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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밸류뉴스=문성준 기자]

'재계 5위' 롯데그룹의 황각규(66) 전 부회장은 1990년 35세에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 부장으로 근무할 당시 신동빈 상무가 입사하면서 처음 인연을 맺었다. '신동빈 상무-황각규 부장'이었다(두 사람 모두 1955년생이다). 후계자 수업을 위해 한국으로 건너왔지만 한국어, 한국 문화에 낯설던 신동빈 상무에게 황각규 부장이 유창한 일본어로 안내해 친밀해진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최고 인기학과이던 서울대 화공과(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당시 인기 직장의 하나이던 호남석유화학에 다니던 황각규 부장이었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타워. [사진=더밸류뉴스]

이후 30년 동안 황각규 전 부회장은 신동빈 회장을 최측근에서 보필하며 롯데 성장을 이끌었다. 황 전 부회장이 거친 마산고, 서울대 화공과, 호남석유화학, 정책본부 근무 경력자들이 롯데 주요 보직을 차지했다. 황 전 부회장은 지난 2018년 신동빈 회장이 구속되자 롯데 비상경영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 그룹을 이끌기도 했다.


그런 그가 지난해 8월 “변화와 혁신이 필요한 시기에 떠난다”며 퇴진했다. 신동빈 회장과 인연을 맺은 지 정확히 30년만의 퇴진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지난해=롯데 창사 이래 최대 위기 


지난해는 롯데에게 ‘악몽’으로 기억되고 있다. 코로나19로 그룹의 주력 비즈니스인 유통과 화학이 동반 직격탄을 맞으며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겪었다. '재계 5위 자리도 위태롭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롯데그룹의 자산 총액은 117조8000억원으로 전년비 3% 감소했다. 5대 그룹(삼성, 현대차, SK, LG) 가운데 자산 총액이 감소한 곳은 롯데가 유일했다. 


이렇게 된 이유가 있다. 롯데그룹을 연매출액 기준으로 순서를 매겨보면 롯데쇼핑(롯데백화점)과 롯데케미칼이 20조원에 근접하면서 쌍두마차를 형성하고 있다. 두 곳의 실적이 롯데그룹의 실적을 사실상 결정한다. 이어 롯데면세점(7조), 롯데건설(5조), 코리아세븐(세븐일레븐 운영사. 4조), 롯데하이마트(4조), 롯데칠성(2조), 롯데제과(2조), 롯데렌탈(2조), 롯데GRS(롯데리아 버커킹 엔제리너스), 롯데물산 등이다. 


그런데 지난해 롯데쇼핑과 롯데케미칼이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다. 롯데쇼핑은 지난해 매출액 16조1844억원, 영업이익 3461억원, 당기순손실 6866억원으로 거액의 적자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롯데케미칼은 매출액 12조2230억원. 영업이익 3569억원, 당기순이익1753억원으로 전년비 각각 19.17%, 67.76%, 76.83% 급감했다. 


여기에다 롯데 계열사 7곳의 온라인몰을 통합해 야심차게 시작한 롯데온은 '완벽한 실패'로 막을 내렸다. 앞서 2019년에는 일본 불매 운동으로 롯데는 휘청거렸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17년에는 사드(THAAD,고도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에 따른 중국 사업 철수 위기를 겪었다.  글자 그대로 롯데그룹에 사상 최대 위기가 닥친 것이다.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앞을 행인들이 오가고 있다. [사진=더밸류뉴스]

◆133명 옷벗어...  롯데쇼핑 임원 25명 감소


지난해 11월, 신동빈 회장은 '칼'을 들었다. 임원 133명이 '옷을 벗었다'. 전례없는 대규모 퇴임이 이뤄진 것이다. 롯데그룹 전체 임원 수가 약 600명인 것을 고려하면 20%가 넘는 수치다. 정기 인사 이후 롯데그룹의 임원 수는 83명 감소했다. 롯데쇼핑에서만 25명의 임원이 감소했고, 롯데케미칼이 16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지난해 실적 악화에 대한 구조조정으로 해석되고 있다. 임원 보수도 크게 줄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지난해 1분기 임원의 보수금액은 37억1400만원이었지만 올해 1분기 보수금액은 6억4800만원으로 6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올 초에는 그룹 내 교통정리가 진행됐다. 지난 4월 롯데쇼핑과 호텔롯데는 롯데월드타워의 소유지분을 포함한 토지지분, 건물관련 동산지분을 롯데물산에 매각했다. 롯데쇼핑도 지난 2월 롯데자산개발로부터 복합쇼핑몰 사업과 롯데쇼핑타운대구, 싱가포르 법인 등을 인수하며 롯데쇼핑의 유통 사업과 모바일을 강화했다. 롯데그룹은 계열사 숫자가 86곳에 달한다. 그간 과도하게 분산돼 있던 사업 부문을 통합하고 주력 계열사에 힘을 몰아준 것이다. 


