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를 이끌었던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8일 영면에 들었다. 글로벌 삼성 시대를 연 이 회장의 시대가 저물고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사장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평가다. 이 부회장은 아직 '회장' 직함은 달지 않았으나 이 회장 별세로 머지 않아 회장 자리에 오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28일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영결식이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서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이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008770)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유족들과 전·현직 삼성 사장단 등이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로 진행됐다.
영결식에는 이 회장의 동생인 이명희 신세계(004170) 회장과 조카인 정용진 부회장, 이 부회장과 사촌 지간이자 이 회장의 조카인 이재현 CJ그룹 회장 등 재계 인사들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등 고인 및 유족들과 인연이 깊은 일부 재계 총수들도 함께 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결식은 이 회장의 장례가 가족장으로 간소하게 이뤄지는 만큼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영결식을 마치고 이 부회장 등 유족들과 삼성 사장단 등이 나눠 탄 차량들이 차례대로 장례식장으로 이동했다. 운구 행렬은 이 회장이 거주하던 서울 용산구 한남동 자택과 이태원동의 집무실인 승지원(承志園), 리움미술관 등을 거쳐 반도체 공장이 있는 화성캠퍼스를 들렸다. 이후 장지인 경기 수원시 가족 선영에서 영면에 들었다.
반도체에 대한 애착이 컸던 이 회장에게 화성사업장은 의미가 남다른 곳이다. 이 사업장은 1983년 이병철 선대회장과 이 회장이 직접 사업장 부지를 확보하고 착공, 준공식까지 직접 챙겼다. 이 회장은 1984년 기흥 삼성반도체통신 VLSI 공장 준공식을 시작으로 2011년 화성 반도체 16라인 기공식 등 다수의 공식 행사에 참석했다. 현재는 삼성 반도체의 최첨단 공정인 극자외선(EUV) 장비가 들어간 V1 라인이 있다.
앞서 이 회장은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후 최근까지 삼성서울병원에서 투병 생활을 하다 25일 향년 78세로 별세했다. 1942년 대구 출생인 이 회장은 1966년 동양방송에 입사한 후 1979년에 삼성그룹 부회장에 올랐다. 선친인 호암(湖巖) 이병철 삼성 창업주 별세 이후 1987년 삼성그룹 2대 회장으로 부임해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이 회장은 회장 취임 이래 삼성을 '한국의 삼성'에서 '세계의 삼성'으로 변모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취임 당시 10조원이었던 매출액이 지난 2018년 387조원으로 약 39배 늘었으며 이익은 2000억원에서 72조원으로 359배, 주식의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396배나 증가했다.
이 회장의 별세 소식 이후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고자 하는 각계 각층 인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장례 첫 날인 25일에는 이재현 CJ회장, 정몽규 HDC(012630) 회장 등이 장례식장을 방문했다.
26일에는 삼성전자 사장단이 장례식장을 찾았다. 김기남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장, 고동진 IM(IT∙모바일)부문장, 김현석 CE(소비자가전)부문장 등 삼성전자 현직 대표 3인 외 권오현 전 회장,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육현표 전 에스원 사장 등도 장례식장에서 조문했다.
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등 재계 인사들도 빈소를 찾았다. 전일에는 구광모 LG그룹 회장, 구자열 LS그룹 회장,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등이 고인을 조문했다.
장례 기간 중 정계 인사들도 빈소를 찾았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 김홍업 전 국회의원,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이 장례식장을 방문했다.
이날 발인을 끝으로 이 회장의 4일 장례 일정이 마무리되며 이제 ‘이재용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이 부회장은 2014년 이 회장이 쓰러진 이후부터 지금까지 실질적으로 삼성을 이끌어 온 상황이기에 당장 그룹 경영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 부회장은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집단 동일인으로 지정되며 삼성의 공식적인 총수가 됐다.
다만 향후 이 부회장 중심의 ‘뉴 삼성’으로의 변화는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 부회장의 체제 아래 삼성은 이미 방산, 화학 등 비(非)주력 사업을 매각하고 시스템반도체, 5G, 바이오 등 신사업에 집중해왔다. 이 같은 변화에 힘이 더 실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최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미∙중 분쟁 등으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 이 부회장이 넘어야 할 산은 적지 않다. 먼저 이 회장의 별세로 약 10조원의 상속세를 내야 한다. 업계에서는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배당을 확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코앞으로 다가온 이 부회장의 홀로서기에서 삼성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