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즈를 연구한 책은 차고 넘친다.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의 천재성을 파헤친 책도 있고, 네 청년이 세계 최고의 록밴드가 되는 과정을 추적한 평전도 숱하다. 그런데 비틀즈에게 ‘경영’을 묻는 책은 흔치 않다. 더구나 그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경영학자가 아니라 40년 넘게 밴드의 흥망성쇠를 직접 겪어온 현역 뮤지션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다섯손가락 리더 이두헌의 신작 『위대한 팀은 비틀즈처럼 일한다』가 그렇다. 이 책에서 비틀즈는 음악사가 아니라 경영학의 무대 위에 선다. 존 레넌,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는 세계적인 록스타이기 전에 서로 다른 능력과 욕망을 가진 조직 구성원이고,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과 프로듀서 조지 마틴은 그 천재성을 세상과 연결시킨 경영자이자 조력자다. 리버풀과 함부르크의 클럽은 스타트업의 차고와 같고, 애비로드 스튜디오는 혁신기업의 연구소가 된다.
이두헌은 이를 클러스터 이론, 지식의 외부효과, 보완 자산, 밀도 의존 이론, 공진화, 공유 정신 모델 같은 경제·경영 이론으로 해부한다. 엔비디아와 모더나, 넷플릭스와 스타벅스, 애플과 포켓몬도 비틀즈와 한 무대에 불려 나온다. 자칫 경영학 교과서처럼 딱딱해질 수 있는 소재들이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다 보면 묘하게도 음악 이야기를 읽듯 술술 넘어간다.
아마도 저자가 음악가여서일 것이다.
다섯손가락 리더 이두헌의 신작 『위대한 팀은 비틀즈처럼 일한다』 표지. 비틀즈의 성공과 해체 과정을 경영이론으로 분석해 창조적 조직의 원리를 풀어낸 책이다. [사진=쌤앤파커스]
◆ 음악과 경영, 두 개의 렌즈로 비틀즈를 해부하다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활동해온 현역 뮤지션이 자신의 전문영역인 음악을 넘어 경영이론까지 본격적으로 접목해 전문서를 내놓은 사례는 매우 드물다. 『위대한 팀은 비틀즈처럼 일한다』의 첫 번째 특별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경영학자가 음악을 경영학의 사례로 차용한 것이 아니라, 음악가가 경영학을 공부한 뒤 그 이론을 다시 음악의 현장으로 가지고 돌아왔다.
그래서 같은 비틀즈를 들여다봐도 관찰하는 곳이 다르다.
이를테면 레넌과 매카트니의 관계를 설명하는 대목이 그렇다. 저자는 두 천재를 단순히 ‘위대한 송라이터 콤비’라고 부르지 않는다.
“존은 감정이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어서 자신의 불안과 분노, 냉소와 욕망을 거르지 않고 음악 안으로 밀어 넣었고, 폴은 멜로디의 형태를 다듬고 청중이 어느 대목에서 반응하는지를 본능적으로 읽어내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 내린다.
“두 사람은 닮아서가 아니라, 너무 달랐기에 서로를 필요로 했다.”
이 짧은 문장 하나에 밴드를 해본 사람만이 알 법한 묘한 진실이 숨어 있다. 좋은 밴드는 서로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기타가 드럼처럼 연주하고 드럼이 베이스처럼 연주한다면 굳이 넷이 필요할 이유도 없다. 서로 다른 소리가 부딪히면서도 마지막에는 하나의 곡으로 귀결되는 것. 기업의 조직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이 책의 시선이다.
레넌과 매카트니가 한 곡을 놓고 벌였던 충돌을 저자는 ‘갈등’으로만 읽지 않는다. 존이 거친 아이디어를 던지면 폴이 구조를 만들고, 폴이 매끈한 틀을 가져오면 존이 그것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비틀었다. 그러니 우리가 알고 있는 숱한 비틀즈 명곡들은 어느 한 천재의 머릿속에서 완성된 작품이라기보다 “두 사람의 긴장이 남긴 흔적”이었다.
기업 조직에서 툭하면 외치는 ‘시너지’라는 단어가 이보다 더 생생하게 설명될 수 있을까.
조지 마틴을 바라보는 눈도 비슷하다. 1962년 데카레코드의 딕 로우는 비틀즈의 오디션을 듣고 계약하지 않았다. 훗날 ‘기타 그룹은 한물갔다’는 판단을 내렸던 사람으로 대중음악사에 남게 된 인물이다. 반면 조지 마틴은 비틀즈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들과 함께 녹음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두헌은 그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혁신은 천재 혼자서 만들지 않는다. 천재의 신호를 알아보고, 자신의 지식으로 흡수하고, 더 완전한 형태로 완성하는 조력자가 있을 때 비로소 천재는 역사가 된다.”
이어지는 문장은 더 압축적이다.
