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흑같은 밤하늘에 드론이 만들어낸 대형 태극기가 빛을 발하며 등장했다. 드론 150대가 동원된 가로 81m, 세로 54m의 크기이다. 지난 2005년 포항시가 제작한 태극기(80×53m)를 뛰어넘어 세계에서 가장 큰 태극기 기록을 경신했다.
지난 13일, 광복절 74주년을 맞아 국내 드론 스타트업 유비파이(UVify)는 '드론 IFO'(확인비행물체, Identified Flying Object)'를 활용해 세계 최초 상용 군집드론을 선보였다. 유비파이 IFO는 올해 초 미국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를 통해 공개되자마자 미국의 드론 미디어 ‘드론 러시(Drone Rush)’가 제정한 최고 상용 드론상을 수상했다.
◆ 드론, 군사용으로 개발됐다가 민간 분야에 속속 도입
이번 광복절 행사에 선보인 '드론 태극기'는 드론의 경제성, 향후 사업화 가능성을 상징한다는 평가다. 천으로 만들어진 기존의 대형 태극기의 경우 수십 명의 인원이 몇 주에 걸쳐 수작업을 해야 하지만 드론을 활용한 태극기는 언제 어디서든 우리나라 상공에 그려낼 수 있다. 그만큼 '가성비'가 탁월하다는 의미이다.
조종사 없이 무선전파의 유도에 의해 비행 및 조종이 가능한 무인항공기(UAV. unmanned aerial vehicle)를 의미하는 드론은 초기에는 군사용으로 개발됐으나 이제는 민간 분야에 속속 도입되고 있다. 산불 감시 및 진화, 인명 수색은 물론이고 물류와 택배, 원거리 촬영, 레저에 드론이 도입되고 있다. 글로벌 드론 시장은 2016년 86억 달러(약 10조원)였고, 이후 연평균 7.5%씩 성장해 내년이면 115억 달러(약 13조5000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군사용으로 시작된 드론이 최근들어 민간 분야에 속속 도입되고 있는 것은 4차 산업혁명 도래에 따른 ICT(정보통신기술) 발전과 드론 부품 가격의 하락 덕분이다. 이제는 "드론이 미래 국가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 중국, 미국이 발빠르게 상용화
현재 드론 개발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중국과 미국이며, 활용 분야는 물류와 배송에 집중돼 있다.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 징동닷컴은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의해 ‘2019 아시아 100대 유통 기업’ 2위에 선정됐다. 1위는 알리바바였다. 징동닷컴을 이렇게 성장시킨 원동력의 하나는 드론을 이용한 무인 배송 시스템 구축이다. 징동닷컴은 드론 기술을 상업적으로 활용한 세계 최초의 전자상거래 기업이다. 지난 2015년부터 드론 개발을 시작해 오지, 농촌 등 배달하기 어려운 곳에 활용했고, 현재까지 40만 분 이상의 누적 비행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아울러 올해 1월에는 인도네시아에서 처음으로 정부 인가를 받은 드론 비행을 시작해, 동남아시아 드론 배송 시대를 열었다.
미국 1위 물류기업 아마존은 최근 화물배송용 '프라임에어' 드론을 소개했다. 이 드론은 육각형으로 엔진에 해당하는 전동부분이 작아 날개와 충돌을 막아주며 헬리콥터처럼 수직 이착륙이 가능하고 비행기처럼 고속으로 비행할 수 있다. 2.27㎞ 이하 물품을 30분내로 목적지까지 배송하며 최대 24㎞까지 비행할 수 있다.
미국 글로벌 물류 기업 UPS는 지난 3월 드론 스타트업 매터넷(Matternet)과 협력해 의약품 드론 배송을 최초로 시작했다. 발라 가네쉬 UPS 부사장은 성명을 통해 "교통체증으로 30분 이상 걸리던 의약품 배송을 드론은 3분 만에 해낼 수 있다"며 "앞으로 미 전역의 다른 병원에서 드론을 보다 광범위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UPS는 지난 7월에는 자회사 UPS 플라이트 포워드(UPS Flight Forward Inc.)를 설립하고, 미 연방항공청에 UPS 네트워크 내 상업용 드론 운영을 위한 '파트(Part) 135' 인증을 신청했다. 파트 135는 기존에 기업들이 취득한 드론 비행에 대한 제한적인 인증과 달리 공인된 항공 운송 업체로서의 법적 권한을 갖는 완전한 인증이다. 스캇 프라이스 UPS 혁신 및 전략 부문 총괄은 “UPS가 드론 운영을 위한 자회사를 설립하고, 공식 인증 취득에 따라 정기적인 운행을 시작하는 것은 드론 시장 및 물류 산업 전반에 있어 역사적인 순간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드론을 활용한 택시도 등장하고 있다. 지난 5월 29일 미국 알라카이사는 액화수소를 연료로 사용하는 에어택시 ‘스카이’를 발표해 화제를 일으켰다. 스카이는 최대 5명의 승객이 탑승해 최대 4시간 동안 약 640㎞를 비행할 수 있는 운송용 드론이다.
◆ 'ICT강국' 한국, 드론 산업에 강점 보유
이제 막 개화한 드론 산업에 한국은 강점을 갖고 있다는 평가다. 세계 최고 수준의 ICT(정보통신기술) 기술력과 정부의 적극적인 스타트업·벤처 육성 정책 덕분이다. 앞서 언급한 국내 스타트업 유비파이의 '드론을 활용한 대형 태극기' 성공이 이를 증명한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미래드론교통담당관 출범식을 열었다. 정부는 2023년까지 드론 택시와 드론 택배 등 드론 교통체계 상용화를 준비하기 위한 전담조직을 출범시켜 '드론 교통' 분야에 신속하게 대응할 계획이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의원은 지난해 6월 드론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드론 산업 육성법’을 발의했다. 이 법안에는 드론 교통관리시스템 구축과 드론 운영의 거점이 될 수 있는 드론산업 발전특구, 드론 육성을 위해 법 제도화를 간소화한 드론특별자유화구역 등 국내 드론 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 내용이 들어가 있다.
◆ 드론 기술 국산화하고, 비행 지역 확대해야
그렇지만 개선점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드론 기술의 국산화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드론 업계 관계자는 “국내산 드론이라고 해도 중국산 부품이 70%에서 많게는 100%까지 들어간다”며 “예를 들어 드론의 핵심인 FCC(비행제어컴퓨터, Flight Control Computer)는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드론들 대부분이 중국 기업 다장(DJI) 부품을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또, 막상 드론을 활용할 수 있는 비행 지역이 적다 보니 새로운 기술을 실험하는 것이 제한적이다. 드론 전문가들은 국내 드론 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드론 비행 지역 확대와 비행 제한 구역 완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또 다른 관계자는 “드론 비행에 있어서는 빅데이터가 중요하기 때문에 더 많은 비행 인프라가 갖춰져야 기술력이 발전할 수 있다”며 “중국이 드론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너무 따라가려고 하지 말고 한국형 드론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