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을 40년간 이끌어온 김승연 회장은 1∙2차 오일쇼크, IMF(국제통화기금) 사태, 글로벌 금융위기 등 우리나라 경제를 한 순간에 흔들어놨던 굵직한 사건들 속에서 김 회장만의 ‘승부사’기질과 ‘결단력’을 바탕으로 ‘위기를 기회로’ 변화시켰다. 또, 2007년 태국 방콕에서 열린 해외사업진출 전략회의에서 “모든 것이 바뀌는 상황 속에서 그룹이 살아남기 위해선 ‘해외시장을 공략’해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취임 직후 한양화학∙한국다우케미칼 인수 결단
현암 김종희 회장 타계 후 어려운 시기에 경영권을 이어 받은 김승연 회장은 사업 다각화와 성장위주의 기업경영을 통해 그룹을 성장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1980년대초는 제2차 석유 파동이 밀어 닥쳐 석유화학 경기가 크게 위축됐었고, 일본의 석유화학사업은 이미 사양길에 들어섰다는 비관적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당시 75억원과 430억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던 한양화학과 한국다우케미칼 인수 검토를 지시했다.
당시 그룹 내 경영진들은 두 회사 인수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으나 김 회장은 석유화학의 장래가 어둡지 않으며, 머지않아 국제경기도 다시 회복될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인수를 독려했고, 취임 이듬해인 1982년 한양화학 인수를 마무리했다.
한양화학 인수 이후 석유화학 경기는 김 회장의 예측대로 빠르게 회복됐고, 인수 1년 만에 흑자경영으로 전환됐다. 이후 한화그룹은 경인에너지와 한양화학을 양 축으로 삼아 석유화학산업의 수직계열화를 이루었다. 현재도 한화솔루션 케미칼 부문은 한화그룹의 주력기업이자 대한민국 수출 효자 산업인 석유화학분야 선봉장이다.
◆IMF 외환위기를 기회로... 고용승계 원칙 지켜
한화그룹에게 1990년대 후반은 시련과 동시에 기회의 시기였다. 1997년 11월 발생한 외환위기로 국가부도 직전까지 내몰린 상황 속에서 가장 큰 위기를 맞은 것은 재계였다. 한화그룹 역시 위기 속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야만 했다.
IMF 관리체제를 40여일 앞둔 시점에서 한화그룹은 구조조정을 더욱 강도 높게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주력사업인 기계 및 에너지 부문을 매각하는 등 뼈아픈 구조조정을 단행, 각 사업분야의 매각을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했다. 특히, 1998년 2월 한화에너지의 부도 위기 당시 긴급 자금 지원을 위해 김 회장은 계열사 주식과 금융자산, 부동산 등 사재를 담보로 제공하고 경영권 포기각서까지 제출해야 했다.
혹독한 구조조정에 돌입한 지 1년 후, 한화그룹은 가장 모범적이고 선도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IMF 외환위기를 극복한 기업으로 주목 받았다. 김 회장은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이끈 모범기업인들을 격려하고자 청와대가 마련한 자리에 초청 받아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그 동안의 노고에 대한 격려를 받았다.
빠른 시간 내에 한화그룹이 구조조정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김 회장이 모든 구조조정을 3가지 원칙에 입각해 단행했기 때문이었다. 첫째 구조조정 회사의 구성원에 대한 고용승계와 신분보장을 약속했고, 둘째 한화와 인수기업과의 ‘윈윈전략'을 구사했으며, 셋째 대의를 위해 희생하고 양보한다는 원칙을 세웠기 때문이었다.
사업구조조정을 통한 핵심사업 중심의 새 사업구조 강화를 토대로 제1기 구조조정(1996년~1999년)을 성공적으로 마친 한화그룹은 2000년 도약기에 이르러 제2기 구조조정과 함께 2002년에는 대한생명을 인수함으로써 그룹의 규모와 구조를 한 단계 높였다. 2002년 대한생명을 인수하면서 매출은 19조 7,000억원, 자산규모는 37조원을 넘어섰다.
외환위기와 1, 2기 구조조정을 거치며 경쟁력을 회복한 한화그룹은 2008년 대우조선해양 인수 입찰에 참여해 6조 3,000억원의 금액을 제시하며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당시 세계경제를 다시 한 번 침체의 늪에 빠지게 만든 금융위기에 따른 자금조달 어려움과 조선업 업황 악화로 최종 계약을 포기했다. 엎친 데 덮쳐 인수 무산에 따른 이행보증금 3,150억원을 산업은행에 몰수 당했으나 9년여 동안의 법적 공방 끝에 1,951억원을 돌려 받았다.
한화그룹은 2008년 불어 닥친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중국시장을 중심으로 글로벌 수출전략을 추진하면서 길지 않은 기간에 금융위기를 극복했다. 2020년말 한화그룹은 83개의 계열사를 비롯해 469개의 해외 네트워크를 구축해 미 금융전문지 '포춘' 선정 ‘세계 글로벌 500대 기업’중 277위에 랭크됐으며, 자산총액 기준 국내 7위 대기업으로 자리매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