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 전반이 침체된 가운데에서도 현대엘리베이터(대표이사 조재천)는 4년 연속 매출 증가라는 상승 곡선을 그려내고 있다. 승강기 산업은 건설업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경기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성이 있지만, 현대엘리베이터는 승강기 교체와 유지보수 사업의 확장, 그리고 기술 기반의 신사업 진출로 성장 모멘텀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노후 승강기 교체 수요와 첨단 기술을 접목한 유지보수 서비스로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한편, 승강기 핵심 기술을 활용한 도심항공교통(UAM)과 로봇 사업 부문에서 혁신을 이어가며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선도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현대그룹 지배구조와 현황. 2025. 4. 단위 %.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
◆건설 불황 속에서도 매출 2.9조...영업이익 173% 증가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해 매출액 2조8853억원, 영업이익 2257억원을 기록하며 전년대비 각각 10.88%, 173.24% 증가하는 놀라운 성과를 달성했다. 이는 건설업계가 착공 물량 감소와 중견 건설사들의 법정관리 등으로 심각한 침체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거둔 성과라 더욱 주목할 만하다.최근 10년 현대엘리베이터 매출액 및 영업이익률 추이. [이미지=더밸류뉴스]
현대엘리베이터의 견고한 성장세는 노후 승강기 교체 및 유지보수 사업에 대한 전략적 투자에서 비롯됐다. 승강기안전관리법에 따르면 설치 후 21년이 지난 노후 승강기는 교체하거나 주요 안전부품을 교체해야 한다. 국내에는 약 25만대의 노후 승강기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대엘리베이터는 이 시장을 선제적으로 공략해 유지보수 사업 매출액을 5937억원까지 끌어올렸다. 이는 전체 매출의 21%에 해당하는 규모다.
현대엘리베이터의 기술력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분속 1260m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자체 개발했으며, 지난해에는 친환경 탄소섬유벨트를 적용한 차세대 엘리베이터 개발에 성공했다. 이 기술은 벨트의 내마모성을 강화해 수명을 기존보다 2배 이상 늘렸으며, 시스템 일부에 이상이 생겨도 정상 주행이 가능한 첨단 안전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또한 AI, IoT, 클라우드 및 빅데이터 기술을 결합한 'MIRI(미리)' 서비스는 엘리베이터의 실시간 운행상태를 모니터링하고 고장 및 교체 주기를 사전에 예측하는 예지보전 기술을 통해 운행 정지 건수를 43% 줄이고 비가동시간을 20.6% 단축하는 성과를 거뒀다. 현재 국내 33000개 이상의 시설에서 MIRI를 사용하고 있으며, 지난해 말까지 45000개로 확대됐다.현대엘리베이터 주요 제품 품목 및 국내외 매출액 비중. [이미지=더밸류뉴스]
계열사 현대무벡스 역시 실적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 물류자동화 설비와 PSD(승강장안전문), IT 서비스 사업을 영위하는 현대무벡스는 지난해 매출액 3414억원, 영업이익 246억원으로 전년대비 각각 27.48%, 500% 증가했다. 에코프로비엠 캐나다 양극재공장, 미국 애리조나 배터리 팩 공장 물류 구축, 호주 시드니 지하철 스크린도어 설치 등 글로벌 수주를 통해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수직 이동' 기술로 UAM·로봇 사업까지 영역 확장...국토부 K-UAM 기술 개발 주도
현대엘리베이터는 승강기의 수직·수평 이동 기술을 활용한 신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 가능한 배달로봇과 도심항공교통(UAM) 수직 이착륙장 '버티포트(Vertiport)'가 있다.
글로벌 엘리베이터 및 에스컬레이터 시장 성장 추이. [자료=포춘비즈니스인사이트]지난 4월 현대엘리베이터는 카카오모빌리티와 승강기-로봇 연동 서비스 상용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는 MIRI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Open API를 통해 승강기와 로봇을 연동시키는 기술로, 로봇이 수평 이동뿐만 아니라 수직 이동까지 가능하게 하는 혁신이다. 이미 카카오 판교 알파돔, 신한은행 본사, 용인세브란스병원 등에서 40여 대의 배송로봇이 활동 중이며, 최근에는 충주 본사에서도 음료와 간식을 배달하는 로봇을 정식 운영하기 시작했다.
