롯데그룹에 불어 닥치고 있는 가장 큰 변화의 하나는 롯데그룹의 무게 중심이 롯데케미칼(대표이사 신동빈·김교현·이영준·황진구)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롯데케미칼은 올해 초 일진머티리얼즈(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를 인수하면서 상장사 2곳(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롯데정밀화학)을 포함해 롯데건설, 현대케미칼, 여수페트로 등을 종속회사로 둔 롯데그룹 최대 계열사가 됐다.
이전까지의 롯데그룹의 중심은 롯데쇼핑(대표이사 부회장 김상현)이었다. 롯데그룹은 1967년 롯데제과 설립으로 국내 비즈니스를 시작한 이래 업력(業歷) 56년동안 숱한 변화를 겪었지만 롯데쇼핑으로 대표되는 유통을 주력사업으로 유지한다는 전략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그렇지만 롯데쇼핑이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고 유통 중심이 오프라인에서 '쿠팡'으로 대표되는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위기감이 확산됐다.
이 결과 나온 새 전략이 '뉴 롯데'(New Lotte)이며 요지는 롯데를 전통의 유통 기업에서 바이오, 2차전지(배터리), 모빌리티 중심으로 업그레이드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롯데그룹은 지난해 화학∙식품∙인프라 등 핵심 산업군에 5년간 총 37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여기에 부합하는 펀더멘털을 갖춘 계열사로 롯데케미칼이 지목된 것이다.
롯데케미칼은 '뉴 롯데' 실행에 적합한 펀더멘털을 갖고 있다.
이번에 롯데케미칼 종속회사로 편입된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대표이사 김연섭)의 주력 생산품은 리튬이온 이차전지에 들어가는 핵심 소재인 동박(Elecfoil)이며 향후 고성장이 예고되고 있다. 또,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ESG 비전 전략 ‘GREEN PROMISE 2030’을 발표하고 에너지 효율화, 재생에너지 사업을 진행하면서 친환경 비즈니스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 7개 사업장에서 건물 지붕, 주차장 유휴 공간을 활용해 태양광 발전 설비를 설치하고 재생에너지를 생산하고 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 롯데정보통신은 '도심항공교통' 신사업
뉴 롯데의 또 다른 축은 지난해 설립된 롯데바이오로직스(대표이사 이원직)이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글로벌 제약사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으로부터 미국 시러큐스 바이오의약품 공장을 인수해 CDMO(위탁개발생산)사업에 나섰다. 이를 위해 항체·약물 결합체(ADC) 생산에 들어갔다.
모빌리티 부문은 롯데정보통신(대표이사 노준형)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롯데정보통신은 롯데건설, 롯데렌탈과 함께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K-UAM(한국형 도심항공교통)에 컨소시엄으로 참여하고 있다. 롯데그룹이 보유한 오프라인 거점을 기반으로 지상과 항공을 연계한 국내 교통 인프라 구축을 진행하고 있다. 유통∙호텔 등 운영 점포와 연계 복합 충전스테이션 설치 등 충전 인프라 사업도 확대할 계획이다. 이밖에 자율주행셔틀, 전기가 충전 인프라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유통 부문(롯데쇼핑)도 뉴 롯데 전략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롯데쇼핑은 고용유발효과가 높은 대규모 복합몰을 개발하고 핵심 지점 리뉴얼을 차례로 진행하는 등 롯대백화점, 롯데쇼핑에서 새로운 쇼핑 문화를 선도한다는 계획이다. 식품 사업에서는 와인과 위스키를 중심으로 성장하는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대체육, 건강기능식품 등 미래 먹거리와 신제품 개발 등에 총 2조1000억원을 투자한다.
◆성과 가시화까지는 시간 필요... 롯데케미칼 업황 부진
'뉴 롯데'의 성과는 언제쯤 가시화할 수 있을까? 롯데그룹은 내년 공시대상기업집단 발표에서 순위 회복할 수 있을까?
업계에서는 가능성을 반반으로 보고 있다.
공시대상기업집단은 공정자산(비금융사 자산총계+금융사 자본총계)을 기준으로 매겨지며 올해 롯데그룹의 공정자산은 129조6570억원으로 포스코(132조660억원)에 2조 4300억원이 뒤지며 6위로 하락했다. 그런데 이번에 일진에너지머티리얼즈(자산총계 2조4300억원)를 인수하면서 공정자산을 단순합산하면 포스코와 같아진다. 여기에다 롯데바이오로직스의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는 것이다. 롯데바이오로직스의 올해 2분기 매출액 624억 원으로 1분기 대비 3배 가량 증가했다.
반대 의견도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올해 공시대상기업집단 5위로 올라선 포스코는 신사업 성과가 본격화하면서 이익 증가폭이 크다(이익 증가→이익잉여금 증가→자산 증가). 반면 롯데는 신사업 성과가 아직은 미진하고 주력사 롯데케미칼의 본업(석유화학)이 불황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롯데케미칼은 올해도 업황 악화로 실적 부진이 예고돼 있다. 2분기 매출액 5조24억원, 영업손실 770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매출액은 5.9% 감소했고 영업손실은 40% 확대됐다. 지난해 2분기(순손실 214억원)이래 5분기 연속 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롯데쇼핑도 지난해 매출액 15조4760억원, 영업이익 3862억원, 당기순손실 3187억원으로 부진했다. 전년동기대비 매출액은 소폭 감소했고(-0.6%) 순손실은 16.73% 확대됐다.
그렇지만 뉴 롯데의 큰 틀은 갖춰져 있다. 지난해 롯데그룹 주요 계열사 매출액을 보면 롯데케미칼이 22조2761억원으로 롯데쇼핑(15조4760억원)을 넘었다. 롯데지주(14조1119억원), 호텔롯데(6조4950억원), 롯데건설(5조9443억원) 등 순이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달 18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2023 하반기 VCM(Value Creation Meeting·옛 사장단 회의)를 갖고 혁신을 다시 한번 독려했다. 신 회장은 "환경 변화를 무시하고 과거의 성공 경험을 고집해선 안 된다"며 현황에 맞는 차별화 경영을 요구했다. 먼저 신 회장은 경영 관점과 시각 변화를 통한 지속 성장을 주문했다. 이날 미팅에는 이동우 롯데지주 대표, 각 사업군 총괄대표와 계열사 대표, 롯데지주 실장 등 80여 명이 참석했다. 신 회장의 장남 신유열 롯데케미칼 상무(일본 롯데파이낸셜 대표 겸직)도 참석했다.
신유열 상무는 롯데홈쇼핑을 찾아 현장 경영 활동도 나서면서 '3세 경영'을 굳히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유열 상무는 1986년생으로 일본 게이오기주쿠대를 졸업했고 미국 콜럼비아대 MBA(경영학석사)를 받았다. 이후 노무라 증권 등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