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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유업 '길잃은 매각'...주식가처분 허가로 재매각도 불가능

- 홍원식 회장 "한앤컴퍼니, 합의사항 거부"

- 한앤컴퍼니, "홍원식 회장, 수용 어려운 사항 요청"

- 법원, 한앤컴퍼니의 '주식 가처분 금지 신청' 인용

  • 기사등록 2021-09-05 16:5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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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밸류뉴스=문성준 기자]

"저는 남양유업 회장직에서 물러나겠습니다. 자식에게도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습니다."


지난 5월 4일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남양유업 본사.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낸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의 목소리는 비장하면서도 떨렸다. 불가리스 과장광고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는 내용이었다. 부친 고(故) 홍두영(1925~2010) 회장이 1964년 창업해 반세기 넘게 이어온 '홍씨 가문 남양유업'의 역사가 일단락되는 순간이었다. 얼마 후 홍원식 회장은 사모펀드 한앤컴퍼니(대표이사 한상원)에 남양유업 지분을 3100억원에 매각하겠다고 발표했댜. 


그로부터 4개월 가량이 지난 5일 현재.


남양유업 매각 이슈는 돌고 돌아 원점으로 회귀했다. 홍원식 회장이 이달초 한앤컴퍼니측이 합의 이행사항을 거부했다며 계약 취소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연매출액 1조원대 기업의 매각이 이처럼 석연찮은 이유로 무산 위기로 치닫는 케이스를 찾기는 쉽지 않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

◆홍원식 회장, "한앤코, 합의사항 거부해 계약 해지"


홍원식 회장은 1일 사모펀드 한앤컴퍼니와의 주식매매계약 해제를 통보했다. 앞서 5월 27일 홍원식 회장은 한앤컴퍼니에 자신의 남양유업 지분(51.68%. 37만8000주)를 3100억원에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홍 회장이 이같은 결정을 한 계기는 4월 남양유업이 ‘불가리스’ 제품에 대한 허위∙과장 광고로 세종시로부터 시정명령과 약 8억원 과징금 처분 명령을 받은 것이 시작이었다. 남양유업이 "불가리스가 코로나19에 대한 항바이러스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했지만 조사 결과 이는 단순한 세포 실험으로 실제로 제품을 마셨을 때 인체의 영향에 대해서는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남양유업 불가리스. [사진=남양유업]

경찰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고발을 바탕으로 남양유업 본사와 연구소 등을 압수수색하고 관계자들을 조사했다. 그러자 홍원식 회장은 앞서 언급한대로 기자회견을 열어 회장직 사퇴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한앤컴퍼니, “홍 회장, 수용 어려운 사항을 부탁... 계약상 문제될 것 없어”


홍원식 회장은 이후 말을 바꾼 것과 관련, 한앤코 측이 계약상의 약정을 불이행해 부득이하게 계약을 해지했다는 입장이다. 


1일 홍원식 회장은 법률대리인 LKB앤파트너스(대표 임권수 김종근)를 통해 “매수인 한앤컴퍼니가 합의가 끝난 '이슈'임에도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돌연 태도를 바꿨다”며 “언론을 통해 비난하거나 겁박하기만 할 뿐 대화에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여기서 말하는 ‘이슈’는 글자 그대로 홍원식 회장이 한앤컴퍼니 측에 구두로 전달한 사항으로 계약서에는 포함돼 있지 않은 내용으로 추정된다.


이어 “계약 협상 날짜가 남아있음에도 주식 양도 소송을 제기해 압박하고 비밀유지의무를 위배하고 계약이나 협상의 내용을 언론에 알렸다”며 “이렇게 부도덕한 사모펀드에 남양유업을 쉽게 넘길 수는 없다고 결심했다”고 덧붙였다. 또 “이러한 불미스러운 사태에도 경영권 매각 약속을 지키고자 추후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자 한앤컴퍼니는 지난달 23일 홍 회장을 상대로 전자등록주식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한앤컴퍼니는 계약에 문제될 부분이 없다는 입장이다. 한앤컴퍼니는 “본 계약 발표 이후 홍 회장 측에서 가격 재협상 등 당사가 수용하기 곤란한 사항들을 ‘부탁’이라고 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이나 상황 자체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이어 “8월 중순 이후 돌연 무리한 요구들을 거래 조건의 ‘선결 조건’으로 내세우기 시작했다”며 “모든 합의사항들은 서면으로 남아 있으며 법원에서 규명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공정거래위원회 승인에 따라 거래종결일정이 7월 30일 오전으로 확정됐으며 양측 법률 대리인들이 상호 증권계좌 확인 등 모든 준비를 마친 상황에서 종결일 전날 밤에 ‘거래종결 날짜를 통지받은 적이 없다’는 갑작스러운 공문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한앤컴퍼니는 계약을 경시하는 선례가 생길 것을 우려해 운용사로서의 책임을 다한다는 입장이다.


