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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밸류뉴스=박정호 기자]

<화폐 이야기>는 인류의 삶에 빼놓을 수 없는 화폐가 어떤 특징을 갖고 있고, 미래의 화폐는 어떤 모습을 갖게 될지를 소개하고 있다. 정부가 '숫자가 새겨진 종이조각'을 찍어내면 이것이 어떻게 사회 구성원들에게 위력을 발휘하게 되는지를 설명한다.  


<화폐 이야기> 부제 : 일곱가지 키워드로 읽는 돈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부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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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폐의 본질은 '대중의 신뢰(Credit)' 다시 말해 '일반적 수용'이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화폐는 가치가 있다는 공통의 믿음이 있어야만 화폐로 기능할 수 있다. 

화폐의 3대 기능은 1. 교환의 매개 수단. 2. 가치 척도. 3. 가치 저장과 투자 수단이다


- "사회 구성원들이  "저것은 화폐이다"라고 하면 화폐가 되는 겁니다. 태평양의 어느 원주민은 화강암이라는 돌이 화폐라고 하지요. 집에 돌이 많이 있으면 부자로 인정받는다고 하지요. 약속입니다.
지금의 화폐를 중앙정부의 발권력에 의해서만 기능하지요.
기업의 가치도 '당기순이익'을 기준으로 하자고 약속한거예요. 특히 주식시장에서는..."


-2011년 3월 미국 유타주에서는 과거에 미국 정부가 발행했던 금화와 은화를 달러화와 함께 법정 화폐로 인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금화와 은화를 은행에 맡기면 해당 금액만큼 입금되는 체크 카드를 발급받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결제는 당일의 금과 은의 시세로 이뤄진다. 이러한 움직임은 1971년 닉슨 대통령이 달러화와 금태환 정지를 선언해 화혜와 귀금속과의 연계를 단절시킨 이래, 금은과 태환이 보장되지 않는 기존 화폐에 대한 불신이 상당한 정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 화폐의 본질은 '대중의 신뢰(Credit)' 다시 말해 '일반적 수용'이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화폐는 가치가 있다는 공통의 믿음이 있어야만 화폐로 기능할 수 있다.


- 금(Gold)이 대표적 화폐가 된 이는 1.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귀중하게 여겨지는 물질이었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변함없이 귀중하게 여겨져온 물질은 금이 사실상 유일하다. 2. 금은 적은 양으로도 고가의 물건과 교환할 수 있어 편리했다. 3. 잘 부식되지 않고 공급의 변동서이 크지 않았다.


- 칼 마르크스는 "금과 은은 처음부터 화폐는 아니었지만 화폐는 처음부터 금과 은이었다"라고 했다.


- 1971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달러의 금 태환 정리를 선언함으로써 달러와 금의 관계가 종식됐다. 이제 대부분의 국가에서 화폐는 불환지폐이다. 다시 말해 금이나 은으로 교환이 불가능하고, 단지 정부의 강제력에 의해 법적 지불 수단으로 받아들여지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지폐는 이제 일정 액수를 나타내는 하나의 표시에 불과하며, 사람들이 그것이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그 사실에 의해 화폐의 가치는 발생한다.


- 앞으로 무엇이 화폐에 대해 신뢰를 부여할 지 미지수이다.

- 인도의 화폐 단위인 루피(rupee)는 은화를 뜻하는 루피아(rupya)에서 유래했다. 이처럼 은화는 오랫동안 세계의 기축통화로 사용됐다. 하지만 다른 국가들이 다 은화를 통화로 삼은 것은 아니었다.


- 로마의 초기 화폐는 양이나 소였다는 추정이 있다. 그 이유는 돈을 뜻하는 페쿠니아(pecunia)가 '소'라는 페쿠스(pecus)에서 파생했기 때문이다. 1520년대 한 선교사는 에티오피아의 지불 수단이 소금이었다고 기록했다. 또 서아프리카는 금이 풍부했음에도 19세기까지 구리나 놋쇠를 화폐 대용으로 사용했다. 심지어 거대한 바윗돌(태평양 마이크로네시아 연방의 얍 섬), 진주조개 껍데기(파푸아뉴기니), 쇠막대기(라이베리아)를 돈으로 사용한 기록도 많다. 마치 요즈음 플라스틱(신용카드)을 가장 중요한 화폐로 사용하듯이.


- "금은 아프리카나 여러 곳을 땅을 파서 얻는다. 우리는 그것을 녹인 다음 다른 구멍을 파서 그것을 묻는다. 그리고 그걸 지키는 사람에게 보수를 지급한다. 정말 쓸데없는 짓이다. 화성인이 만일 이 장면을 본다면 정말 황당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워렌 버핏)


- 1124년 영국왕 헨리 1세는 약 200명에 이르는 영국내 화폐 제조 명인들을 모두 불러 모아 100여명의 오른손을 잘랐다. 화폐의 품질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려는 조치였다.


