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더밸류뉴스=김승범 기자]

<1만년의 폭발>은 인류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골격과 신체학적 특징, 심리 구조를 갖게 됐는지를 1만년의 시공간을 무대로 입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인간이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진 생명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1만년의 폭발>  그레고리 코크란. 헨리 하펜딩 지음. 김영주 옮김. 글항아리. 부제 : 문명은 어떻게 인류 진화를 가속화시켰는가? (How civilization accelerated human evolution)


9353530


다음은 이 책에 나오는 주요 문장이다. 


- 10만년전(수렵 시대의 인류는 창을 이용해 근접 공격에 의존했다. 이같은 공격은 매우 위험하고 육체적으로도 힘들었다. 따라서 당시의 사냥꾼들은 체구가 크고, 근육이 잘 발달돼 있어야 했고, 힘이 세야 했고, 뼈가 두터워야 했다.


- 유전적 변이는 어느 정도의 기간이 있어야 발생하는걸까? 개는 약 1만 5,000년전에 늑대에서 가축화됐다. 개의 행동도 바뀌었다. 개는 사람의 목소리와 몸짓을 잘 읽는 반면 늑대는 우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개의 자연수명은 10년이다. 인류의 약 7분의 1이다. 그러니 1만년이라는 시간에 완벽하게 진화한 것이다.


- 옥수수는 테오신트라는 야생초에서 유래했는데, 단 7,000년만에 엄청나게 진화했다. 옥수수와 테오신트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옥수수는 1년에도 여러 차례 심을 수 있다.


- 현대 인류는 약 4만년전에 유럽으로 이동해 당시 이미 거주하고 있던 네안데르탈인을 몰아냈다. 두 종은 같은 종류의 자원을놓고 경쟁했다. 생태학 이론에 따르면 이때 한 종이 다른 종을 완전히 누른다. 현대 인류가 네안데르탈인을 완전히 대체하는데는 약 1만년이 걸렸다. 마지막 네안데르탈인은 지금의 스페인 남부에 살았던 것 같다.


- 네안데르탈인의 멸종 이유는 지금도 미스터리이다.  현재까지 제기된 이론중 가장 그럴법한 거은 현대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이동할 때 질병 혹은 기생충을 몸에 갖고 갔다는 것이다. 아프리카가 따뜻한 기후였음을 감안하면 이는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이 질병이나 기생충은 현대 인류에게는 전혀 해롭지 않았지만 네안데르탈인에게는 치명적이었다. 물론 이를 뒷받침하는 결정적 증거는 없다.  세균은 화석을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 또 다른 이론은 현대 인류가 이전까지 사용되던 찌르는 창과는 다른 던지는 무기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만일 몸이 가벼운 현대 인류가 네안데르탈인만큼 사냥을 잘하면서도 칼로리를 더 적게 소모했다면 몸집이 큰 네안데르탈인들이 뒤쳐졌을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이 그 기술을 모방할 수 있었다고 해도, 그들은 무거운 몸 때문에 사냥에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을 것이다. 오리나시안 문화(기원전 3만 2,000년~2만 6,000년 사이에 유럽에 존재했던 문화)의 양끝이 뾰족한 작은 석기를보면 이 시나리오도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지만 현재 알려져 있는 최초의 투창기인 아틀라틀(Atlatl)은 훨씬 뒤에 만들어졌다.


- 10만년전의 세계 인구는 50만명이었다. 이 수치는 아프리카에 살았던 현대 인류와 유라시아에 살았던 고인류(네안데르탈인고 진화한 에렉투스)를 모두 합한 것이다.  


- 현대 인류가 아프리카 바깥으로 퍼져나가기 전인 6만년전에 인류의 수는 약 25만명이었다. 그리고 빙하기가 끝난 1만 2,000년전 무렵에는 600만명의 현대 인류가 살았던 것 같다.  이들은 여전히 수렵채집인들이었지만 전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효과적인 수렵채집인들이었다. 3,000년전 청동기 시대에 접어들자 인류는 6,000만명에 도달했다.


- 식량을 찾아다니는 것에 비해 1에이커당 10배에서 100배쯤 더 많은 칼로리를 생산하는 농경은 인구의 증가 추세를 더 가속화시켰다. 기원전 1만년에서 기원후 1년까지 세계 인구는 약 100배 증가했다.


