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전만해도 이 기업은 매출의 절대액을 내수 시장에 의존하고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매출액의 대부분이 4분기(겨울)에 발생하는 전형적인 계절성(seasonality) 내수 기업이었다. 그러다 보니 비수기에는 유휴 인력이 발생하고 성수기에는 인력이 부족해지면서 경영 비효율성이 높았다. 주가도 1만원대 박스권을 헤맸다.
이제는 환골탈태했다. 이 회사는 더 이상 내수 시장에 의존하지 않는다. 계절성도 옛말이 됐다. 연매출액이 2년 연속 조(兆) 단위를 넘었고 주식시장 침체기임에도 주가가 52주 신고가를 기록했다(6만900원).
글로벌 시장에서 'K-보일러'로 1위를 기록하고 있는 경동나비엔(대표이사 손연호 김종욱) 이야기이다.
경동나비엔은 경동나비엔그룹(회장 손연호)의 핵심 계열사이며 손연호 회장→경동원(27.45%)→경동나비엔(56.72%)의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손연호 회장 부친은 고(故) 손도익(1921~2001) 경동원그룹 창업주이며 1967년 '왕표 연탄'에서 시작해 국내 메이저 보일러 그룹을 일구었다. 손도익 회장 타계 이듬해인 2002년 11월 장남 손경호(경동도시가스), 차남 손연호(경동나비엔), 3남 손달호(원진) 삼형제가 각각 계열분리했다.
◆2년 연속 '매출 1조 클럽'... 해외 비중 절반↑'수출 기업' 환골탈태
경동나비엔은 지난해 매출액 1조1609억원으로 전년비 5.26% 증가해 2년 연속 매출액 1조 클럽에 안착했다(이하 K-IFRS 연결). 그렇지만 수익성은 다소 감소해 영업이익 598억원, 당기순이익 536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비 각각 6.99%, 33.58% 감소했다. 환율이 하락했고 경상개발비, 수출경비 등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경동나비엔의 매출액은 가파르게 증가해왔다. 최근 10년 매출액 연평균증가율(CAGR)이 11.84%에 이르고 있고 이 기간 단 한 차례도 매출액이 감소한 적이 없다. 2014년만 해도 매출액이 5000억원에 미치지 못했지만 2021년 처음으로 1조원을 넘었다(1조1025억원).
눈여겨볼 부분은 수출 비중이다. 지난해 매출액 가운데 북미 부문(56.00%)이 절반이 넘었고 이어 국내 35.33%, 러시아 5.00%, 중국 1.38%, 기타 해외(2.70%) 순이다. 해외 부문을 합친 수출 비중은 67%이다. 2017년까지만 해도 경동나비엔 매출액에서 내수 비중이 절반을 넘었지만(53.76%) 환골탈태한 것이다. 수출 대상국은 북미, 중국, 러시아를 포함해 총 47개국이며 국내 보일러 전체 수출에서 압도적 1위(88%)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북미 부문의 실적이 가파르게 개선되고 있다. 아직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러시아에서의 성장도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 723억원을 기록했다.
수출비중이 과반을 차지하다보니 경동나비엔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돼온 계절성도 자연스럽게 해소됐다. 이 회사의 지난해 분기별 매출액을 살펴보면 2941억원(1분기), 2483억원(2분기), 2812억원(3분기), 3372억원(4분기)로 편차가 크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경동나비엔이 최근 주식시장 침체기에도 52주 신고가를 기록한 것은 이같은 질적 업그레이드가 주식시장에 반영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7월 25일 6만900원).
◆자체 브랜드로 북미시장 진출... 길게 보고 초기 손해 감수
경동나비엔은 2006년 미국법인 나비엔(Navien Inc.)을 설립하면서 글로벌 시장 개척에 나섰다. 내수시장이 포화상태에 도달한 데다 앞서 언급한 대로 실적 계절성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2007년에는 중국법인 상하이나비엔을 설립했다.
