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매출액 4조원.
1000원짜리 물건을 파는 기업이 여기에 도달하려면 무려 40억개를 팔아야 한다. 2000원짜리 물건이라면 20억개를 팔아야 하고, 5000원짜리 물건으로 계산해도 8억개를 팔아야 한다.
그런데 이를 현실 비즈니스 세계에서 구현한 기업이 나왔다.
이름은 아성다이소(회장 박정부. 이하 '다이소').
이게 전부가 아니다. 1000원, 2000원 짜리 물건을 박리다매로 팔면서도 영업이익률은 두 자리수에 근접하고(9.35%) 현금흐름(cash flow)도 우량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매출 3조' 달성 1년만에 4조로 갈아치워… 테넌트 매장 늘려 사이즈↑
다이소가 지난해 매출액 3조9689억원을 기록했다. 4조원에 311억원 모자란다. 전년비 14.68% 증가했다. 영업이익 3711억원, 당기순이익 3094억원으로 전년비 각각 41.80%, 23.51% 증가했다.
아성다이소 매출액, 영업이익률 추이. 단위 억원, %. [자료=아성다이소 사업보고서]
지난해부터 티메프,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업계에서 기업회생 이슈가 연이어 나오고 있지만 다이소는 오히려 실적을 개선하고 있다. 2020년 코로나 여파로 온·오프라인 채널 격차가 커지며 오프라인 매장이 여전히 고전하고 있으나 다이소 매출액은 2조4216억원(2020)→2조6048억원(2021)→2조9457억원(2022)→3조4604억원(2023)→3조9689억원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연간 카드결제액도 꾸준히 늘고 있다. 3월 20일 데이터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의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1조3514억원(2021)→1조5561억원(2022)→1조8745억원(2023)→2조1354억원(2024)을 기록했다. 올해 1, 2월은 3395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7.96% 증가했다.
◆'좋은 물건 싸게 판다' 충실... 전국 매장 1500개 넘어
다이소의 성공 비결은 '좋은 제품을 싸게 판다'로 요약된다.
다이소는 모든 제품의 가격을 5000원 이하의 균일가에 판매하고 있어 고물가가 이어지는 지금 많은 소비자들이 애용하고 있다. 생활용품, 뷰티, 패션 등 다양한 품목을 선보이며 매출을 늘려 갔다.
뷰티 부문도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2021년 처음 진출해 2022년 4월 네이처리퍼블릭과 협업한 다이소 전용 브랜드 ‘식물원’을 론칭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지난해 기준 60여개 브랜드가 입점했고 매출 신장률은 144%다. 패션 부문도 맨투맨, 후드티, 패딩조끼, 플리스 등 '이지웨어'를 판매하며 지난해 10~11월 매출 성장률 557%를 기록했다.
외형 성장을 위해 매장 수도 늘린다. 특히 대형 유통사 점포에 입점하는 ‘테넌트(임대형) 매장’을 확대한다. 다이소는 물건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많이 파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물품을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객의 체류 시간을 늘리는 것도 핵심 요인이다. 대형 유통사는 주차장이 있고 매장이 넓어 고객의 체류 시간이 긴 편이라 최적의 장소다.
유통업계에서도 다이소의 시너지를 알아보고 입점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다양한 품목과 저렴하고 일정한 가격 덕에 고객 유입 효과가 크고 고정 월세를 선호해 경기의 영향을 덜 받아 건물 주에게 매력적인 브랜드다. 다이소 전체 매장 수는 1390개(2021)→1442개(2022)→ 1519개(2023)로 증가했고 이 중 테넌트 매장은 258개(2021)→266개(2022)→290개(2023)이다.
◆’다이소몰’ 약점에서 강점으로… 지난해 월간 사용자 수 역대 최대
다이소의 개선점으로 온라인 부문도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다이소몰 PC 메인화면. [사진=다이소]
다이소는 지난 14일 다이소몰에 ‘휴일도착 서비스’를 론칭했다. 그동안 토요일에 주문한 상품은 월요일에 받을 수 있었으나 이제 일요일에도 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추가 배송비도 없다. 휴일도착 서비스는 서울 25개구, 고양, 하남, 김포 등 수도권 지역에서 운영 중이고 향후 권역을 확대할 예정이다. 다이소는 2023년 12월 전용 온라인몰인 ‘샵다이소’와 ‘다이소몰’을 ‘다이소몰’로 통합 개편하며 온라인 시장을 본격화했다. 하지만 당시까지는 익일배송이 쿠팡, 컬리 등 타 배송업계와 차별점이 없고 최소주문 금액이 높다는 점이 지적됐다.