- 농경은 식량 생산을 엄청나게 늘렸지만 영양의 질은 수렵채집인들보다 더 나빠졌다.


- 농경 시대에 인간은 처음으로 부를 축적할 수 있게 됐다. 따라서 생산하지 않는 엘리트 집단이 형성됐다. 이런 발전이 결국 정부(국가)를 탄생시켰고 정부는 폭력을 통제했다.


- 정부가 이렇게 한 것은 피지배자들로부터 더 많은 자원을 뜯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농부들이 황소를 거세하는 이유와 같다고 보면 된다.


- 인간은 새로운 환경에 맞지 않았다. 인류는 적응을 해야 하는 압력에 놓였다. 환경이 새롭게 바뀌었기 때문에 유전적 개선은 상대적으로 쉬웠다. 이시점에는 농경에 적응하는 것이 더 나은 수렵 채집인이 되는 것보다 쉬웠다.


- 농경 이후의 진화는 400세대에 걸쳐 일어났다. 이 정도이면 유전적 변화도 만들어낸다.


- 비타민 부족도 농부에게는 문제였을 것이다. 신선한 고기가 거의 없었고 극소수의 농작물이 중심을 차지했다. 수렵채집인들은 각기병, 펠라그라, 구루병, 괴혈병 같은 비타민 결핍성 질환들을 거의 앓지 않았지만 농부들은 이따금씩 이런 질병에 걸렸다. 비타민이 부족한 저단백 고탄수화물 식이는 초기 농부들의 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


- 초기 농부들의 뼈에는 병을 앓은 흔적들이 많이 나타난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옥수수의 도입으로 많은 사람들이 충치와 빈혈에 걸렸다. 철분 결핍 탓이었다. 옥수수에는 인간의 몸이 이용할 수 있는 철분이 적기 때문이다. 이는 유전자 변이를 낳았다. 새로운 식이에 잘 대처하도록 돕는 유전자 변종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많은 자식을 남겼고, 이 결과 변종들이 확산됐다.  


- 농부들은 농경 식이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인류가 변했다.


- 지금의 우리에게는 수렵 채집 시대의 유전자가 밑바탕에 깔려 있고, 농경 시대의 유전자가 부분적으로 포함돼 있다.


- 농경 시대에 접어들어 락토오스를 소화시키는 유전적 돌연변이가 인류에게 발생했다. 락토오스는 우유에 들어있는데, 포유류는 어린 시절이면 락토오스 생산을 멈춘다.  당시에는 어머니의 젖이 락토오스가 든 유일한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큰 아이들이나 성인들이 굳이 락타아제를 만들 이유가 없었다. 락타아제 생산의 중지는 형제자매들 사이의 파괴적 경쟁을 막는 역할도 했다.

그런데 소를 기르기 시작하면서 우유가 생겼고, 우유는 모든 연령의 사람들에게 좋은 음식이었다. 단 그것을 소화시킬 수 있는 경우에만...

그러자 락타아제를 생산하는 돌연변이가 약 8,000년전에 유럽인들사이에 폭넓게 퍼져나갔다. 덴마크와 스웨덴에서 95%가 넘는 빈도에 이르렀다.  생각해보면 해괴한 일이다. 인류가 '젖흡혈귀' 다시 말해 다른 종의 젖을 주식으로 하는 돌연변이가 됐다는 뜻이다.


- 유럽인의 피부색이 하얗게 진화한 것도 농경 시대와 함께 진행됐다. 농경을 하자 비타민 D가 부족해졌다. 비타민 D는 태양의 자외선을 받아 피부에서 합성된다. 적도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 - 예를 들면 유럽 지역- 에서는 비타민 D가 적게 생산된다. 수렵 채집 시대에는 비타민 D를 풍부하게 섭취할 수 있었는데, 농경 시대가 되자 이게 어려워졌다.

그러자 유럽인들의 피부가 하얗게 진화하기 시작했다. 피부가 하얀색이면 자외선이 적더라도 비타민 D를 합성할수 있다.
비타민D가 부족하면 뼈 기형(구루병)이 생기고, 전염병에 대한 저항성이 떨어지고, 심지어 암이 발병한다.


