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포스코(회장 최정우)의 지주사 전환에 찬성하면서 포스코를 사업회사와 지주사로 물적분할하는 방안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민연금이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국민연금의 행보에 노동계와 경제계의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
◆국민연금 수탁위, "포스코 지주사 전환 찬성"
국민연금공단은 24일 포스코그룹의 지주사 전환을 바탕으로 한 지배구조 개선안에 대해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자문사들의 ‘찬성’ 권고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찬성 입장을 정하면서 28일 열리는 임시 주주총회의 포스코 지주사 전환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민연금은 이날 서울 충정로사옥에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 회의를 열고 포스코 임시주총 안건에 대한 의결관행사 방안’을 논의했다. 포스코가 물적분할을 통해 지주사인 포스코홀딩스(존속법인)와 철강사업회사인 포스코(신설법인)로 나뉜다는 내용이다. 9명의 수탁위원 가운데 6명이 찬성하여 이와 같이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수탁위는 의결 기능이 없지만 이 안을 최고 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가 이를 받아들일 계획이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9.75%의 주식을 보유하며 포스코 최대주주에 올라 있다. 2대주주는 지분 7.3%를 보유한 씨티은행이며, 우리사주조합도 1.41%를 갖고 있다. 포스코 안이 주총 통과를 위해서는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 출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동의를 얻어야 한다.
운용업계의 한 관계자는 “외국인 투자자를 포함한 개인투자자들은 국민연금의 결정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며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의 결정이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이번 결정에 따라 포스코 소액주주들의 비판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17일 금융정보분석업체인 에프앤가이드가 지난 14일까지 국민연금의 가장 최근 공시를 기준으로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5% 이상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코스피·코스닥 상장사는 총 261개사다. 이중 국민연금이 최대주주인 상장사는 9곳이고, 10% 이상 지분을 가진 상장사도 48곳에 달한다.
◆노동계, ”국민연금, 주주권 적극 행사해야”
국민연금의 이번 결정에 노동계는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참여연대, 전국건설산업연맹, 공공운수노조 국민연금지부 등은 2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 충정로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적은 지분을 가진 대주주가 회사 경영을 자의적으로 좌지우지하는 현재의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이사회가 책임있는 경영의 주체로서 나서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특히 2018년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된 만큼 “국민연금이 국민 노후 자금 ‘집사’로서 역할을 해줄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최근 산업재해로 물의를 빚은 HDC현대산업개발(현산) 등 기업에 대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촉구했다. 국민연금이 현산에 산업안전 및 건설품질 관리 전문가 공익이사 선임 등의 주주제안을 하고, 카카오에 스톡옵션 사용기한 제한을 위한 정관변경 및 문제 임원에 대한 해임안 제출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이마트와 관련해서도 대해서도 '오너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했다.
◆재계, “국민연금의 무분별한 주주권 행사 우려”
그러나 재계 입장은 다르다.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을 보유해 지분율을 높이는 것도 부담인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선을 넘는 행동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국민연금의 주주대표 소송은 기업들의 원성을 자아냈다. 또, 국민연금이 최근들어 ESG를 강조하면서 무분별한 주주권을 행사하는 모습에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지난해 1월 29일 국민연금 기금위에 이른바 ‘ESG(환경·사회·지배구조)‘문제 기업’에 대해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하는 주주제안 안건이 기습 상정돼 논란이 됐다. 당시 기금위는 이 안건을 의결하지 않고 수책위가 발의 취지와 책임투자 현황과 절차 등을 검토한 이후 다음 기금위에서 관련 내용을 보고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지난 20일 한국상장회사협의회(상장협)와 한국경영자총엽회(경총)가 공동개최한 ‘국민연금 대표소송 관련 토론회’에서 상장협은 “국민연금의 자산규모는 약 917조원으로 세계 3대 연기금에 속할 정도며 이 중 17.9%를 국내 상장회사에 투자하고 있고,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회사는 272개사에 이른다”며 “자국 회사 지분을 거의 보유하지 않거나 개별회사에 대해 보유 비중 제한을 두고 있는 해외 연기금과는 대조적”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 대표소송 결정 주체를 기금운용본부에서 수탁위로 이관하는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 활동 지침`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경영계는 주주대표소송의 결정권이 수탁위로 일원화될 경우 소송이 남발될 우려가 있고, 특히 기업에 대한 정치·사회적 압박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상장협과 경총 등 7개 경제단체는 위와 같은 개정안을 두고 “국민연금이 수탁자 의무 이행을 명분으로 ‘기업 벌주기식’ 주주활동에 몰두하는 행태에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며 “대표소송은 결과와 상관없이 기업의 신뢰도와 평판에 타격을 줄 것이며 이는 곧 기금 수익률 하락으로 이어져 결국 국민과 주주의 불이익을 초래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여론조사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국민연금 가입자 800명을 대상으로 국민연금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들은 국민연금 기금이 ‘국민의 노후보장’(85.3%)을 위해 운용되야 하며,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는 이러한 노후보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47.8%)고 답했다. 또, 국민연금이 정부의 기업 통제수단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에 67.6%가 동의했으며, 국민연금의 최우선 과제로 ‘기금 운용 수익률 제고를 위한 전문성 강화’(44.4%)를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