지난달부터 강남, 서초, 송파구에서 ‘오늘배송 서비스’도 시범 운영하고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전까지 주문하면 4시간 내에 배송이 완료되고 오후 5시 이후 주문하면 익일 오후 3시까지 도착한다. 주말과 공휴일에도 운영하고 오토바이로 배송이 이뤄지기에 1회 주문량은 10kg 이하로 가능하다. 배송비는 5500원이다.
다이소몰 월간활성이용자수. [자료=더밸류뉴스]
꾸준한 개선 덕에 다이소몰 월간 사용자 수는 지난해 12월 335만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다이소몰 통합이 이뤄졌던 2023년 12월 대비 81% 증가했다. 이는 다이소 뷰티 카테고리의 인기와 고물가로 인한 가성비에 대한 선호가 합쳐지며 나타난 결과로 보인다. 다이소에는 LG생활건강, 아모레퍼시픽, 애경산업 등 유명 브랜드부터 손앤박, 닥터지, 입큰 등 중소기업 제품까지 다양하게 입점해 있다. 브랜드 상관없이 모든 제품을 5000원 이하로 판매하며 저가 뷰티 제품에 대한 수요를 잡았다.
◆다이소 건기식 판매 도전… 약사들과 합의점 찾을 수 있을까
다이소는 새로운 판매 물품으로 '건기식'(건강기능식품)에 도전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약사들과의 이해 관계가 새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다.
다이소는 지난달 전국 200여개 매장에 종근당건강, 대웅제약, 일양약품의 제품 37종을 3000원과 5000원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시중 약국에서 2만~3만원대에 형성돼 있는 가격의 10~25% 정도다. 그렇다 보니 약사들 사이에서 다이소 때문에 기존 약국의 매출이 감소할 수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또 다이소 제품과 약국 제품의 성분이 약간 다른데 이를 똑같은 제품으로 오인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결국 일양약품은 대한약사회의 압박에 못 이겨 입점 5일 만에 공급을 철수했다. 종근당건강과 대웅제약도 철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소비자들은 저렴한 가격에 건기식을 구입할 수 있게 됐는데 약사들의 반발로 무산됐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지난 7일 ‘건강기능식품 시장에서의 공정거래, 소비자 선택권에 악영향을 주는 약사회 주장 규탄한다’는 성명서를 통해 건기식은 의약품이 아니기에 소비자가 자유롭게 구매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건기식은 이미 약국 외에 많은 곳에서 팔리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의 판매량은 70%에 달하고 대형마트와 다단계가 약국보다 판매량이 더 높다. 다이소도 유통망 확대의 일환일 뿐이다. 그리고 다이소 건기식은 약국에서 판매하는 상품과 차별점을 뒀다. 보통 약국이나 온라인몰에서는 3~6개월치의 대용량 상품을 판매하지만 다이소 건기식은 대부분 30정으로 한 달 분량이다. 성분도 약간 다르다. 일부 부원료를 생략하거나 함량을 조정하고 패키징 비용을 줄여 가격을 낮췄다. 학생, 사회 초년생, 1인 가구를 대상으로 진입 장벽을 낮춘 것이다. 이번 사태가 공정하고 자율적인 유통 환경을 마련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지에 업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정부(왼쪽 네번째) 아성다이소 회장이 지난 2023년 5월 15일 서울대병원에서 김영태(왼쪽 다섯번째) 서울대병원장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아성다이소]
다이소의 성공 배경에는 박정부 회장의 경영 원칙이 있다. 박정부 회장은 다이소 창업 당시부터 '가격을 먼저 정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제품 원가에 일정한 이윤을 붙여 소비자 가격을 정하는 게 일반적 방식이지만 다이소는 먼저 소비자 가격을 책정하고 이 가격을 구현하기 위해 제반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이윤을 낸다. 이 때문에 영업이익률은 1~2% 언저리지만 물류 자동화와 매장 효율화 등을 통해 수익성을 개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