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연말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대한항공(003490)과 아시아나항공(020560)의 인수합병(M&A)이 첫 분기점에 섰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한진그룹과 3자연합의 경영권 분쟁이 이제는 법정 다툼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법원의 심의 진행 이후 빠르면 이주 안에 결론이 날 전망이다.
25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50부(이승련 수석부장)는 행동주의 사모펀드(PEF) KCGI가 한진칼 (180640)을 상대로 낸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심문을 진행했다. 다음달 2일 KDB산업은행이 한진칼에 유상증자 5000억원을 납입하기로 돼 있어 법원은 늦어도 1일까지는 가처분 인용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쟁점은 재판부가 한진칼의 신주 발행 목적을 어떻게 보느냐다. 앞서 한진칼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신주를 발행해 산은에 넘기고 5000억원을 지원받기로 했다. 이와 함께 교환사채(EB) 3000억원 발행 등 총 8000억원을 산은으로부터 지원 받아 대항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상법 418조 2항에는 주주 외의 자에게 신주 배정은 ‘신기술 도입, 재무구조 개선 등 회사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명시돼 있다. 한진칼 정관에도 ‘긴급한 자금 조달이 필요할 때 발행주식이 30%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신주를 발행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발행 마무리 시 산은 주요 주주 등극…KCGI "신주발행은 위법”
최종적으로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마무리되면 산은은 한진칼 주식 10.66%를 보유하며 주요 주주가 된다. 문제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KCGI를 비롯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반도건설 등으로 구성된 3자연합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3자연합은 한진칼의 최대 주주다. 경영권 분쟁 이후 주식을 꾸준히 매입해 현재 46.71%를 보유하고 있어 조 회장 측(41.3%) 보다 5.41% 많다. 향후 산은이 한진칼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면 신주 발행(706만2146주)으로 기존 주주들의 지분율에 변동이 생긴다. 산은이 조 회장의 우군으로 분류돼 조 회장 측 지분은 47%로 급상승하는 반면 3자연합 지분율은 40%대로 떨어진다.
이에 KCGI가 “기존 주주들에게 우선 신주를 인수할 의사를 물어야 한다”며 18일 법원에 신주 발행 금지 가처분을 신청한 것이다.
◆한진 “항공업계 재편 위해 꼭 필요” VS KCGI “항공업 재편, 아시아나 구제는 다른 문제”
가처분 인용 심문 당일에도 양측은 신경전을 이어갔다. 한진그룹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타격을 받은 항공업계 재편 등을 위해서는 필요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한진그룹은 입장문을 통해 “가처분이 인용되면,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무산된다”며 “KCGI는 산은의 보통주 보유 이유를 외면하는 투기세력”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산은은 국내항공산업 생존을 위해 한진칼에 투자하는 것”이라며 “이런 통합 과정이 성실히 진행되는지를 감시·견제하기 위해 의결권을 가진 보통주를 보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KCGI 역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인수 소식(13일) 이후 거의 매일에 걸쳐 입장문을 발표하며 비판에 나섰다. 특히 한진칼의 경영권 분쟁과 항공업 재편은 분리 가능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KCGI는 “한진그룹 경영과 항공업 재편, 아시아나항공 구제는 각각 다른 문제”라며 “국가 기간산업과 일자리를 인질로 사법부와 국민을 협박해서는 안된다”고 비판했다.
산은과 조 회장이 진심으로 항공업 재편을 원한다면 가처분 인용시에도 대출, 의결권 없는 우선주 발행, 자산매각, KCGI 주주연합 등 기존 주주에게도 참여기회를 주는 주주배정 방식의 유상증자(실권주 일반공모) 등 방법으로 아시아나항공 인수 진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진그룹이 가능한 대안들을 핑계로 무시하고 있다고 KCGI는 설명했다.
이에 법원의 결과에 집중되고 있다. 향후 법원에서 인용이 결정되면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불발될 가능성이 커지고 반대로 기각이 결정되면 인수에는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기업심사도 또 다른 변수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합병을 위해서 넘어야 할 산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국내외 기업결합심사 승인도 풀어야 할 숙제다. 양측이 국제 노선을 보유하고 있어 합병을 위해서는 일단 국내 공정거래위원회와 함께 해외에서도 기업결합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다만 국내의 경우 이번 결합이 정부 주도로 이뤄지고 있어 공정위 결합 심사는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편이다.
문제는 해외인데 미국, 중국, 일본은 기업 결합을 권장하고 있지만 유럽연합(EU)의 경우 해외국가의 기업결합심사는 보수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특히 최근 불허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기업의 지위가 확고해지면 항공사의 가격 결정권이 커질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인수가 성공할 경우 시너지 효과는 클 전망이다. 지난해 대한항공의 매출액(12조6834억원)과 아시아나항공의 매출액(6조9658억원)을 더하면 19조6492억원에 달한다. 보유 항공기 수도 259대(대한항공 173대, 아시아나항공 86대)로 증가해 에어프랑스(225대) 등 경쟁사보다 많아져 경쟁력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향후 중복 항공 노선 등을 단일화해 비용을 줄이는 등 효과도 낼 수 있다.
강성진 KB증권 연구원은 “양사가 여객 부문 인력과 조직을 최대한 보존한 채 코로나19의 충격이 사라질 때까지 버틸 수 있다면 정부입장에서는 고용 충격을 줄일 수 있고 양사는 여객 시장 회복 시 수혜를 충분히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