“딕 로우는 같은 소리를 듣고 걸어 나갔다. 조지 마틴은 같은 소리를 듣고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음악가의 문장이지만 동시에 인재를 선발해야 하는 경영자의 문장이다. 이미 완성된 천재가 줄을 서서 입사를 기다리는 회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재능의 소음을 듣고 그 안에 숨어 있는 신호를 알아채는 것. 그것이 조지 마틴에게서 발견한 경영자의 능력이다.
◆ 20년 기업 강연에서 숙성된 ‘비틀즈 경영학’
이 책이 단순한 ‘비틀즈 경영학’에 그치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이두헌은 책을 쓰기 위해 갑자기 경영학 서적들을 펼쳐든 뮤지션이 아니다. 대학에서 비틀즈의 역사와 음악이론을 가르쳐왔고, 20년 넘게 국내 대기업과 주요 기관을 상대로 리더십과 창의성, 조직과 혁신에 관한 강연을 해왔다. 이번 책은 그 긴 시간 동안 기업 현장에서 강의하고, 반응을 확인하고, 다시 고치고 다듬어온 생각들의 집적물에 가깝다.
강의실에서만 태어난 이론과 기업 현장에서 스무 해 동안 사람들의 질문을 맞아가며 살아남은 이론의 질감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책의 문장들은 자주 기업의 회의실을 향한다. 저자가 비틀즈의 사례에서 끌어낸 “좋은 리더는 모든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답이 조직 안에서 끊임없이 이동하도록 만드는 사람”이라는 문장이 대표적이다. 그 뒤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생각”과 심지어 “실패한 시도”까지 다른 조직원의 자산이 되어야 한다는 설명이 따라붙는다.
“지식은 문서 속에 보관될 때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갈 때 더 빠르게 진화한다.”
이 대목쯤 오면 독자는 비틀즈 이야기를 읽고 있는지 자신의 회사를 들여다보고 있는지 잠시 헷갈리게 된다.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돼 비틀즈라는 조직의 탄생과 성장, 혁신과 붕괴, 그리고 그들이 남긴 유산을 시간 순으로 추적한다. 1부 ‘변방의 소음은 어떻게 세계의 표준이 되었나’에서는 리버풀과 함부르크 시절부터 브라이언 엡스타인과 조지 마틴의 합류를 거쳐 세계시장으로 나가는 과정을 다룬다. 2부 ‘태동을 넘어 확장으로’에서는 미국 상륙과 비틀매니아, 레넌-매카트니 창작 시스템과 애비로드 스튜디오의 혁신을 분석한다. 3부에 이르면 성공의 정점에 오른 조직이 왜 흔들리기 시작했는지를 들여다보고, 마지막 4부에서는 창작과 통제, 자본과 신뢰, 해체 이후의 유산으로 시야를 넓힌다.
그중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비틀즈의 미국 진출을 앞두고 집행한 4만 달러 규모의 사전 프로모션을 분석한 대목도 흥미롭다. 이두헌은 비틀매니아를 단순히 좋은 음악이 어느 순간 폭발한 자연발생적 현상으로 보지 않는다. 거리의 포스터와 라디오를 통해 ‘비틀즈’라는 이름을 반복 노출시킴으로써 음악을 듣기도 전에 대중의 머릿속에 존재부터 각인시킨 전략이었다고 해석한다.
팬덤을 바라보는 시선은 60년을 훌쩍 뛰어넘는다. 엡스타인이 음반과 공식 굿즈, 라이선스 상품을 묶어 팬과 비틀즈의 접점을 확장했던 전략을 오늘날 하이브의 위버스와 연결한다. “플랫폼이 달라졌을 뿐” 팬덤의 에너지를 하나의 생태계 안에 모으는 구조는 같다는 것이다. 1960년대 비틀매니아와 21세기 K팝 플랫폼 산업이 한 문단에서 만난다.
애비로드 스튜디오에 들어가면 이야기는 다시 음악가 이두헌의 홈그라운드로 돌아온다. 비틀즈가 녹음실 자체를 악기로 사용하기 시작한 과정을 설명하면서 저자는 혁신을 이렇게 정의한다.
“혁신의 본질이 발명이 아니라 재배열에 있다는 사실.”
새로운 악기를 발명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악기와 기술의 관계를 다시 배치함으로써 이전에는 없던 소리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기업의 혁신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없던 것을 무(無)에서 만들어내야만 혁신인 것은 아니다. 이미 내 손에 있는 사람과 기술과 자산의 관계를 다르게 연결하는 것만으로도 혁신은 시작될 수 있다.