한앤컴퍼니 관계자는 더밸류뉴스와의 통화에서 “선결조건이 모두 이행됐음에도 홍 회장이 7월 30일 임시주주총회에 돌연 나타나지 않았고, 준비가 더 필요하다며 연기한 것이 갈등의 서막”이라며 “통상 주식매매 계약시 매도인보다 매수인의 선행 조건이 많은 데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남양유업 측의 입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남양유업 측의 입장처럼 계약상 비밀유지의무를 위반한 사항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고 덧붙였다. 


남양유업 임시주주총회는 지난 7월 30일로 예정돼 있었지만 홍 회장은 쌍방 당자사간 종결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며 돌연 총회를 9월 16일로 연기됐다. 이는 계약의 사실상 마지노선 기한인 8월 31일조차 넘어가는 기간이다. 주식매매 약서에 따르면 당사자들의 선행조건이 완료된 후 13영업일(business day)이 되는 날 또는 당사자들이 합의하는 날에 대금 지급을 할 수 있으며 단, 당사자들의 합의가 없는 경우에는 8월 31일을 넘기지는 못한다고 명시돼 있다. 선행조건이 완료된 상황에서 당사자들이 합의한 날짜가 있다면 8월 31일이라는 날짜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최근 법원은 한앤컴퍼니가 낸 가처분 금지 신청을 받아들여 남양유업은 다른 곳에 회사를 매각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두 회사간 ‘사전 합의’ 사항이 존재하는 지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남양유업 전남 나주 공장 전경. [사진=남양유업]

업계에서는 한앤컴퍼니 측이 불리하지 않은 입장에 있다고 보고 있다. 이미 본 계약이 체결된 상태에서 계약 해지가 정당화되려면 그에 상응하는 과실 사유가 증명돼야 하기 때문이다. 연매출액 1조원대의 회사 운명을 결정하고 거액이 오가는 계약에서 포함돼 있지 않는 합의사항이 존재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메이저 법무법인의 한 변호사는 “민법상 계약해제는 중대한 채무 불이행이 있을시 적용될 수 있는데 계약서에 나오지 않은 사항을 해제 사유로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홍 회장, 남양유업 지분 헐값 매각"


홍원식 회장의 지분 매각 대금 3100억원은 지나치게 헐값이라는 지적은 초기부터 제기돼왔다. 남양유업이 소유하고 있는 본사 건물과 공장 등 보유 부동산 가치만 약 4000억원이 넘는다.


게다가 계약 발표 이전 남양유업의 주가는 36만원대 수준이었으나 7월 1일에는 80만원대를 찍기도 했다. 주식매매계약 체결 이후 주가가 급등한 것이다. 그러다 남양유업 계약 불발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8월 31일 56만원대에서 9월 5일 현재 49만원까지 하락했다.


남양유업의 최근 1년 주가 추이. [그래프=네이버 증권]

홍원식 회장은 여전히 회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1~6월)에 8억 가량의 보수를 받았다. 또 보직 해임됐던 장남 홍진석 상무가 전략기획 담당 상무로 복귀하고 차남인 홍범석 외식사업본부장은 상무보로 승진했다. 


홍원식 회장은 1970년대 초반 대학(연세대 경영학과) 재학중에도 남양유업 사무실에 출근해 입출금 전표를 끊고 경리 업무를 볼 정도로 가업에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남양유업은 '전국 우량아 선발대회'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우유 시장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1980년대 남양유업의 '전국 우량아 선발대회' 신문광고. 

그렇지만 이제 남양유업은 매출액 기준으로 매일유업, 서울우유에 이어 3위를 기록하고 있다. 남양유업은 올해 상반기 별도기준 매출액 4617억원, 영업손실 335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비 매출액은 1.38% 감소했고 영업손실은 4.36% 커지며 흑자전환에 실패했다. 


남양유업측은 “홍원식 회장의 매각 의지는 확고하다. 홍 회장이 회사 매각이라는 중대한 길목에서 회사를 발전시키고 진심으로 대할 수 있는 후보자에게 경영권을 넘기고자 마지막 과업을 수행하고 있는 점을 지켜봐 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더밸류뉴스는 홍원식 회장측의 법률대리인 LKB앤파트너스 측에 문의했으나 답변을 얻지 못했다. 


홍원식 회장의 본심과 남양유업 경영권의 향방은 결국 법정에서 드러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a854123@thevalu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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