당시 경동나비엔은 현지 보일러 선두기업 A.O. 스미스(A.O. Smith)와 제휴 방식으로 진출할 것을 검토했으나 결국 자체 브랜드로 시작했다. 이는 전략의 승리였다. 업계에서는 경동나비엔이 진입 초기에 A.O. 스미스와 제휴해 진출했다면 매출액은 단기간에 늘었을 테지만 스미스에 종속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작은 어렵지만 자체 브랜드로 진출한 결과 이제는 북미지역에 경동나비엔 브랜드가 확실하게 자리잡았다. 이제는 교체 사이클 때 현지 소비자들이 경동나비엔을 채택하고 있다. 또, 유통점과 설치업자를 통해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되기에 가격 인상도 이뤄지고 있다.
지난 6월에는 멕시코 법인을 세웠다. 경동나비엔은 멕시코법인을 시작으로 중남미 시장 공략에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이같은 성과의 이면에는 기술력이 있다. 경동나비엔은 지난 1988년 업계 최초로 콘덴싱보일러(Condensing Boiler)를 최초로 개발했다. 콘덴싱보일러란 한번 빠져 나가는 열을 재순환해 가동하는 보일러로 열효율이 높고 이산화탄소,미세먼지가 적어 친환경적이다. 지난해에는 '나비엔 콘덴싱 ON AI' 출시를 통해 소비자 온수 사용의 불편함을 덜었다. 경동나비엔은 ‘온수가전’뿐만 아니라 공기청정 제품 라인업 다변화에도 나서고 있다. 지난 1월 경동나비엔은 상업용 시설을 비롯한 다중이용시설에서 활용 가능한 ‘중대형 청정환기시스템’을 선보였다.
이 결과 경동나비엔은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REALMETER) 조사에서 가정용 보일러 브랜드 선호도 1위(33.1%)를 기록했다. 2위 귀뚜라미(32.8%)를 앞질렀다.
◆손연호 회장, 책임 경영 이끄는 '은둔의 경영자'
경동나비엔그룹을 이끌고 있는 손연호 회장은 경동원, 경동나비엔 대표이사를 겸직하고 있다. 외부에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스타일이다.
손 회장 장남 손흥락(42)씨는 올해 초 보일러·온수기 유지보수 계열사인 경동티에스 대표이사에 선임돼 3세 경영을 본격 시작했다. 지난해 3월 이사회 멤버로 이름을 올린 지 1년만이다. 미국 위스콘신메디슨대 경제학과를 졸업했으며 2008년 27세에 경동나비엔 입사해 전략사업팀장(이사), 전략마케팅부문장, 구매조달총괄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경동나비엔 서비스구매조달총괄 부사장도 맡고 있다. 지주사격에 해당하는 경동원 지분 24.00%를 갖고 있다.
장녀 손유진(46)씨는 올해초 경동나비엔 상무보에서 경영기획부문장 상무로 승진했다. 이화여대 국문과(학사), 사회학과(석사)를 거쳐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박사를 받았다. 경동원 지분 9.37%를 갖고 있다.
고 손도익 회장 창업 타계 이후 3형제는 계열분리됐지만 지분이 느슨하게 연결돼 있다. 장남 손경호 회장은 경동홀딩스 최대주주(21.13%)이며 경동도시가스와 그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경동홀딩스는 경동도시가스 최대주주(32.18%)로 경동도시가스의 계열사인 경동이앤에스, 경동건설, 케이디파워텍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손경호 회장은 경동도시가스(21.13%) 지분도 갖고 있다. 이밖에 손경호 회장 장남 손원락 경동이앤테크 대표이사가 15.61%, 손 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동암장학회가 9.57%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3남 손달호 회장은 경동원 그룹의 모태인 왕표연탄을 이어받은 원진을 맡고 있다. 원진은 지주회사로서 도매업 및 부동산임대업을 주업으로 하고 있으며 경동에너지, 경동개발, 경동월드와이드 등을 거느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