- 지금의 스마트폰은 인류에게 어떤 유전적 변이를 초래할까?


- 매력 자본이 중요해질 것이다. 스마트폰은 시각의 중요성을 한차원 높였다. 스마트폰의 카메라 촬영 기능으로 모든 것에 시각은 갈수록 중요해질 것.


- 농경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계급의 발생이다. 수렵채집인들은 기근의 타격을 덜 받았다. 이들은 소규모 재배 식물에 의존하지 않았다


- 재배식물은 날씨가 좋은 해에도 병충해와 마름병에 걸릴 수 있다.


- 수렵채집사회는 원칙적으로 평등사회였다. 저장 시설이 없었으므로 먹을거리가 생기면 남기지 않고 골고루 나눠 먹었다. 또, 수렵 채집 사회에서는 정부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족장도 두목도 없었다. 우두머리가 되려는 구성원은 필요 없었다. 오늘날의 부시맨들은 두목이 되고 싶어하는 구성원을 비웃는다.

그렇지만 농경 사회에서는 우두머리가 있었다. 그것은 땅을 소유한 결과였다. 곡물 농사꾼들은 식량을 저장했고, 이것은 수렵채집인들과 달리 훔칠 가치가 있는 어떤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타인의 생산력에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들로 정의되는 엘리트층이 생겨난 것은 그것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정부는 장점도 있었다. 정부는 농부들을 안전하게 만들었다. 농부들은 더이상 습격당하지 않았다.


- 당신은 당당하게 서서 죽기보다는 무릎을 꿇고서라도 살아남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농부의 후손일 가능성이 높다. 농경은 엘리트층을 만들어냈고, 그들의 권력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수렵채집인들은 멀리 떠날 수 있었지만 토지는 버리고 떠나기에는 너무 귀한 것이었다. 따라서 농부들은 굴복해야 했다. 이리하여 수렵 채집시대의 '평등주의자 마인드'는 씨가 말랐다.
농부들이 소를 사육하듯이 엘리트 계급이 실질적으로 농부들을 사육하고 있었기 때문에, 엘리트들은 평균보다 공격적인 사람을 솎아냈음에 틀림없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러한 공격성을 유발한 유전자들의 빈도가 변했을 것이다.


- 농부들은 배가 고파도 씨앗을 먹지 말아야 했다. 이것은 수렵채집인들이 하지 않던 일이었다. 수렵 채집인들은 식량을 효과적으로 저장할 방법이 없었고, 그래서 그 자리에서 먹어치웠다. 수렵채집이들은 자제하는 성향이나 참는 성향이 없었다.

농부들은 인내심, 장기적 관점을 내다보는 능력을 유전자로 갖게 됐다.
농부들은 이기적이어야 했다. 그들은 씨곡이나 씨가축을 남에게 줄 여유가 없었다. 계속 농부로 남고 싶다면 말이다.

농부들은 부지런해야 했다. 수렵채집인들은 일하지 않았다. 그들은 빈둥거리며 놀았다. 그들은이야기하고, 잡담하고,노래했다. 그들인 게을렀다. 게으음을 생물학적으로 합리적이었다.

그들은 대개는 식량을 충분히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런데 농부들은 단지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 했다. 여기서 다시 먹을 게 충분히 있는데도 일하고 싶어하는 이상한 사람들에 대한 선택이 일어났을 것이다. 


- 농경은 인류를 질병에 대해 저항성을 갖는 유전자를 만들어냈다.


- 농경 시대 이후 인간의 골격은 호리호리해졌다. 즉 몸집이 더 가벼워졌다. 턱은 줄어들었고, 긴 뼈들은 더 가벼워졌고, 불룩한 눈두덩이가 사라졌다. 두개골의 용적도 줄었다.  


- 유럽인의 두개골 용적은 2만년전의 최고치로부터 약 10%가 줄어든 상태이다. 


ksb@buffettlab.co.kr

[저작권 ⓒ 더밸류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TAG
0
기사수정
  • 기사등록 2017-07-08 17:26:00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버핏연구소 텔레그램
4차산업더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