UAM 버티포트 개발도 본격화되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 2023년국토교통부 주관 'K-UAM 안전운용체계 핵심기술개발 사업' 일환으로 이동식 모듈형 버티포트 설계·시공 기술 및 감시시스템 개발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105억원 규모의 이 프로젝트는 내년 12월까지 진행된다.
현대엘리베이터가 내년 12월 완공 예정인 'H-PORT'의 조감도. [사진=현대엘리베이터]
일반적인 버티포트가 넓은 부지를 필요로 하는 것과 달리, 현대엘리베이터의 '수직 격납형 버티포트(H-PORT)'는 도심 환경에 최적화된 솔루션이다. 자동 주차 시스템을 활용한 격납고(Sky Garage), 드론의 자동 주차 및 충전 기능, 탑승객 승하차 통합 관제 시스템 등을 갖춘 복합 건축물 형태로 설계되어 고층 건물이 밀집된 도심 환경에서의 공간 제약을 해소한다. 현대엘리베이터는 2030년 적기 개항을 위해 지난 2023년 6월 대구시와 UAM용 버티포트 구축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대구국제공항과 대구경북신공항 부지에 UAM 복합 환승센터 조성을 추진 중이다.
시장 전망도 밝다. 마켓앤데이터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엘리베이터 및 에스컬레이터 시장은 올해부터 2032년까지 연평균 6.70%의 성장률로 확대되어 2032년에는 44억 4000만달러 규모에 이를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 역시 포춘비즈니스인사이트에 따르면 2024년 940억5000만 달러에서 2032년 1676억2000만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재천 대표, 불황 속 매출 2조원 달성...'수익구조·글로벌 역량 강화' 집중
현대엘리베이터의 성공에는 조재천 대표의 리더십이 큰 역할을 했다. 지난 1995년 입사 후 2022년 3월 대표이사로 취임한 조 대표는 건설업 불황 시기에도 과감한 해외 수주 확대와 제조시스템 고도화를 통해 취임 첫해 연매출 2조원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뤘다.
한국 엘리베이터 및 에스컬레이터 시장 성장 추이. [자료=마켓앤데이터]조 대표는 서비스사업본부에 승강기 교체 업무를 추가하고 서비스설계팀과 구매팀을 신설해 통합 관리 체계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대표 취임 첫해인 2022년 3분기 서비스 사업 수주가 전년동기대비 13.6%, 매출액은 13.3% 증가하는 성과를 거뒀다. 현재 현대엘리베이터가 관리하는 승강기는 20만대를 넘어 전국 설치 승강기의 약 25%를 차지하고 있다.
올해 현대엘리베이터는 △수익 구조 강화, △글로벌 사업 역량 강화, △선제적 위기 대응력 강화,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주요 경영방침으로 삼고 있다. 분속 1260m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중심으로 고층 건물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비접촉식 스마트 기술을 적용한 'N' 엘리베이터로 프리미엄 시장 확대에 주력할 계획이다.
현대엘리베이터 지난 6개 분기 매출액, 영업이익률 추이. [자료=더밸류뉴스]글로벌 사업 확장도 가속화된다. 지난 2023년 11월 폴란드 건설사 '이알버드'와 체결한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 협력 양해각서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공약과 맞물려 새로운 기회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 터키, 중동 등 기존 진출 시장에서의 입지를 강화하는 한편, 유럽과 북미 시장 확대도 추진한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엘리베이터라는 전통적인 인프라 사업을 넘어 UAM, 로봇, IoT 기술이 결합된 미래 이동성 솔루션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건설업 불황 속에서도 승승장구하는 현대엘리베이터의 혁신은 전통 산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롤모델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