- "화폐는 교환수단으로 만든 것이지 이자를 낳으라고 만든 것이 아니다. 모든 종류의 재산 획득 기술 가운데 고리대금이 자연의 원칙에 가장 위배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 노동으로 돈을 벌지 않고 이자로 생활하는 계층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통적이었다.


- 1700년대 영란은행 직원들의 보수와 대우는 형편없었다. 1694년 영란은행 설립당시의 연봉 50파운드가 1797년까지 유지됐다. 오늘날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금융쪽으로 몰리는 것과 대조적이다. 현재 미국의 금융 종사자의 평균 연봉은 제조업의 3배에 달한다.
도대체 무엇이 금융에 대한 인식을 이렇게 확 바꾼걸까?


- 476년 서로마 제국의 멸망은 서유럽의 경제적 위축을 가져왔다. 이후 유럽은 경제활동이 사실상 없었다. 금융 활동도 사라졌다. 게르만족의 이동과 마자르족의 중부 유럽 진출, 이슬람 세력의 남유럽 진출은 유럽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을 불러왔고, 교역과 금융 거래를 위축시켰다.


- 중세 기독교는 이자 수치와 대부업을 죄악으로 분류했다. 당시 기독교의 교회법은 대부업자들을 죄인 취급했다. 교회는 기독교인들에게 이자를 수취하는 대부업을 금지했다.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만 가능했기에 유대인들은 기독교 득세 이후 유럽에서 대부업을하는 대표적인 민족이 됐다.


-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뿌리 깊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시민들은 무역이나 제조업에 종사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무역이나 제조업은 사람을 타락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외국인의 몫이다"라고 했다.


- 당시에는 돈을 빌리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돈을 빌리는 것은 멍청함과 유약함의 극치이다. 돈을 갖고 있다면 더이상의 돈이 필요 없으므로 돈을 빌리지 말라. 돈이 없다고 해서 돈을 빌리지 말라. 왜냐하면 결코 갚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가난으로 인한 고통의 짐이 무거워 내 등 위에 채권자를 태우는 것은 현명한 결정이 아니다. 글자를 가르치거나,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거나, 문지기가 되거나, 선원이 되어 삶을 사는 것이 '돈 갚으라'는 독촉을 받는 것보다 훨씬 덜 비참하다."


- 로마를 기독교화했고 13세기까지 기독교 사상에 큰 영향을 미친 아우구스투스황제는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은 죄악이다. 돈은 대가없이 나눠주든지 아니면 이자 없이 빌려줘야 한다. 빌려 주더라도 나중에 갚으라고 강요하면 안된다.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주는 것은 신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과 같고 천국으로 갈 수 있는 상으로 보상받는다. 일시적인 것을 주고 영원한 것을 얻어라. 세속ㅇ적인 것을 주고 천국의 것을 얻어라"고 했다.


- 신성로마제국의 등장(962년), 십자군 전쟁(11~13세기)를 거치면서 위축됐던 중세의 경제 활동도 조금씩 변화가 나타났다.


- 메디치가는 200년 이상 유럽의 최강자로 위세를 떨쳤고 예술과 학문의 후원자로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가문의 시작은 형편없었다. 1390년대 메디치 가문을 일으킨 조반니 메디치(Giovanni Medici)가 등장하기전까지 이들은 금융업자가 아니라 폭력조직(갱단)이었다. 1343~1360년의 메디치 가문 가운데 5명 이상이 중범죄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 조반니는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는 은행가로서 보잘 것 없던 가문을 일으켜세웠다. 1385년 조반니는 친척이 운영하는 대부업 회사의 로마 지점 관리자로 부임해 외환 거래인으로 명성을 쌓았다. 로마에석는 바티칸 교황의 금고로 들어오는 유럽 각지의 화폐들을 환전햊었다. 1397년 고향 피렌체로 돌아온 그는 베니스, 로마, 제네바, 피사, 런던, 아비뇽에 지점을 세워 환전 업무를 확대하는 한편 무역 거래에서 사용하는 환어음을 인수하는 업무로 부를 늘려갔다.


- 메디치가는 체계적인 장부 기록법을 사용하고 지점장들과는 고용 관계가 아니라 파트너로서 이윤을 나눠주는 방식을 사용하는 등 경영 혁신도 이뤘다. 그들은 해마다 30%가 넘는 이윤을 남겼다.


- 100년 동안 전성시를 누렸던 메디치 은행은 1494년 피렌체의 새로운 집권 세력에 의해 은행 면허가 취소되고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면서 역사에서 사라졌다.


- 1602년 네덜란드에서 동인도 회사가 설립됐다.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였다. 네덜란드 각지의 상인, 농민, 하인들까지 주식을 매입했으며 조달한 금액은 645만 길더였다. 총 1,143명의 주주 가운데 대부분이 소액 주주였다. 동인도 회사의 주식은 증권 거래소에서 활발하게 거래됐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1650년까지 원금의 8배에 이르는 배당을 지급할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다.


- 애덤 스미스 말한 분업과 교역의 효용성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bjh@thevalu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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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7-07-27 21: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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