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민 금융증권부장 부국장
지난 15일 정부가 발표한 부동산대책이 단순한 경기 조정책을 넘어 헌법적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번 대책은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대폭 낮추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강화했다. 여기에 전세대출마저 제한 범위에 포함시킨, 전례 없는 초고강도 압박이다.
그 결과 많은 국민들이 주택을 구입하거나 옮기고, 임대차를 계약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신용 활동의 자유’를 잃었다. 정부는 ‘투기 억제’와 ‘가계부채 관리’를 내세웠지만, 이는 경제 조정보다 국민의 재산 형성과 거래를 행정적으로 통제하는 행위에 가깝다. 문제는 이런 조치가 헌법이 보장한 자유시장경제 원리와 직접 충돌한다는 점이다.
정부가 발표한 10·15 부동산대책은 과도한 대출 통제로 젊은층, 중산층의 주거 사다리를 붕괴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미지=더밸류뉴스]
선 넘은 금융 통제...‘자유시장경제’ 헌법 정신 훼손
헌법 제119조 제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시장이 정부의 허락 없이 스스로 작동해야 한다는 헌법이 보장한 원칙이며, 자유시장경제의 기본 헌법 원리다.
그러나 이번 대출 제한은 시장의 자율성을 전제로 한 이 조항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금융은 자본의 이동 통로이자 경제적 자유의 핵심 수단이다. 개인은 자기 신용과 담보를 기반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그 자금을 통해 노동·주거·창업 등 삶의 영역을 누린다. 정부가 ‘위험 관리’라는 명목으로 대출을 일률적으로 막는다면, 국민은 더 이상 경제 주체가 아니라 행정 명령의 피지배자로 전락한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조치가 ‘서민 보호’를 내세우면서 실질적으로는 기회의 불평등만 더 강화했다는 점이다. 현금이 많은 자산가는 여전히 거래할 수 있지만, 청년과 신혼부부 등 중산층 실수요자는 대출이 막히면 집을 살 수 없다. 정부가 법 앞의 평등을 강조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대출 가능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시장을 갈라놓았다. 형식적 평등이 실질적 불평등을 낳은 셈이다. 따라서 이번 대출 제한은 헌법 제11조의 국민 평등권 원칙에도 위배될 소지가 크다.
정부가 발표한 10·15 부동산대책의 대출 규제 내용. 지나친 규제로 위헌 시비가 일고 있다. [도표=더밸류뉴스]
행정명령이 헌법을 대신할 순 없어
정부는 이번 조치를 ‘공공복리를 위한 불가피한 규제’로 설명한다. 그러나 헌법 제37조 제2항은 그 규제 조건을 다음과 같이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 즉,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려면 국회의 입법 절차를 거친 명확한 법률 근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 대출 규제는 금융위원회 고시와 행정명령만으로 시행됐다. 이는 ‘법률에 의한 제한’이 아니라 ‘행정에 의한 침해’로, 헌법이 정한 절차적 통제 원리를 벗어났다.
더 나아가 ‘공공복리’라는 개념 자체가 권력의 자의적 해석에 맡겨지고 있다. 공공복리는 국민 다수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원칙이지, 특정 시점의 정치적 안정이나 여론 관리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 대책에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현 정권의 초조함이 반영돼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정치적 필요성에 따라 부동산 시장을 통제한다면, 공공복리는 민주주의의 가면을 쓴 권력의 방패로 전락한다. 헌법이 정한 자유의 한계는 국민의 안전과 질서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어야지, 정부가 임의로 조정하는 변수가 돼선 안 된다.
경제적 자유를 행정 편의로 제한하기 시작하면 그 영향은 정치적 자유로까지 번진다. 금융 통제는 시장의 침묵을, 시장의 침묵은 국민의 순응으로 이어진다. ‘정부 허락 없이는 집을 살 수 없는 사회’는 이미 자유시장경제가 아니다. 사회주의적 통제경제나 계획경제에 가깝다.
자유시장을 범죄시하면 자유는 사라진다
정부는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부동산 시장 전체를 잠재적 범죄 공간처럼 다루고 있다. 그러나 투기와 투자는 구분돼야 한다. 가격 변동을 기회로 삼는 행위 자체를 부정하면, 시장의 기능도 함께 마비된다. 국가가 탐욕을 통제할 수는 있어도, 국민의 선택과 판단 자체를 금지할 수는 없다. 시장을 범죄 현장으로 규정해 버리면 거래가 위축되고 신뢰도 무너진다. 결국 경제는 정부 통제 아래 움직이게 되고, 국민의 자유도 규제 아래 서서히 사라질 수 있다.
헌법 제119조 제2항은 “국가는 국민경제의 균형 발전과 소득 분배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지만, 여기엔 ‘자유가 원칙이고 규제가 예외’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번 10·15 부동산대책은 그 순서를 뒤집었다. 규제가 상설화되고 자유가 유보됐다. 시장경제는 자율이 아닌 ‘허가된 질서’로 재편됐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국민의 재산권과 신용권은 언제든 ‘공공복리’라는 명분 아래 제한될 수 있다.
결국 10·15 부동산대책은 단순한 정책이 아니라 헌법의 경계선을 넘보는 권력의 실험이 될 전망이다. 정부가 선의를 앞세워 국민의 선택을 제한하기 시작하면, 그 다음에는 어떤 자유도 안전하지 않다.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없느냐를 분명히 규정하는 권력 제한의 원리에 있다. 헌법은 정부가 해선 안 되는 선을 긋는, 네거티브 자유의 약속이다. 그 선을 넘어서는 경제는 더 이상 자유시장경제라 부를 수 없다.
자유는 국가가 베푸는 시혜가 아니다. 자유는 정부가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국민의 권리다. 197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F. 하이에크는 “자유는 정부의 허락이 아니라, 간섭의 부재”라고 했다. 1976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M. 프리드먼은 “경제적 자유 없이는 정치적 자유도 존재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금융 통제가 선을 넘으면, 국민의 자유는 담보로 잡히고 헌법은 그 효력을 잃는다. 시장을 믿지 않는 정부는 국민을 신뢰하지 않는 정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