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스타트업 단계이지만 적자 규모가 이렇게 눈덩이처럼 커지는 곳에 투자할 국내 기관이나 투자자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이런 적자 재무제표를 가진 스타트업에 투자한 해외 자본이 존경스럽네요."
지난 5월 인터넷 전문은행 신규 인가를 신청했다가 탈락한 토스뱅크의 최대 주주사 '비바 리퍼블리카'의 재무제표를 들여다본 어느 국내 벤처 캐피탈 투자심사역의 말이다.
간편송금 플랫폼 ‘토스’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비바 리퍼블리카가 국내 자본시장 참여자들의 관심 기업으로 등장했다. 국내에 8개 뿐인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 대열에 합류했지만 적자 규모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이면 마주하게 되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설립 6년차의 유니콘 기업이 과연 넘어설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죽음의 계곡' 진입한 비바 리퍼블리카
비바 리퍼블리카의 재무제표를 들여다보면 이 스타트업이 글자 그대로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들어섰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이 회사는 영업수익(매출액) 538억원, 영업손실 444억원, 당기순손실 444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손실률이 82.52%에 이른다. 1만원 어치의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면 이익은 커녕 8200원의 영업손실을 내고 있다는 의미이다. 적자 규모는 226억원(2016년) → 390억원(2017년) → 444억원(2018년)으로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스타트업이 초기에 적자를 기록하는 것은 흔히 겪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비바 리퍼블리카는 '적자의 품질이 나쁘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비바 리퍼블리카는 영업활동을 통해 현금을 벌어들이지 못하고 있다. 이 회사의 '영업활동을 통한 현금흐름'(Cash flows from operating activities. 영업현금흐름)을 살펴보면 마이너스 87억원(2016년) → 마이너스 391억원(2017년) → 마이너스 274억원(2018년)으로 지속적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영업현금흐름이란 기업에 영업을 통해 실제로 벌어들이는 현금을 말한다. '죽음의 계곡'을 넘어서는 스타트업들을 살펴보면 '장부상 적자(당기순손실)를 내지만 영업현금흐름이 플러스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 누적 결손금 1000억원대... 투자 유치로 자본잠식은 면해
2013년 설립 이래 적자가 지속되다보니 이 스타트업은 지난해 사업 보고서 기준으로 결손금이 1091억원에 이르렀다. 결손금이란 기업이 당기손손실이 기록하는 경우 그 감소분을 누적해 기록한 금액을 말한다. 결손금이 납입자본금(자본금과 자본잉여금의 합계액)을 초과하면 '자본 잠식'이 발생한다. 자본잠식이란 자본총계가 마이너스로 바뀌는 것으로 주주가 투자한 돈이 한 푼도 남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비바 리퍼블리카는 자본 잠식에 빠지지는 않고 있는데, 이는 간헐적으로 외부 투자 유치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비바 리퍼블리카는 2013년 설립 이래 현재까지 모두 2200억원을 투자받았다. 지난해 말 실리콘밸리의 거물 투자자 피터 틸이 운영하는 페이팔이 참여한 글로벌 투자회사 클라이너퍼킨스 등으로부터 8000만달러(약 947억원)를 유치하면서 기업가치 12억달러(약 1조4200억원)를 인정받았다. 이로써 비바 리퍼블리카는 국내 네 번째 유니콘 기업에 등극했다. 7월 현재 국내 유니콘 기업은 비바 리퍼블리카를 포함해 야놀자, 엘앤피코스메틱, 옐로모바일, 우아한형제들, 위메프, 크래프톤(옛 블루홀), 쿠팡의 8곳이다.
◆ '전환권' 행사되면 경영권 넘어갈 수도
그렇지만 이것은 '잠재적 독(毒)'으로 남아있다. 비바 리퍼블리카는 이들 해외 투자자로부터 투자금을 유치하는 대가로 상환전환우선주(RCPS. Redeemable Convertible Preference Shares)를 발행했는데, 이것이 경영권을 담보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환전환우선주란 발행 회사가 투자자에게 투자금 상환을 보증하고(상환주), 보통주보다 높은 배당(사실상 이자)을 지급하며(우선주),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해주는 권리(전환권)를 부여한 증권이다. 한마디로 기업이 "이런저런 프리미엄(특혜)을 몽땅 줄테니 우리 회사에 투자해달라"고 할 때 발행하는 증권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전환권'(Convertible rights)이다. 상환전환우선주를 보유한 투자자는 필요할 경우 이 증서를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해당 회사의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다(보통주는 의결권이 있는 주식이고, 우선주는 의결권이 없는 대신 배당을 더 많이 받는 주식이다).
상환전환우선주를 보유한 외부 투자자가 실제로 전환권을 행사해 해당 기업의 경영권을 넘겨 받는 경우는 드물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한때 커피 체인점으로 주목받았던 카페베네가 여기에 해당한다. 카페베네의 창업자 김선권씨는 국내 사모펀드(PEF) K3파트너스에 상환전환우선주를 제공하는 대가로 자금을 유치했다가 2014년 K3파트너스가 실제로 전환권을 행사하면서 경영권을 빼앗긴 적이 있다. 우선주가 보통주로 전환되면서 K3 파트너스의 지분이 김선권 창업자의 지분을 훌쩍 초과한 것이다.
현재 비바 리퍼블리카의 최대주주 이승건(37) 대표는 클라이너퍼킨스가 전환권을 행사하면 최대주주 지위를 내놓아야 할 수도 있다.
◆ 인터넷 전문은행 사업자 선정되면 '대규모 적자' 문제 일거에 해결
희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비바 리퍼블리카가 거액의 영업손실을 내고 있는 원인이 되는 지급 수수료(Commission fee)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급수수료란 비바 리퍼블리카가가 고객에게 간편송금(지급결제) 서비스를 제공할 때마다 은행에 내는 수수료를 말한다. 비바 리퍼블리카를 비롯한 국내의 간편송급 사업자는 비(非)은행 사업자로 분류돼 있으며, 간편송금이나 간편결제를 실행할 경우 은행에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비바 리퍼블리카의 지급 수수료 규모를 살펴보면 191억원(2016년) → 447억원(2017년) → 615억원(2018년)으로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런데 만약 비바 리퍼블리카가 인터넷 전문은행 사업권을 획득하면 이 금액을 낼 필요가 없다. 적자의 주범이 일순간에 해결되는 것이다. 비바 리퍼블리카가 인터넷 전문은행 사업 인가에 절박하게 나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매출액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이 스타트업의 매출액은 9910만원(2015년) → 34억원(2016년) → 205억원(2017년) → 458억원(2018년)으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비바 리퍼블리카가 '죽음의 계곡'을 넘어 흑자 기업으로 탈바꿈할 경우 이 스타트업에 투자한 해외 자본은 '선구안을 가진 투자자'로 인정받을 것이다. 반대의 경우 이 스타트업에 투자하지 않은 국내 기관과 투자자들이 '신중한 투자자'로 인정받을 것이다(비바 리퍼블리카의 주요 주주는 해외 자본으로 구성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