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측이 30일 2조 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발표하면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IB업계에서는 이번 유상증자가 진행될 경우 최윤범 회장과 영풍·MBK 양측이 모두 피해를 입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가장 큰 피해자는 '한국 주식 시장의 숨은 진주' 고려아연이다.
◆고려아연, "2.5조 유상증자... 20% 우리사주조합, 80% 일반공모"
고려아연은 30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2조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의결했다. 총 모집주식수는 373만2650주로 고려아연이 공개매수에서 취득한 소각대상 자기주식을 제외한 발행주식수의 20%에 해당한다. 주당 발행가는 67만원이다. 이를 통해 조달한 자금 2조3000억원은 채무 상환에 사용하고 나머지 1350억원과 658억원은 시설자금, 타법인 취득자금에 사용한다는 것이다.
고려아연이 이번 유상증자를 결정한 배경에는 최윤범 회장측 지분 확보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총 모집 주식 가운데 20%를 우리사주조합에 배정하기 때문이다. 우리사주조합이 보유하는 주식은 의결권이 있으며 유상증자가 예정대로 진행되면 최윤범 회장측은 약 3%를 추가 확보하게 된다. 나머지 80%는 일반 공모를 실시한다.
일반 공모를 통해 유입될 새 주주(소액주주)들이 정서적으로 영풍·MBK보다는 고려아연에 우호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일반공모에는 1인당 청약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소액주주들이 새 주주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유상증자 결정과 관련, 고려아연은 "소액주주와 기관투자자, 일반 국민 등 다양한 투자자가 주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소유 분산을 통한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라며 "이를 위해 소액주주와 일반 국민에게 분산된 소유구조에 맞도록 획기적으로 개방적인 지배구조 및 경영구조를 마련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쉽게 말해 소액주주들이 최윤범 회장측의 사실상 '백기사'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최윤범 회장측, '주가가치↑'에서 '희석'으로... "앞뒤 맞지 않아"
그렇지만 이 의도가 예정대로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우선, 최윤범 회장측은 이번 유상증자 결정으로 '명분'을 잃게 됐다. 최윤범 회장측은 이달 중순 진행된 자사주 공개매수의 명분을 '주주가치 제고(업그레이드)'라고 밝혔다. 2조6000억원을 들여 자사주를 매수해 소각하면 기존 주식 가치가 증대되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정반대의 효과를 가져오는 유상증자를 들고 나왔다. 유상증자는 주식수를 늘리기 때문에 기존 주식의 가치가 희석된다. 주주가치 제고를 명분으로 자사주 매입에 나섰다가 이번에는 정반대로 주주가치를 희석시키는 유상증자를 하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IB업계의 한 인사는 "최윤범 회장은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고려아연의 조(兆) 단위 현금을 허공에 날리고 다시 한번 '국민 지갑'에서 자금을 모으는 격"이라며 "경영권 확보를 위해서라면 주주 가치 희석이나 재무 악화도 감수하겠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씌워지는 부담이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한국주식 시장의 숨은 진주'로 불리는 고려아연 경쟁력을 훼손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고려아연은 이달 중순 자사주를 매입하느라 조(兆) 단위 현금을 '허공에 날렸다'. 고려아연은 유상증자가 예정대로 진행될 경우 새로 등장하는 주주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다시 한번 자금을 투입할 가능성이 높다. 고려아연은 2019년 최윤범 CEO 체제로 전환한 이후 자기자본이익률(ROE)이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30일 고려아연 종가는 1만8만100원으로 하한가로 직행했다(-29.9%). 약 3조원이 허공으로 날아간 것이다.
◆영풍·MBK, "모든 수단 동원해 유상증자 저지할 것"
영풍·MBK는 이번 유상증자 발표에 대해 '경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영풍·MBK는 고려아연의 2조5000억원 규모의 일반공모 유상증자에 대해 "기존 주주들과 시장 질서를 유린하는 행위"라며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결정을 저지하기 위해 모든 법적 수단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풍·MBK는 우선 유상증자 금지 가처분신청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가처분이 기각된다면(유상증자가 허용된다면) '제2차 지분 경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MBK로서는 당초 계획에 사실상 없었던 새 자금이 소요된다. 이 경우 어느 쪽이 유리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이번 공개매수에서도 영풍·MBK와 최윤범 회장측 가운데 누가 우세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결과가 나왔다.