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무역그룹(대표 성기학)이 자산총액 6조890억원으로 올해 처음 공시대상기업집단에 합류했다. 재계 순위 73위다. 주요 계열사인 영원무역 역할이 컸다. 그러나 대기업 반열에 올라선 기쁨도 잠시, 2세 승계 전략에 제동이 걸리고 재고자산 여파로 2분기 실적이 감소하는 등 변수를 맞고 있다. 실적 감소는 자전거 브랜드 '스캇'의 재고자산이 늘어난 데 있다. 여기에 의류 시장의 호황기가 끝나며 주요 고객사의 수주 감소와 OEM 사업의 불황이 더해졌다. 이에 영원무역은 방글라데시를 중심으로 한 해외 생산기지 확대와 R&D 센터 구축을 통해 OEM 사업 회복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성래은 부회장의 승계 작업은 각종 규제와 공정위 조사 등 대기업으로서의 부담이 커지며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평이 이어지고 있어 향후 일정에 관심이 쏠린다.
◆‘스캇’ 재고자산 여파와 고객사 수주 감소로 전체 실적 감소…하반기 OEM 기저 기대
영원무역은 지난 2분기 매출 8622억원, 영업이익 1069억원을 기록하며 전년동기대비 각각 14.45%, 49.24% 감소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재고자산 여파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재고자산은 1조3291억원으로 전년대비 25% 증가했다. 올해 1분기에도 1조3450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스캇'의 재고자산 영향이 컸다. 전체 중 스캇의 비중은 2022년 42%(4170억원)에서 지난해 59%(7900억원)로 증가했다. 유럽 소비가 둔화되고 자전거 구매 주기가 늘어나고 있어서 올해 안에 반등하는 것은 소원해 보인다.
또 2022년부터 지난해 2분기까지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올해 기저부담이 높아졌고 경기침체가 이어지며 수주가 줄어들었다. 2021~2022년 스포츠/기능성 의류 시장의 호황기가 끝나 Top5 고객사인 엥겔벌트스트라우스, 노스페이스, 파타고니아, 룰루레몬, 아크테릭스는 지금까지 다운사이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요 고객사의 수주가 감소하며 매출이 감소하고 고정비용 부담도 증가했다.
그럼에도 하반기에는 OEM(외주업체 생산방식) 기저효과가 기대된다. 영원무역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매출이 감소하고 있으나 올해 하반기부터 감소폭을 줄여 나갈 전망이다.
◆방글라데시 의류 생산 통합 R&D 센터 구축…OEM 사업 회복 위해 해외 공장 설립 추진
지난 몇 분기 간 악화된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영원무역은 신규 공장 설립으로 투자를 이어간다.
영원무역은 지난달 제1 생산기지인 방글라데시에 디자인, 직조, 프린팅, 염색 등 7개 분야를 통합한 R&D 센터를 구축했다고 밝혔다. 해당 공장은 2026년부터 운영할 예정이다. 올해 말 의류 디자인 커리큘럼을 갖춘 교육기관도 함께 설립한다. 외부 교수진 20여 명, 국내외 석·박사급 연구인력 30여 명 등이 투입될 예정이다.
이번 공장 건설은 OEM 사업을 회복시키기 위함이다. 영원무역의 OEM 사업은 전체 매출의 70%를 차지한다. 영원무역의 해외 수출 비중도 95% 이상이다. 2022년부터 이어진 경기침체와 높은 기저부담으로 수주가 줄어들어 실적에 타격이 컸다. 지난해 매출 3조6044억원, 영업이익 6371억원으로 전년대비 각각 7.84%, 22.59% 감소했다.
영원무역은 방글라데시에 외에도 엘살바도르,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에티오피아, 인도, 케냐 등에 생산기지를 구축했다. 지난 4월 25일 케냐 수출가공지역청으로부터 제조 승인을 획득해 케냐 수도인 나이로비 인근 '아티리버 수출가공지대'에 의류 공장 건설을 본격화했다. 지난 12일에는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이 인도 텔랑가나주 투자간담회에 참석해 레반트 레디 인도 텔랑가나 주총리와 만나 사업 확대를 검토했다.
◆영원무역 대기업 반열…성래은 부회장 승계 작업 재검토한다
영원무역그룹이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지정되며 대기업 반열에 올랐지만, 이는 2세 승계 전략에 새로운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성래은 부회장 중심의 승계 작업이 진행 중인 가운데,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으로 인한 내부거래와 부당 지원 등에 대한 규제 강화로 기존의 승계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특히 YMSA를 통한 현금 창출이 어려워지면서, 성 부회장의 증여세 납부와 잔여 지분 확보를 위한 새로운 방안 모색이 필요한 상황이다. 더불어 공정위의 계열사 허위 제출 혐의 조사는 그룹의 승계 과정에 대한 정밀 검토를 더욱 강화할 전망이다. 이에 영원무역그룹은 규제 환경 변화에 맞춘 새로운 승계 전략 수립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성 부회장은 1978년생으로 2002년 영원무역에 입사해 2007년 글로벌컴플라이언스·CSR부문 이사를 역임했다. 2016년 영원무역홀딩스 대표이사, 2020년 영업 및 경영관리 총괄사장을 맡았고 2022년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현재 한국패션산업협회장도 역임하고 있다.
그녀는 지난해 3월 아버지 성 회장으로부터 영원무역의 지주사 YMSA의 지분 50.01%을 받으며 최대주주가 됐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영원무역홀딩스 지분 구조는 YMSA 29.09%, 성기학 회장 16.77%, 성래은 부회장 0.03%였다. 성래은 부회장은 YMSA 지분을 받는 과정에서 발생한 증여세 850억원 중 815억원을 YMSA로부터 차입한 현금으로 납부했다. 향후 성 회장의 YMSA 지분 49.99%를 확보하고 차입금을 모두 상환하면 승계가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영원무역그룹은 지난달 2일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받았다. 지난해 4월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을 앞두고 성기학 회장의 친인척 회사 현황을 누락한 자료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영원무역그룹이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을 피하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또 지난 6월, 7년 만에 500억원의 자사주를 매입하겠다고 밝혀 밸류업을 통한 상속 및 증여세 혜택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의구심도 나오는 상황이다. 정부는 최근 기업가치제고 프로그램 ‘밸류업’을 장려하고 있다. 7월말에는 세법개정안에 앞서 밸류업 관련 최대주주 할증평가 폐지를 예고했다. 최대주주 할증평가는 대기업 최대주주의 주식 양도 시 경영권 프리미엄 20%를 더해 주식가치를 평가하는 제도로 상속·증여세 할인혜택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 제도가 폐지되면 성 회장의 지분양도에 따른 비용이 줄어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