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스틴베스트라는 의결권 자문사는 21일 “물적분할 후 기업공개 방식은 지배 주주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결과를 초래해 소액 주주의 가치를 훼손할 위험이 상당하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LG화학은 이를 소수 의견으로 봤지만, 국민연금까지 반대 입장을 내놓음에 따라 주총에 돌발 변수가 생긴 셈이 됐다. 경제계에선 이른바 ‘동학개미’로 불리는 개인 투자자 사이에서 나오는 물적 분할 반대 여론을 국민연금이 의식한 게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동학개미들의 핵심 반대 사유는 “배터리 사업을 보고 LG화학에 투자했는데 배터리 사업부가 분할되면 신설 법인의 주식을 보유할 수 없다”는 것이다.
LG화학은 이런 불만을 달래기 위해 “향후 3년간 주당 최소 1만원을 배당하겠다”는 계획(지난 14일)도 내놨었다. 하나의 기업을 두 개 이상으로 쪼갤 때 주식을 어떻게 나누느냐에 따라 물적분할과 인적분할로 나뉜다. 물적분할은 분할로 생겨나는 기업 주식을 모회사가 100% 보유해 자회사로 두는 방식이다.
반면 인적분할은 모 회사와 주주 구성이 동일한 신설회사를 설립하는 방식이다. 개인투자자들은 '물적분할'을 하면 신설 회사의 주식을 직접 소유할 수 없어 LG화학 주가가 하락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30일 열리는 LG화학(051910) 주주총회에서 배터리 사업 분사 안건에 반대표를 던지기로 했다. 성장성이 높은 배터리 사업이 떨어져 나가면 향후 기업 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27일 회의를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 회의 참석 수탁위원 9명 중 과반이 반대 의견을 냈다. 위원회는 “분할 계획의 취지와 목적에는 공감하지만 지분 가치 희석 가능성 등 국민연금의 주주 가치 훼손 우려가 있는 것으로 봤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은 국민연금이 미래 수익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의 경우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겠다는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책임 원칙)의 일환이다. 국민연금은 2018년 주주권 행사의 투명성·독립성 제고를 위해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한 이후 개별 상장사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적극적으로 해 왔다.
이번 판단의 이유는 분사 방식이 물적분할이기 때문이다. 물적분할을 하면 배터리 사업을 하는 신설 법인 LG에너지솔루션이 LG화학의 100% 자회사가 된다. LG화학 입장에선 안정적인 경영이 가능하고 추후 지분 매각과 기업공개(IPO) 등 투자금을 유치하기에 수월하다. 반면 일부 개인투자자들은 “배터리 없는 LG화학은 방탄소년단(BTS) 없는 빅히트엔터테인먼트와 다름없다”고 반발했다. 지난달 16일 68만7000원이던 주가는 27일 현재 63만2000원으로 8% 하락한 상황이다.
LG화학은 국민연금 결정에 당혹스러워하면서도 분할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앞서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를 비롯해 글라스루이스, 한국기업지배연구원 등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 대부분이 찬성 권고를 한 상황이었다. LG화학 측은 “이번 분할은 배터리 사업을 세계 최고 에너지 솔루션 기업으로 육성해 주주 가치와 기업 가치를 높이려는 것으로 주주총회 때까지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10% 이상 지분을 보유한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지기로 하면서 주총장 표심이 중요해졌다. 기업 분할은 주주총회 특별결의 사항으로 참석 주주 3분의 2 이상, 총 발행 주식 3분의 1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이달 5일 LG화학의 주주명부 기준 ㈜LG가 30.6%, 국민연금이 10.4%를 보유하고 있다. 이 밖에 외국인이 약 40%, 국내 기관과 개인이 약 10%씩 보유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주총 통과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고 말했다.
LG화학은 30일 배터리사업부 물적분할을 결정짓는 주주총회를 연다. 안건이 주총을 통과하기 위해선 참석 주주 3분의 2 이상, 총 발행 주식 수의 3분의 1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이 때문에 LG화학이 배터리부문 분사 계획을 발표한 후부터 국민연금은 결정의 캐스팅보트로 주목받았다.
LG가 지분 30% 가량을 들고 있어 지분 찬성 요건은 무리없이 충족할 것으로 보이지만 주주가치 훼손을 우려하는 개인투자자들의 반발이 이어지는 상태여서 주주 3분의 2 이상 요건을 맞추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여타 기관투자자들의 표심에 미칠 영향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관련 업계에선 국민연금의 반대 결정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의결권 자문사들이 소액주주들이 우려하는 주주가치 훼손이 없을 것으로 보고 대부분 찬성을 권고했기 때문이다.
글래스루이스는 분할로 설립되는 LG에너지솔루션이 LG화학의 100% 자회사가 되는 만큼 경제적 영향이 없을 것으로 봤고, ISS도 분사 후 기업공개를 거치면 오히려 LG화학 주가가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며 찬성 의견을 냈다. 상장회사협의회 부설 독립기구인 지배구조자문위원회 역시 중장기 기업가치에 긍정적이라며 물적분할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문사 가운데선 서스틴베스트가 “인적분할은 소수 주주를 포함한 모든 주주가 분할 회사의 주식 처분권을 가질 수 있지만 물적분할 시에는 지배주주가 독점하게 된다”며 “분할 회사에 대한 경영 통제 수단 상실, 존속회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받아야 하는 배당도 모회사 디스카운트의 원인”이라며 반대를 권고한 바 있다.
한편, 그동안 LG화학의 소액주주들은 배터리 사업을 보고 LG화학에 투자했는데 배터리 사업부가 분할되면 신설 법인의 주식을 보유할 수 없게 된다며 크게 반발해왔다. ‘물적 분할을 취소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LG화학 주식을 가진 개인투자자로 밝힌 한 청원인은 지난 9월 ‘LG화학법을 만들어주세요’라는 청원글에서 “배터리가 빠진 화학회사에 투자하는 것이었으면 절대로 하지 않았다”면서 “저를 포함한 거의 대부분의 소액주주들은 세계1위 2차전지의 성장성과 최근 정부에서 대규모 펀드조성 및 예산편성중인 그린뉴딜관련주, 2차전지관련주, K뉴딜지수의 편입 등을 보고 투자하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원인은 “저는 세계1등 2차전지 회사인 LG화학의 기업가치를 보고 배터리의 성장성을 보고 투자한 것”이라면서 “그동안 LG화학은 주주가치를 제고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한다고 계속해서 기사화해 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물적분할의 경우 신설법인이 LG화학의 100% 자회사가 되는 구조로, 2차전지의 성장성을 보고 투자한 저희와 같은 소액투자자는 LG에너지솔루션이 기업공개 후 상장하면 신주를 배분받지 못한다”면서 “방탄소년단의 성장성을 보고 빅히트엔터테인먼트에 투자했는데 방탄소년단이 탈퇴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유했다.
그는 소액투자자의 피해를 막기 위해 소액투자자의 2분의 1 이상의 동의도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원인은 “아무런 힘 없는 개인들이 기업 이윤만을 추구하는 기업의 논리에 개인이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선례를 남기지 말아야 할 것”이라면서 “LG라는 대기업이 그동안 가져왔던 기업이미지를 망치는 실수를 부디 범하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