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이 대한항공의 지주사 한진칼에 아시아나항공 인수 자금 8000억원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7대 의무 조항을 제시했다. 일각에서는 이것이 자금 지원에 대한 여론과 정치권의 반발을 의식한 조치라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진칼은 산은과 5000억원 상당의 신주인수계약 및 3000억원 규모의 교환사채인수계약을 통해 총 8000억원의 자금을 지원받는 내용의 투자합의서를 체결했다. 한진칼은 이 지원금을 대한항공에 대여해 아시아나항공이 발행하는 영구전환사채와 신주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두 회사를 합병할 계획이다.
다만 산은은 지원을 조건으로 투자합의서에 한진칼의 산은에 대한 7대 의무 조항을 명시했다. 일각에서는 이것이 재벌기업을 위한 혈세 투입 논란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경영권 방어 논란을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7대 의무 조항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과정에서 산은의 관리 및 감시 권한을 강화하고, 한진칼이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시 위약금 5000억원과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한다.
우선 산은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작업에 관리·감독 장치를 마련할 것을 지시했다. 한진칼은 산은이 지명하는 사외이사 3인과 감사위원회 위원을 선임해야 한다. 또한 한진칼은 주요 경영사항에 대해 산은과 사전협의를 거쳐야 하고 동의를 얻어야 한다.
윤리경영위원회 설치·운영 책임과 경영평가위원회의 경영평가에 협조·감독할 의무 역시 명시했다. 이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과 같은 오너 갑질 전과를 감안해 강도 높은 감시 체제를 부과한 것으로 보인다. 한진 일가의 갑질이 또 다시 발생하거나 경영성과가 미흡할 경우 경영진은 교체되거나 해임될 수 있다.
이어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인수 후 통합(PMI) 계획을 수립하고 이행할 책임도 부여됐으며, 대한항공 주식 등에 대한 담보 제공과 처분 제한에 관한 조항도 명시했다. 조 회장은 자신이 보유한 6.52%의 한진칼 지분과 대한항공 지분을 담보로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끝으로 산은은 한진칼이 이와 같은 의무 조항들을 위반할 경우 5000억원의 위약금을 물고 손해배상책임까지 진다는 조항을 명시했다. 이에 대한 담보로 대한항공 발행 신주에 대한 처분 권한 위임 및 질권 설정 의무를 계약서에 삽입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국적항공사가 지니게 될 국가 경제 및 국민 편익, 안전 측면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며 “경영평가위원회와 윤리경영위원회 등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한진그룹은 책임경영을, 산업은행은 감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