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정기 주주총회 시즌의 막이 오르면서 행동주의 펀드와 표 대결을 앞둔 기업의 주주총회에 이목이 쏠린다. 지난해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의결권 행사 지침)를 도입하고 맞는 첫 주총인 데다, 행동주의 펀드도 어느 때보다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3일 스튜어드십 코드(의결권 행사 지침) 도입에 참여하는 기관투자자 및 자문사 등은 총 91곳이라고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제안한 '한국 스튜어드십 코드'에서 발표했다. 여기에 참여 예정 의사를 밝힌 35곳까지 포함시키면 총 참여사는 126곳에 달하게 된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행동주의 펀드는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시작되면서 배당확대·사외이사 신임 등 주주가치를 제고하기 위한 제안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하고 맞는 첫 주주총회 시즌이다.
이 중 가장 관심이 쏠리는 주총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과 KCGI(일명 강성부펀드)가 각각 표 대결을 벌이는 현대차그룹과 한진그룹이다. 최근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들이 펀드 주주제안에 대한 찬반 의사를 표하면서 열기가 고조되고 있는 상태다.
엘리엇이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에 대한 주주제안은 △배당확대 △사외이사·감사위원 추천 등이다. 특히 엘리엇은 현대차에 보통주 1주당 2만1967원, 우선주 1주당 2만2017원 배당 지급을 요구했다. 현대차가 밝힌 배당 보통주 1주당 3000원, 우선주 1주당 3050원과 비교하면 7배 이상 차이가 난다. 엘리엇이 요구한 배당의 총액수는 5조8400억원에 달한다.
엘리엇 측은 "현대차가 보유한 순현금자산 14조3000억원은 완성차 경쟁사에 비해 8~10조원 정도 높은 수준"이라며 두 회사 모두 초과 자본상태로 자기자본수익률을 저하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주들에게 초과 자본금을 환원하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양대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와 글래스루이스는 모두 배당정책에 대해 현대차 손을 들어준 상태다. ISS는 엘리엇이 제안한 배당은 향후 연구개발(R&D)이나 공장 투자를 위한 자본 요건 충족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면서 반대표를 권고했다. 글래스루이스도 "대규모 일회성 배당금을 지급해 달라는 제안에 대해 주주 지지를 권고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현대차그룹의 판정승을 유력하게 보고 있다. 지난해 대결에선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엘리엇 손을 들어주면서, 현대차가 완패해 임시 주총을 취소화한 것과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엘리엇이 무리한 주주제안을 꺼내든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이어진다. 현대차그룹은 오는 22일 주총 일정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이사회 보강 계획 등을 세우고 있다.
KCGI와 한진·한진칼 간에 대결은 더 치열하다. 양측은 연초부터 소송 공방을 벌이고 있지만, 현재까지 주총 날짜도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한진은 오는 27일이고 한진칼은 미정이다. KCGI가 요구한 주주제안은 △사외이사·감사 선임 △이사보수 한도 승인 등이다.
한진칼은 상법 제542조의 제2항을 근거로 KCGI가 한진칼 지분을 보유한 기간이 6개월 미만이라는 점을 내세워 주주제안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법원은 6개월 보유기간 요건을 채우지 못해도 지분 3% 이상을 보유하면 주주제안을 할 수 있다고 봤다. KCGI는 지난 8일 기준으로 지분을 12.01%까지 늘려 2대 주주로 올랐다.
이 외에도 미국계 행동주의펀드 홀드코자산운용이 세이브존I&C에 주주제안을, 돌턴인베스트먼트와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이 현대홈쇼핑에 주주제안서를 보낸 상태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주주제안 안건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16년 31건에서 2017년 66건, 지난해 92건으로 지속 증가했다. 지난해 주주제안이 있었던 상장회사는 총 28개사로, 그 중 코스피 상장사는 15개사, 32건의 주주제안 안건이 주총에 상정됐다. 올해도 증가세를 이어갔을 것으로 보고 있다.
송민경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선임연구위원은 "대기업의 경우 행동주의 펀드의 보유 지분율이 10% 안팎으로 과도하게 높은 수준이 아니며, 대부분 주주활동을 할 수 있는 적정 수준까지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주주제안이 경영권 침해라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결국 이들 제안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대규모 연기금·운용사 등을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송 선임연구위원은 "이 떄문에 해외 행동주의 펀드도 과도한 주주제안을 무조건 주장하기는 어려운게 현실"이라면서 "헤지펀드의 전략도 이들을 설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주장을 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