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오션(대표이사 권혁웅)이 HD현대중공업(대표이사 한영석 이상균)을 상대로 고발한 사건에 대해 전격 취소를 결정한 것은 사건을 장기화할 경우 보다 실(失)이 득(得)보다 클 것이라는 현실적 판단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K-방산' 발전을 위해 양대 조선사가 협력해야 한다는 명분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한화오션, 고발장 전격 취하... 'K-조선' 협력 계기 마련하고 실리도 얻어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을 상대로 경찰 고발한 사건에 대해 취소를 결정 하고 22일 오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를 방문해 고발 취소장을 제출했다. 앞서 한화오션은 올해 3월 HD현대중공업의 군사기밀 유출 사건과 관련해 임원 개 입 여부를 수사해 달라며 경찰청에 고발장을 접수했었다.
한화오션측은 "해양 방산 수출 확대라는 목표를 위해서는 고발 취소를 통해 상호 보완과 협력의 디딤돌을 마련하는 것이 현 시점에서 국익을 위한 일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또, "한국 조선업은 세계 최고 성능의 ‘명품 함정’ 건조를 통해 K-방산 한류를 이어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의 원팀(one-team) 전략에 적극 협조하고 국내 조선산업 전반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업체간 상호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재계 서열 7, 8위 신경전... 한화오션=한화 미래 성장 동력
올해 3월 한화오션이 HD현대중공업을 상대로 경찰 고발이라는 '초강수'를 두자 재계에서는 "너무 나갔다"와 "그럴 수 있다"는 반응이 엇갈렸다. 오너 2, 3세에 해당하는 정기선(42) HD현대 부회장과 김동관(41) 한화그룹 부회장은 재계에서 '절친'으로 알려져 있다. 두 경영자는 나이도 비슷하고 서로 결혼식에 초대할 정도로 가까운 관계를 맺어왔다. 이런 배경을 갖고 있는데 굳이 '고발'이라는 강수를 둘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편에서는 한화그룹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오너 2, 3세 경영자들간의 개인적 친분을 떠나 한화그룹과 HD현대중공업은 재계 서열을 두고 경쟁 관계에 있다. 올해 초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한기정)의 공시대상기업집단(일명 대기업집단)에서 한화그룹은 7위로 HD현대중공업(8위)이 바로 아래에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해 9위에서 8위로 한단계 점프했다. 한화그룹 입장에서는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지난해 5월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인수를 마무리한 것은 적지 않은 의미를 갖고 있다. 한화그룹은 10년 넘게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시도했으나 여러 이유로 지연됐다. 한화그룹은 2000년대 초반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나섰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포기했다. 이후 대우조선해양은 산업은행의 관리체제로 들어갔고 한화 그룹의 지속적으로 인수 의사를 타진하다 지난해 5월 최종 인수됐다.
한화그룹이 그간 집요하게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나선 이유가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한화그룹의 방산 수직 계열화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방산 이외의 사업부문에도 시너지가 기대된다.
한화그룹의 주력 사업은 방산, 신성장 및 케미칼, 금융의 3가지로 나뉜다. 방산 계열사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디펜스, 한화테크윈, 한화정밀기계 등이 있다. 신성장 및 케미칼 계열사로는 한화솔루션, 한화큐셀 등이 있다. 금융 계열사로는 한화생명, 한화손해보험, 한화투자증권, 캐롯손해보험, 한화저축은행 등이 있다.
우선 한화오션 인수로 기존의 지상 방산과 우주의 방산 사업이 해양사업까지 확장돼 한화그룹은 육·해·공 통합 방산기업집단으로 업그레이드된다. 그간 한화그룹은 한화시스템(육군), 한화에어로스페이스(공군)의 강점 보유하고 있었지만 해군 포트폴리오는 없었는데, 한화오션이 이를 채워주게 됐다. 한화의 해양 첨단 시스템과 레이더 기술, 대우조선해양의 잠수함 및 전투함 건조 기술력이 합쳐지면 신무기 사업에서도 시너지가 기대된다.
자율운항 선박, 친환경 에너지 분야에서도 시너지가 기대되고 있다. 한화의 친환경 에너지저장장치(ESS. Energy Storage System) 기술을 적용해 친환경 선박을 개발할 수도 있고, LNG와 수소 등 한화의 에너지 분야와 대우조선해양의 운송 기술 사업을 결합하면 그린 에너지 밸류체인을 구축할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한화측은 한화오션을 '그린 에너지 밸류체인 메이저', ‘국가대표 방산 기업’, ‘해양 솔루션 리더’ 등의 용어로 소개하고 있다. 이런 중요성을 가진 한화오션이 HD현대중공업과 이해관계로 맞부딛쳤으니 그냥 넘어가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HD현대중공업, "늦었지만 다행, KDDX 사업 신속 진행 희망"
그렇지만 이번 이슈가 장기화하면서 두 그룹이 부담감을 느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의 물밑 교감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고발 취하를 계기로 한화오션은 실적 개선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됐다. 한화오션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진행하는 방산업체 지정 절차에 따라 실사단 평가와 현장실사에 성실히 임할 예정"이라며 "방위사업청 등 정부의 투명하고 공정한 평가 결과를 수용하고 상호 협력의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고소 취하에 대해 HD현대중공업측은 "HD현대중공업이 공정하고 적법한 절차를 거쳐 KDDX 기본설계 사업자로 선정되었다는 것은 이미 수차례 확인된 사실"이라며 "한화오션이 고발을 취소한데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KDDX 사업이 많이 지연된 만큼 한화오션의 방산업체 지정 신청도 철회되어 KDDX 사업이 법과 원칙에 따라 신속히 진행되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