신동빈 친정체제로의 개편도 이뤄졌다. 


황각규 전 부회장이 맡고 있던 롯데지주 대표이사는 현재 이동우(61) 사장이 맡고 있다. 이동우 사장은 롯데하이마트 대표이사로 근무하다가 지난해 8월 황각규 전 부회장의 뒤를 이었다. 이동우 사장은 1986년 롯데백화점에 입사한 ‘롯데맨’으로 롯데월드 대표이사, 롯데하이마트 대표이사 등을 역임했다.   


이로써 롯데지주는 '신동빈 대표이사 회장, 송용덕∙이동우 대표이사'의 3인 대표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신동빈 회장을 송용덕∙이동우 대표가 보필하는 형태이다.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송용덕 이동우 대표는 'CEO형'이라는 점이다.


왼쪽부터 신동빈 롯데 회장, 송용덕, 이동우 대표. 

지난해 1월 취임한 송용덕(66) 대표는 '호텔 전문가'로 2012년 내부 인사로는 처음으로 롯데호텔 대표이사가 됐고, 2017년부터는 호텔&서비스 BU장(비즈니스유닛장)을 맡았다. 1979년 호텔롯데에 입사한 '롯데맨'이다.


◆1Q 영업이익 10배... 고강도 처방 성과


신동빈 회장의 친정 체제로의 개편과 ‘고강도 처방’으로 롯데는 올해 1분기에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롯데그룹 상장사의 1분기 실적과 시가총액을 조사한 결과, 영업이익은 10배, 시가총액은 1.5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내 10대 그룹 중에서도 두드러지는 실적 개선이다. 1분기에 코로나19가 주춤하며 기저효과를 가진 것도 크지만,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소비 회복세 등이 맞물려 이뤄낸 성과다. 롯데쇼핑은 지난 12일 이커머스 역량 강화를 위해서 온라인 조직 개편을 추진했다. 이커머스 사업 부문을 신설해 조직 융합과 디지털 전환에 힘썼다. 

롯데그룹 주요 계열사 올해 실적 비교. [이미지=더밸류뉴스]

롯데쇼핑의 1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617억원으로 전년비 18.42% 증가했다. 백화점의 회복세가 강했다. 백화점 사업부문 영업이익은 1028억원으로 전년비 261.97% 늘었다. 


롯데케미칼의 올해 1분기 연결기준 매출액은 4조1683억원으로 전년비 27.25%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6237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롯데케미칼의 설비 정상화 및 글로벌 경기 수혜 등에 따른 것이다. NH투자증권은 “2분기에도 롯데쇼핑과 롯데케미칼의 턴어라운드(실적반등)가 기대된다”고 언급했다. 


◆"오너 생각을 읽어라. 본분을 망각하지 말라"


이제 이른바 '황각규 라인'은 롯데에서 정리된 상태이다. 황각규 전 부회장과 정책본부에서 손발을 맞추던 남익우 전 롯데GRS 대표이사, 호남석유화학 출신 오성엽 전 롯데지주 커뮤니케이션 실장이 회사를 떠났다. 서울대 동문인 임병연 전 롯데케미칼 기초소재부문 대표이사는 롯데미래전략연구소로 이동했고, 황 전 회장의 ‘브레인’으로 불렸던 윤종민 전 롯데지주 경영전략실장은 롯데인재개발원장이 됐다. 황 전 부회장과 함께 그룹 전략을 수립하던 멤버들은 계열사로 뿔뿔이 흩어졌다.


롯데의 새 브레인은 70년대생, 해외파, 비(非) 화학 출신으로 요약된다. 롯데지주 경영혁신실의 각각 1팀과 2팀의 팀장을 맡고 있는 ‘두 승욱(김승욱 상무, 서승욱 상무보)’은 70년대 생으로 해외 유학 경험이 있다. 이들의 롯데의 ‘브레인’으로 급부상하는 건 그만큼 롯데가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는 자각으로 볼 수 있다. 


a854123@thevalu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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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7-19 22: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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