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무부가 인텔과 AMD의 화웨이 공급을 승인했다. 이번 화웨이 제재로 자국 기업의 시장 지위가 흔들릴 것이란 우려가 나오자 예외적으로 허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 공급 승인으로 인해 화웨이가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게 되면, 국내 기업은 반사이익을 얻지도 못하고 화웨이향 수출액만 급감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화웨이 제재 美 기업에게만 완화...자국 경제 살리기 우선
지난 22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은 미국 상무부가 자국 반도체 기업 인텔과 AMD의 중국 화웨이향 제품 공급을 허가했다고 밝혔다. 15일 화웨이 제재를 선언하고 약 일주일 만에 나온 첫 허가다. 미·중 간 기술패권 전쟁이 치열해지면서 자국 반도체 기업의 매출액 급감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인텔과 AMD의 허가 품목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서버용 CPU(중앙처리장치)와 칩셋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간 화웨이가 인텔의 서버용 CPU 중 40%를 구입해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허가를 받은 두 기업 외에도 미국의 반도체 회사인 스카이웍스와 퀄컴 등이 화웨이향 수출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미국 못지 않게 중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반도체시장도 여러 노력을 시도하고 있다.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 그리고 LG디스플레이(034220) 등이 미국 상무부에 화웨이향 반도체 공급 허가를 신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선 수출 허가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지만 승인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앞서 15일 화웨이 제재를 적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화웨이가 눈에 띌만한 타격을 받지 않자 미국은 17일 다시 법률을 개정해 더욱 강력한 제재안을 내놓은 바 있다. 150개가 넘는 화웨이 관련 기업을 제재 리스트에 포함시키고, 美 기업뿐만 아니라 외국 기업에까지 제재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이 같은 미국의 행보로 미루어보아, 최근 예외적 허가 조치는 자국 기업 살리기 식의 자구책이라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불과 이틀 사이에 더욱 강력한 제재안을 내놓은 미국이 돌연 화웨이 제재를 완화시키려 하진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따라서 국내기업이 화웨이향 반도체 수출 허가를 얻어내기엔 힘들 전망이다. 물론 미국이 동맹국에게 선제적 배려를 해주지 않겠냐는 시선도 두고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번 제재에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연관돼 있기 때문에 대외적 명분으로 내세우기엔 조금 힘이 부치는 실정이다.
◆美 반도체로 화웨이 건재하면 국내 기업 반사이익 없을 듯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화웨이가 시장 점유율과 경쟁력을 빠르게 잃고, 그 자리를 다른 기업들이 신속히 메꾸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5G와 스마트폰 시장에서 국내 기업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고, 반도체 수출액 급감으로 허덕이던 미국 기업들 역시 새로운 거래처를 확보하게 된다.
하지만 만약 미국이 자국 기업을 살리겠다고 계속해서 화웨이를 풀어주게 되면, 향후 반쪽자리 제재로 전락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화웨이는 잠시 흔들리겠지만 시장에서 퇴출되진 않고, 미국 기업만 매출액을 회복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한국을 포함한 외국 기업들은 반도체 매출액 급감은 물론 스마트폰 시장에서의 반사이익도 얻지 못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향후 미국 반도체 기업의 글로벌 시장 지위가 위태로워지면, 그에 따라 화웨이향 수출허가 역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등의 화웨이향 공급 승인은 불확실한 상태이므로 최악의 상황을 대비할 여러 노력들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박기현 SK증권 연구원은 “추후 위 기업들에도 미국 정부의 판매 허가가 주어질지 여부가 시장의 가장 큰 관심사”라며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제재 양상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따라 기업들의 실적이 크게 영향 받을 수 있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