◆ 성공과 혁신, 그리고 ‘위대한 실패’까지
하지만 『위대한 팀은 비틀즈처럼 일한다』가 성공한 조직을 칭송하는 책에 머물렀다면 이야기는 오히려 평범했을 것이다. 비틀즈가 경영학의 흥미로운 연구 대상인 진짜 이유는 그들이 성공만큼이나 장렬한 실패까지 압축적으로 보여준 조직이기 때문이다.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죽자 비틀즈라는 조직을 떠받치던 보이지 않는 기둥 하나가 사라졌다. 레넌과 매카트니의 창조적 긴장은 서서히 파괴적 갈등으로 변하고, 권한과 돈과 이해관계가 끼어들면서 네 사람 사이의 신뢰도 흔들렸다.
저자는 비틀즈라는 동업체가 1962년부터 거의 10년 동안 “거래비용이 거의 0에 가까운 상태”로 움직였다고 분석한다. 네 명의 창작자와 한 명의 매니저 사이에서 수많은 결정이 계약서 없이도 작동할 수 있었던 까닭은 엡스타인이라는 ‘신뢰의 보증인’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가 “이건 이렇게 하자”고 말하면 네 사람은 그것을 사실상 계약으로 받아들였다.
여기에서 비틀즈의 해체는 유명 록스타 네 명이 사이가 나빠져 헤어진 사건을 넘어선다. 신뢰라는 무형자산이 사라졌을 때 조직의 거래비용이 얼마나 급격하게 상승하는지를 보여주는 경영학의 사례가 된다. 음악사가 보아온 비틀즈의 해체와 경영이론으로 바라본 비틀즈의 해체는 같은 사건이면서도 풍경이 사뭇 다르다.
◆ 40년 밴드 리더가 읽어낸 ‘조직 비틀즈’
무엇보다 이 책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저자 자신의 이력이다.
이두헌 역시 스무 살 무렵 대학생 밴드 다섯손가락으로 음악을 시작했다. ‘새벽기차’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풍선’ ‘사랑할 순 없는지’ 같은 노래를 만들며 스타덤에 올랐고, 밴드의 성공과 갈등, 밴드 해체 뒤의 긴 공백과 재결성까지 40년 넘게 음악인의 생로병사를 겪었다. 지금도 매년 수십 차례 무대에 오르는 현역이다.
그런 사람이 비틀즈를 바라본다.
아마 경영학자에게 애비로드 스튜디오가 ‘혁신 시스템’이라면 음악가에게 그곳은 동시에 네 사람이 좁은 공간에서 서로의 소리를 듣고, 기다리고, 충돌하고, 다시 연주해야 했던 작업실일 것이다. 레넌과 매카트니의 갈등 역시 조직행동론의 사례이기 전에 밴드 안에서 서로 다른 음악적 욕망이 충돌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몸으로 경험해본 사람에게는 훨씬 입체적인 사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책에는 경영이론만으로 비틀즈를 재단하는 사변적 분석과는 다른 체온이 있다. 음악가가 음악가를 바라보고, 밴드 리더가 다른 밴드의 리더십을 관찰하며, 창작자가 다른 창작자의 질투와 경쟁과 협업을 들여다본 뒤 그 위에 경영학의 언어를 입힌다. 학문이 현장을 설명하는 동시에 현장이 학문을 검증하는 셈이다.
비틀즈는 1970년에 해체됐다. 밴드가 실질적으로 세계 정상에서 활동한 기간은 채 10년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짧은 세월에 무명 창업조직의 탄생부터 폭발적 성장, 세계시장 진출, 제품 혁신, 브랜드 확장, 리더십 위기, 내부 갈등, 지배구조 문제와 해체까지 기업 하나가 수십 년에 걸쳐 겪을 법한 일들을 모조리 겪었다.
이쯤 되면 비틀즈는 록밴드라기보다 기묘할 정도로 완벽한 조직경영의 압축파일처럼 보인다.
『위대한 팀은 비틀즈처럼 일한다』를 읽고 나면 비틀즈 노래가 조금 다르게 들릴지도 모른다. ‘예스터데이(Yesterday)’와 ‘렛 잇 비(Let It Be)’의 아름다운 멜로디 뒤에서 네 천재가 어떻게 협력했는지,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의 혁신 뒤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과 기술과 지식이 연결됐는지를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천재 네 명을 한 방에 모아놓는다고 비틀즈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뛰어난 직원을 잔뜩 채용한다고 위대한 기업이 만들어지지 않는 것과 같다. 그 재능들을 연결하고 충돌시키고 때로는 중재하며, 바깥의 지식을 안으로 끌어들이고, 마침내 각자의 능력보다 더 큰 무엇인가를 만들어내야 한다.
어쩌면 비틀즈의 진짜 히트작은 ‘헤이 주드(Hey Jude)’도 ‘예스터데이(Yesterday)’도 아니었는지 모른다.
존과 폴과 조지와 링고, 그리고 엡스타인과 마틴까지 서로 다른 인간들을 연결해 한동안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창조적 조직을 만들어낸 것. 그 이름이 바로 비틀즈였다.
천재는 명곡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시대를 바꾸는 것은 결국 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