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환경과 소비자 니즈의 급변화로 인한 국내 유통 시장의 지각 변동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신세계, 롯데, 현대백화점 등 주요 유통 기업들의 올 1분기 오프라인 매출은 전년동기대비 0.2% 감소했다. 코로나19 여파가 가시고 일상이 회복되고 있음에도 이들 유통공룡들의 매출은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신세계의 1분기 백화점 매출은 전년동기대비 7.9% 성장했고, 이마트는 1% 증가에 머물렀다. 롯데쇼핑은 1분기 매출이 전년동기대비 백화점 1.4% 증가, 마트 0.8% 감소했다. 현대백화점 역시 비슷한 흐름이다. 백화점 1분기 매출 3.6% 증가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던 것과 큰 대조를 이룬다.
반면 온라인에서는 중국발 이커머스 소위 C커머스 업체들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중국발 직구 거래액은 전년동기대비 2.2배 증가한 9천억 원을 기록했다. 미국의 5배, 일본의 8.5배에 달하는 규모다. 특히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C커머스 업체들의 약진이 가파르다. 이들은 초저가 상품과 공격적 마케팅을 앞세워 불과 1~2년 만에 국내 시장에서 단단히 자리 잡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통 기업들의 미래를 우려하는 시선이 많다. 실제 증권가에서는 올해 이마트와 롯데쇼핑, 신세계의 실적이 전년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C커머스의 질주 속에 이들의 입지가 급속히 좁아지고 있는 형국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양극화 속 차별화 전략 모색
최근 유통업계 매출 동향을 살펴보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2024년 4월 기준 전년동월대비 오프라인 매출은 0.2% 감소한 반면, 온라인은 22.2% 증가하며 성장세를 이어갔다. 오프라인 중에서도 대형마트와 백화점은 각각 6.7%, 2.0% 감소한 반면, 편의점과 SSM은 5.9%, 3.2% 증가하는 등 업태별로 명암이 엇갈렸다. 이는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이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편리함과 가성비를 추구하는 트렌드에 맞춰 온라인과 근거리 쇼핑 채널이 부상하고 있다.
한편 온라인에서는 의류 및 패션잡화가 부진했지만, 식품, 생활용품, 서비스/기타 부문에서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는 일상적인 소비재 구매가 온라인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오프라인 유통 기업들은 차별화된 쇼핑 경험과 독특한 상품 구색으로 고객을 사로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온라인 시장에서는 개인화된 큐레이션과 맞춤형 서비스로 고객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 관건이다. 유통 채널별로 변화하는 소비자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생존의 열쇠가 될 것이다.
그간 유통 대기업들은 내실을 다지기보다 점포 수 늘리기에만 골몰해 왔다. 온라인 사업을 늦게 시작한 탓에 아직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상품과 서비스 경쟁력 제고를 위한 노력도 미흡했다는 지적이다. 이대로라면 이들 유통 공룡이 민첩한 C커머스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알리, 테무 등 C커머스의 한국 시장 공략 본격화
C커머스 업체들은 공격적인 물량 공세로 국내 유통 업계에 위협이 되고 있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는 플랫폼 내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중국산 초저가 상품과, 게임처럼 꾸며진 이벤트와 사은품 마케팅으로 무장하고 경쟁사를 압박하고 있다.
저가에 집중한 전략은 가격에 민감한 젊은 층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마켓 인텔리전스 플랫폼 센서타워에 따르면, 2024년 1분기 중국발 직구 규모는 전년동기대비 121% 급증했고 테무의 올 1분기 MAU(월간 활성 사용자)는 489만 명으로, 쿠팡과 11번가에 이어 국내 앱 시장 3위를 차지했다. 4년 전 한국 시장에 진출한 알리익스프레스 역시 427만 명으로 4위에 올랐다. 지난 5월 테무와 알리익스프레스의 MAU가 전월대비 3% 줄었다고는 하나 종합몰 앱 순위에서는 테무가 4위, 알리가 쿠팡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오프라인에서 한발 물러선 MZ세대가 몰려든 결과다.
물론 C커머스의 약진을 예의주시해야 할 부분도 있다. 대표적으로 중국산 제품의 품질과 안전성 문제를 꼽을 수 있다. 때로는 모조품이나 불량품이 섞여 들어오는 경우도 있어 소비자 불만이 적지 않다. 당국의 규제 강화도 뒤따르고 있다. 관세청은 최근 해외 직구 시 부과되는 자가사용 면세 한도를 기존 150달러에서 100달러로 낮췄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가 C커머스의 약진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란 평이다. 가격 경쟁력을 최우선하는 C커머스 특성상, 품질 문제나 규제 변화가 성장에 큰 걸림돌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특히 일부 플랫폼의 경우 국내 물류센터 건립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배송 시간이 크게 단축될 경우 이용자 증가 속도는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C커머스에 대한 높은 의존도가 심화하면서, 자칫 전통 유통 기업들의 설 자리가 더욱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최근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42%가 온라인 쇼핑 시 C커머스 앱을 가장 먼저 이용한다고 답했다. C커머스의 영향력이 일상 속 깊숙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유통 기업의 생존 전략은 '통합과 집중'...경영 효율 통해 경쟁력 제고나선다
이 같은 위기 속에서 국내 유통사들은 통합과 집중을 통해 경쟁력 회복에 나서고 있다.
지난 5일일 CJ와 신세계는 사업제휴를 맺고 계열사 간 협업을 통해 경영 효율을 높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CJ대한통운 물류에 힘입어 SSG닷컴과 G마켓 경쟁력을 제고하고 멤버십 혜택 공유 등 축적된 노하우를 활용해 C커머스 반격에 나설 방침이다.
이마트는 지난해 9월 이른 조직개편과 정기 임원인사를 통해 에브리데이, 이마트24 등 오프라인 유통 사업군을 하나의 대표 체제로 전환했다. 이는 운영의 폭을 넓혀 시너지를 유도하고 수익을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롯데쇼핑도 하이마트, 롭스 등 계열사와의 통합 운영을 통해 비효율을 제거하고 원가율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신세계와 현대백화점은 복합쇼핑몰을 중심으로 고객 체험을 강화하는 한편, 빅데이터와 멤버십을 활용해 맞춤형 혜택을 제공하는 등 고객 잡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유통사들은 단기 실적에 연연하기보다 본업에 충실하고, 고객 관점에서 차별화된 가치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바야흐로 유통의 본질로 돌아가 경쟁력을 높여야 할 때다.
급변하는 유통 지형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네트워크 효과의 중심에 서야 한다. 고객을 한데 모으고 이들에게 의미 있는 체험을 제공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상품 구색을 늘리는 것에서 나아가 큐레이션을 통해 개개인에게 꼭 맞는 가치를 선별해 제시하고, 다양한 접점에서 일관되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유통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하는 시점, 온-오프라인과 모바일을 넘나드는 입체적 전략이 요구된다. 테크 기반의 개인화는 물론, 로컬 상권에 기반한 밀착 서비스, 커뮤니티 기반의 체험 마케팅 등 다각도로 고객 접점을 강화해야 한다. 차별화된 고객 체험을 기반으로 독자적 생태계를 구축하는 유통사만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혜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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