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회장 최윤범)이 인수한 미국 전자폐기물 재활용 스타트업 이그니오 홀딩스(Igneo holdings. 이하 '이그니오') 매입가격 5800억원이 적정했느냐가 다시 한번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PSR 50배이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비싸게 매입한 것"
최근 어느 매체 보도에 따르면 이그니오의 2023년 상반기(1~6월) 매출액은 2727만달러(약 374억원)이고 매출액 100%가 비철금속 제련(자원순환)에서 발생했다. 이그니오의 최근 실적과 매출액 성격이 구체적으로 보도된 것이다.
이그니오는 2021년 2월 설립됐고 이듬해 7, 11월 두 차례에 걸쳐 고려아연이 총 5800억원에 매입했다. 전자폐기물 재활용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인수 당시 고려아연 발표에 따르면 이그니오는 2021년 매출액 637억원을 기록했다. 그렇지만 그해 11월 고려아연은 이그니오의 2021년 4분기(10~12월) 매출액을 29억원으로 다시 발표했다. 편의상 연간으로 환산하면 116억원이다. 업계에서는 후자(116억원)가 합리적이라고 보고 있다. 스타트업이 설립 첫해 매출액 637억원을 달성하기에는 미국이건 한국이건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매출액 116억원을 기준으로 하면 고려아연은 이그니오를 PSR(Price Sales Ratio) 50배에 매입했다는 의미가 된다. PSR은 기업의 매매 가격(거래 가격)을 매출액으로 나눈 값으로 낮을 수록 싸게 매입했다는 의미이다. 반대의 경우도 성립된다. 수치가 높을 수록 비싸게 매입한 것이다.
PSR은 미국 펀드매니저 켄 피셔(Kenneth Fisher) 피셔인베스트먼트 회장이 처음 창안했다. 그의 부친은 '워렌 버핏의 스승'으로 불리는 필립 피셔(1907~2004)이다. IB업계의 한 인사는 "PSR 50배에 기업을 매입했다면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싸게 매입한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이는 켄 피셔의 PSR에 관한 원칙을 보면 알 수 있다. 켄 피셔는 "PSR 1.5배가 넘는 종목은 피하고 3배가 넘는 종목은 절대 매수하지 말라. 고평가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PSR 50배라면 얼마나 비싸게 매입한 것인지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그니오의 2023년 상반기 매출액(374억원)을 기준으로 하면 PSR 7.75배가 나온다. 이것도 PSR 3배를 훌쩍 넘는다. 여기에다 고려아연의 인수 당시 이그니오는 자본잠식 상태였다(마이너스 19억원).
◆창업자는 돌연사퇴, 모기업은 해마다 수백억 적자
이그니오의 실적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경영 불안정이 커지고 있다. 이그니오는 지난해 3월 창업자 겸 CEO 대니쉬 미르(Danish Mir)가 돌연 사퇴했고 현재 고려아연 호주 자회사 출신 인물이 맡고 있다.
이그니오 경영 실적은 미국 전자공시(EDGAR)에 나오지 않는다. 다만 이그니오 모기업이자 고려아연 미국 법인 페달포인트(Pedalpoint) 실적을 보면 이그니오는 여전히 적자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페달포인트는 2023년 매출액 809억원, 당기순손실 530억원을 기록했다. 앞서 2022년에는 매출액 329억원, 당기순손실 282억원을 기록했다. 고려아연은 자본잠식에다 손실을 내고 있는 스타트업을 5800억원에 매입한 셈이다.
업계에서는 고려아연이 이그니오를 인수할 당시의 평가보고서, 실사(due diligence) 보고서를 공개해 투명 경영을 보여줘야 한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