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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우리는 왜 그 전화를 믿게 되는가

  • 기사등록 2026-05-11 09: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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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현 변호사·법무법인 율림] 한국 사회에서 이제 보이스피싱은 낯선 범죄가 아니다. 하루에도 수십만 건의 사기 전화와 문자 메시지가 쏟아지고, 이제 사람들은 모르는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는 받지 않는다. 검사 사칭, 금융감독원 사칭, 카드사 사칭, 가족 납치 협박, 대출 전환 사기, 투자 리딩방까지 수법은 끝없이 진화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살인이나 강도, 성범죄에 비해 사기는 매스컴에 노출되는 빈도가 높지 않았고, 자극적인 뉴스에 속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나라에서 사기 범죄의 위상은 급격히 달라졌다. 사기 범죄는 이제 사회 전체를 잠식하는 거대한 산업이 되어가고 있다. 근절이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텔레그램과 오픈채팅방, SNS 광고와 AI 기술이 사기의 규모를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키워 놓았으므로.  


그런데 왜 유독 한국에서 보이스피싱이 이렇게 심각할까.


생각해보면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신뢰 사회”였다. 사람들은 국가기관을 신뢰했고, 금융기관을 신뢰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효율적이고 신뢰할만한 주민등록번호 체계와 행정 시스템이 범죄자들에게 매우 좋은 환경이 되었다. 한국 특유의 초고속 금융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모바일 송금이 지나치게 편리한 나라다. 몇 번의 클릭만으로 수천만 원이 실시간으로 이동한다. 이 속도가 범죄의 무기가 되었다. 보이스피싱은 피해자가 공포에 휩싸인 짧은 시간 안에 돈을 움직이게 만드는 범죄다. 한국 금융 시스템은 이 범죄 구조와 너무 잘 맞아떨어졌다.


아이러니한 이유가 더 있다. 최근 발생하는 보이스피싱 사건들의 양상을 들여다보면 인간의 탐욕보다 불안을 이용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대출이 막힐까 두려웠고, 자녀가 범죄에 연루되었다는 말에 무너졌으며, 계좌가 범죄에 이용되었다는 말에 공포를 느꼈다. 한 번 더 아이러니해져볼까? 집값 폭등 속에서 뒤처질까 두려운 마음, 노후가 무너질지 모른다는 공포, 저성장 사회에서 계층이 추락할 수 있다는, 적어도 삶이 더는 나아질 수 없을 것만 같은 불안함, 정상적인 노동만으로 자산을 축적하기 어려워지고, 미래에 대한 확신이 사라지고, 사회 전체가 조급함에 휩싸이기 시작한 작금의 경제구조적 상황은 사기 피해자를 양산하는 동시에 사기 범죄자도 양산한다는 점이다. 


보이스피싱 조직의 말단인 현금수거책(일명 ‘수거책’, ‘전달책’)은 사실 한국 사회의 여러 균열이 한꺼번에 드러나는 지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현금수거책 상당수는 사회초년생, 취업준비생, 저신용자, 청년층, 외국인 노동자, 단기 알바 지원자들, 당장 생활비가 필요하거나 일자리가 없거나 대출이 막히는 등으로 고수익 아르바이트 등에 쉽게 유인될 법한 자들이다. 이들은 사실 가해자인 동시에 조직이 소비해버린 사회적 약자이다. 사기 공화국의 가장 잔혹한 점은, 가난한 사람에게 피해자와 가해자 중 하나를 선택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보이스피싱 범죄는 법률가들에게 상당한 난제이다.


생각건대 보이스피싱은 단순 범죄가 아니라 불안정한 사회가 만들어내는 산업이다. 처벌은 필요하지만, 불안과 빈곤을 공급하는 사회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범죄는 계속 사람을 모집할 것이다. 그래서 보이스피싱과의 싸움은 단순한 형사정책이 아니라 사회정책이어야 한다.


[전문가 칼럼] 우리는 왜 그 전화를 믿게 되는가이미현 변호사·법무법인 율림. [사진=율림] 


hsh@thevalu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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